엉덩이와 궁둥이의 차이
류정환과 판수가 지키는 조선어학회는 조선총독부의 감시 속에서 창고 가득 말모이 원고를 수집한다. 사전을 만드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말을 수집해야 하고, 그 말들을 일일이 가려내 분류하고 그중에서 표준어를 지정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제 류정환은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함께 주시경 선생 시절부터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말모이 원고들을 모으면서 나아가 전국 각지의 사투리들을 수집해야 한다. 판수와 정환이 서로 믿음을 쌓아나가는 과정 이후에 영화가 공들여 묘사하는 부분이 바로 이 말모이 과정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사람들의 언어는 지역과 풍습에 따라서 달랐다. 고추장을 강추장, 고처장, 꼬이장, 땡초장, 꼬치장 등으로 부르는 모습 등이 이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게다가 요즘이야 ARS 설문이나 이메일을 통하면 되지만 일제강점기에 전국 각지의 사투리를 모은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을 터. <말모이>에서는 조선어학회가 당시 발간 중이던 잡지 <한글>에 조선말을 수집한다는 광고를 내 전국에서 편지를 받는 것으로 이 과정을 묘사한다. 이렇게 전국에서 모인 말은 옛말, 새말, 사투리, 전문어, 고유명사 등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거치고 이후 표준어를 정하는 회의를 거치는데 무려 13년여에 걸쳐 진행된 말모이의 지난했던 과정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표준어를 정하는 회의다. 영화에서 가장 긴박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순간이 바로 표준어를 지정하는 회의 장면인데 영화에서 묘사되던 순간은 실제 역사에도 기록돼 있는 것을 각색한 것이다. 당시 사전 편찬 작업을 하던 연희전문학교 출신 정인승이 어휘 풀이를 정리하면서 궁둥이에 관한 어휘를 수집해보니 엉덩이, 엉뎅이, 응뎅이, 궁뎅이, 응덩이, 응뎅이, 궁둥이, 방둥이, 방뒹이 등 수없이 많은 표현을 실제로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지금이야 엉덩이를 볼기의 윗부분, 궁둥이를 볼기의 아랫부분, 그러니까 앉으면 바닥에 닿는, 근육이 많은 부분을 일컫는다고 사전이 정하고 있지만 이것을 누군가 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상상해보자. 아주 정교하면서도 복잡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일 것이다. 밖으로는 조선총독부의 목숨을 위협하는 탄압을 이겨내야 하고 안에서는 치열한 고민이 필요했던 그 순간의 아이러니를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