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인터렉티브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이하 <밴더스내치>)가 화제다. 마치 게임처럼 감상자가 스토리의 전개를 선택하게 디자인된 이 작품은 전통적인 일방향 영화감상을 전복하는 쾌감이 있다. 연기 잘하는 배우 윌 폴터가 <밴더스내치>에 출연한다. 그는 여기에서도 특유의 아우라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25살의 앞길 창창한 이 배우의 생김새에 시비를 거는 사람이 그동안 적지 않았다. <밴더스내치>로 윌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자, 그의 외모를 비아냥대는 SNS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에 부담감을 느낀 그는 트위터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윌 폴터는 못 생기지 않았다. 누군가의 기준으로 못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그럼 좀 어떤가?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동년배의 배우 중 그를 능가할 재능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을 돌아본다.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2007)
윌 폴터의 첫 영화는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이었다. 영화 <람보>를 보고 감명받은 외로운 두 소년이 훔친 비디오 카메라로<람보의 아들>이라는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과정을 그린 소동극이다. 윌 폴터는 두 소년 중 하나로 마을 최고의 말썽꾸러기 리 카터를 연기했다. 하는 짓만 보면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결국은 꼭 끌어안게 만드는 이 묘한 매력의 소년에게 전세계 영화팬들은 찬사를 보냈다. 영화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함께 거스 제닝스 감독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선댄스와 로카르노영하제에서 주목받았다. 윌 폴터는 이 데뷔작으로 런던비평가협회 시상식에서 올해의 젊은 영국 배우 후보에 올랐고 영국 독립영화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나니아 연대기 : 새벽출정호의 항해 (2010)
윌 폴터는 <나니아 연대기>의 세 번째 <나니아 연대기: 새벽출정호의 항해>에서 주인공 사남매의 사촌 유스터스 스크럽 역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도 괴짜 악동을 연기했는데, 욕심을 부리다가 저주에 걸려 용이 된 후, 좀 철이 드는 모습으로 성장한다. 윌 폴터는 이 작품으로도 런던비평가협회상, 새턴아워드 최우수 아역 연기상 등의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는다.
와일드 빌 (2011)
<식스센스>의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그랬고 <나홀로 집에>의 맥컬리 컬킨이 그랬듯이 주목받던 아역 배우가 모두 성공적인 연기자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윌 폴터는 <와일드 빌>로 근사한 과도기를 보냈다. 빌(찰리 크리드-마일즈)은 8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지만, 아내는 집에 없었고 훌쩍 자란 두 아들이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여기에서 윌 폴터는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속깊은 큰아들 딘을 연기한다. 딘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오가는 한편, 팍팍한 인생사 속에 찾아온 첫사랑에 여지없이 설레는, 복잡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다른 배우가 연기한 딘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펼친다.
우리는 밀러 가족(2013)
별볼일 없는 마약상 데이빗(제이슨 수데키스)이 대량의 마리화나를 밀반입하기 위해 가짜 가족의 멕시코 여행을 꾸민다. 옆집에 사는 스트리퍼 로즈가 엄마 역할, 노숙 소녀 케이시가 딸 역할 그리고 착하고 어리바리한 동네 한량 케니(윌 폴터)가 아들 역할이다. 윌 폴터는 <우리는 밀러 가족>(원제 <We're the Millers>(위 아 더 밀러스))에서 주요 부위를 독거미에 물리는 등, 미국식 몸개그에도 발군의 재능을 보이며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18살이 되도록 키스 한번 못 해본 케니에게 케이스와 로즈가 번갈아 키스하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으로 23회 MTV 영화제에서 최고의 키스상을 받았다.
메이즈 러너 (2014)
윌 폴터의 외모에 대한 네티즌들의 지적은 <메이즈 러너>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인기 YA(Young Adult)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딜런 오브라이언, 토마스 생스터 등의 미소년들이 잔뜩 등장했고 그 속에서 윌 폴터의 투박한 외모는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윌은 주인공 토마스 역의 딜런 오브라이언과 대립하며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1편에서 갤리(윌 폴터)는 동료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만들어놓은 규칙이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싫어 대립하지만, 3편에서 구세주로 깜짝 등장해 동료들을 돕는다. (심지어 이 장면에선 살짝 잘 생겨보이기도…)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윌 폴터에게 거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러브콜을 받는다. 인간성이 사치처럼 보이는 극한의 자연환경 속에서 유일하게 곤경에 처한 동료를 돌아보는 따듯한 청년 브리저 역이었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모두의 염원이었던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기억되는 영화이지만, 윌 폴터의 명연기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키즈 인 러브(2016)
드디어 윌 폴터가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불안한 미래에 전전긍긍하던 청년 잭(윌 폴터)은 어느 날,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에블린(알마 요도로브스키)을 만난다. 잭은 인생의 목표를 직업으로 규정하지 않은 에블린과 그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키즈 인 러브>는 윌 폴터의 대표작으로 꼽기에는 함량미달인 작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대배우가 되어있을 윌 폴터의 젊은 시절, 가장 찬란한 한 때를 매력적인 런던의 핫 플레이스와 함께 담아 놓은 이 영화는 팬들에게 충분한 의미일 수 있다.
디트로이트 (2017)
윌 폴터는 거장 캐서린 비글로우의 부름을 받았다. 그녀는 <허트 로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으며, <제로 다크 서티>로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디트로이트>는 흑인폭동이 일어났던 1967년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공권력에 희생된 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악역이더라도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던 윌이 이번엔 부도덕한 국가권력을 자체를 상징하는 끔찍한 경찰 필립 크라우스를 연기했다. 빌은 원래 <그것>의 광대악마 페니 와이즈를 연기할 뻔 했는데, 그런 아쉬움을 넘어선 명연기였다. 마블이나 DC에서 윌 폴터의 악역을 보고 싶다는 팬들의 청원도 적잖다. 언젠가 외모논란 따위 훌훌털어버리고 마음놓고 나쁜짓을 하는 절대 악역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안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