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8월 13일에 태어나 1980년 4월 29일에 세상을 뜨기까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사에 남긴 족적은 어마어마하다. 그의 영화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재미와 완성도가 결쿠 뒤지지 않는 걸작을 숱하게 만들어왔다. 브라이언 드 팔마, 데이빗 핀처, 마틴 스콜세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등등 수많은 거장 감독들이 그의 영향 아래 있다.
얼마 전 CGV에서 열었던 히치콕 기획전에 소개됐던 영화 <싸이코><현기증><이창><새>는 지금도 히치콕 감독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저 영화들은 너무 많이 회자됐다. 이 영화 외에도 그의 스릴러 장기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는 무지하게 많다. 굳이 걸작만 나열말 필요도 없이 웬만한 영화에 모두 그의 스타일이 반영되어 있다. 아무래도 다 골라 소개하기는 어려우니 그 중에서 에디터의 취향이 강하게 투영된, 그러니까 히치콕의 어떤 '집착'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의 특징들을 몇 가지 모아봤다.
오해받는 남자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서 사건은 종종 평범한 사람의 일상에 느닷없이 끼어든다. 여행을 가던 부부도, 출장 중이던 남자도 언제 어디에서 범죄에 연루될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그의 영화 속 사건이 흥미진진한 법. 그 중에서 히치콕 감독과 무려 4편이나 함께 작업한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출연하는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역시 대표적인 '오해받은 남자'가 주인공이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로프>, <이창>, <너무 많이 안 사나이>, <현기증>에서 히치콕 감독과 함께 작업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상대 배우이자 영화 역사상 실제 공주님이기도 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너무 많이 안 사나이'(The Man Who Knew Too Much)로 감독 자신의 영화를 직접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너무나 유명한 런던의 앨버트홀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오페라 장면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에서 멋지게 오마주했다.
자매 영화 <나는 결백하다> <오인>
히치콕 감독의 다른 영화 중에서 오해받아 사건에 휘말리는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많다. 특히 이 두 편의 영화는 서로 다른 처지의 남자가 오해를 풀기 위해 벌이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재미를 전해준다. 한 편은 오락물로서, 한 편은 진지한 드라마로서 말이다.
멜로
<오명>
히치콕 감독의 영화 속 남녀는 종종 비극적인 사랑에 연루된다. <북북서로 진로르 돌려라>와 같은 달달한 영화는 극히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사건을 함께 해결해나가면서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게 되는 설정은 이 영화 <오명>에서 가장 아름답게 펼쳐진다.
영화는 전후 나치 첩자의 딸로 낙인찍힌 주인공이 미국 정보부의 첩보원이 되어 독일 출신의 비밀단체 일원에게 접근한 뒤에 결혼까지 한 다음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겨 구출당하는 '마타하리' 영화다. 스파이물에 가깝지만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정서는 '로맨스'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저 스틸컷 속 키스 장면은 두 남녀를 걸어가면서 키스하게 만드는 장면인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얼마나 가슴이 훈훈해지는지 봐야 한다.
특히 이 영화는 비평가, 관객 모두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히치콕 영화이기도 하다. (<이창><싸이코><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같은 영화들이 평단과 관객이 동시에 지지하는 그의 영화들이다.)
스파이
<찢어진 커튼>
히치콕 감독은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여러 편의 '스파이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에게 시대의 비극을 담고 있는 인물인 스파이는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를 모두 표현할 입체적인 인물이었으리라. <찢어진 커튼>은 동독과 서독이 팽팽하게 맞서던 시기에 미국에서 미사일 기술 정보를 빼오라는 지령을 받은 한 물리학자의 활약을 다룬다.
특히 동독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주인공과 경찰 사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다시 봐도 싸늘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드보일드한 정서가 느껴지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동독의 차갑고 을씨년스러운 도시 분위기와 추격전의 정서를 같이 가려 했던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자매 영화 <비밀첩보원><토파즈>
히치콕 감독은 냉전 시대 한참 이전인 1935년에 이미 <39계단>이라는 걸출한 스파이 영화를 만들었고 <비밀첩보원><사보타지><반드리카 초특급> 등을 만들었고 앞서 소개한 <오명>도 스파이 영화 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물론 후기작인 <토파즈>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히치콕 스파이 영화들이다.
살인사건
<다이얼 M을 돌려라>
히치콕 감독의 영화 중에서는 유독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와 순간을 인상적으로 찍는 영화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싸이코>다. 물론 <로프>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 역시 살인사건 장면 계열에 포함시키기 충분한 영화다. 사물을 클로즈업으로 찍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유명한 히치콕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계속 해서 관객과 머리 싸움을 벌인다. 과연 누가 진짜 범인인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수수께끼처럼 추리해가는 과정이 잘 짜여 있다.
참고로, 저 위의 스틸컷 구도는 상당히 입체적인데 3D 영화를 위해 화면 구도를 저렇게 해서 그렇다. 실제 3D 영화로 상영을 하기도 했다.
나는 관객의 예측에 도전한다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은 히치콕 감독을 두고 "최초로 영화의 기교에 대해 이야기한 감독"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 영화 장르에 대해 치밀하게 연구하고 어떤 것이 더욱 영화적인지를 고민한 감독이다. 그는 현실에 기반을 둔 리얼리스트나 철학자의 느낌보다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나 아니면 영상을 통해 마법을 부리는 마술가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또 인간적으로도 지독한 면이 많아 "개성 있는 예술가가 되려면 자기를 노출해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영화에 드러내야 한다."고 종종 이야기해왔다. 위에서 이야기한 몇 가지 키워드 외에도 히치콕 감독 자신을 묘사하는 키워드는 훨씬 많다.
마지막으로 히치콕 감독이 <히치콕 트뤼포>에서 직접 육성으로 들려준 영화에 관한 정의를 끝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그가 평생 동안 사랑해마지 않았던 영화는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완성형이 된 것 같다.
영화는 한 명의 관객이 아니라
2천명의 관객을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힘이다.
영화는 전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매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