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연출한 <로마>는 2018년 베니스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후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어워드 등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을 이어오고 있다. 즉, 2월 25일(한국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작품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라는 뜻이다.
작품상 후보 가운데 <로마>가 특히 주목 받는 이유가 있다. <로마>는 넷플릭스 영화다. 국내에서 극장 개봉 했다. 동시에 넷플릭스 가입자들은 거실 TV, 노트북, 스마트폰 등을 통해 언제든지 <로마>를 볼 수 있다. 과거 칸국제영화제가 넷플릭스 영화를 보이콧 했던 것, 봉준호 감독의 <옥자> 개봉 당시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반발했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아카데미 위원회가 <로마>를 작품상 후보에 올린 것은 분명 눈에 띄는 일이다.
2018년 넷플릭스는 “80억 달러, 약 9조원을 투입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누군가는 이런 넷플릭스의 행보를 ‘묻지 마 투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스튜디오의 간섭 없이 마음껏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씨네21’에 따르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1월 3일 국내 언론과의 라이브 컨퍼런스 인터뷰를 통해 넷플릭스와 작업한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관객이 <로마>를 극장에서 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즐기려면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로마>는 영어가 아니라 멕시코 언어로 만든 흑백영화다. 이런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작품에 접근할 수 있게 하려면 넷플릭스 같은 신규 플랫폼이 필요하다. 또 10년, 20년이 지나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넷플릭스의 거대한 자금력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로마>는 분명 눈에 띄는 성과다. 반면 눈에 띄지 않은 실패작도 있지 않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성공 혹은 실패작을 찾아봤다. 넷플릭스 영화는 흥행 성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기 힘들다. 결국 (절대 기준은 될 수 없지만) 로튼토마토지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굿 & 배드를 각각 10편씩 알아보자.
BAD
리디큘러스 6
The Ridiculous 6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오리지널 TV 시리즈의 성공 이후 오리지널 영화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파트너는 아담 샌들러였다. 아담 샌들러가 주연을 맡은 프랭크 코라치 감독의 코미디 서부극 <리디큘러스 6>는 참혹한 평가를 받았다. 넷플릭스와 아담 샌들러의 궁합은 최악이었다. 이후 실패한 넷플릭스 영화 가운데 아담 샌들러가 출연한 영화가 몇 편 등장할 예정이다.
가짜 암살자의 진짜 회고록
The True Memoirs of an International Assassin
넷플릭스가 투자한 영화 가운데 코미디 영화의 성적표가 그다지 좋지 않다. <리디큘러스 6>와 마찬가지로 <가짜 암살자의 진짜 회고록> 역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평가한 평론가는 고작 8명에 불과하다. 평론가 뿐만 아니라 관객도 이 평가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망작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걸러도 좋겠다. 넷플리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수없이 많다
두 오버
The Do-Over
앞서 소개한 두 편의 영화에서 실패와 연결되는 키워드는 아담 샌들러와 코미디였다. <두 오버>는 이 두 가지 키워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과거 잘나가던 아담 샌들러는 넷플릭스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네이버에 등록된 네티즌의 평가는 다소 우호적인 편이지만 해외 평론가와 네티즌의 평가는 냉정했다. 킬링 타임용으로 본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열린 문틈으로
The Open House
<열린 문틈으로>는 평론가의 평점보다 관객의 평이 더 낮은 보기 드문 영화다. 그말은 곧 이 영화가 진정한 ‘망작’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열린 문틈으로>의 결정적인 실패 요인은 아마도 설명되지 않는 ‘괴한 혹은 괴담’인 듯하다. 호러, 스릴러 장르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이 저지른 살인은 그 실체가 밝혀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열린 문틈으로>에서는 그렇지 않다. 관객은 답답함을 가지고 엔딩크레딧을 봐야 한다. 어쩌면 이 실패는 감독의 창의성을 조건 없이 허용한 넷플릭스의 정책이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와호장룡: 운명의 검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Sword of Destiny
<와호장룡>. 익숙한 제목이다.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와호장룡: 운명의 검>은 어떤 관계일까. 우선 그 평가가 극과 극이라는 것은 알겠다. <와호장룡>의 속편이라는 기대를 한껏 등에 업은 <와호장룡: 운명의 검>은 감독과 배우의 이름에서 다시 한번 기대심리를 자극한다. 원화평 감독은 홍콩 액션영화 좀 본 사람이라면 다 기억할 이름이다. 견자단과 양자경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원화평 감독에게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와호장룡>, <매트릭스>, <킬 빌>, <정무문> 등의 무술감독이었다. 성룡 주연의 <사형도수>, <취권>에서는 연출도 했다. <와호장룡: 운명의 검>은 그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스텝 시스터스
Step Sisters
<스텝 시스터스>는 스텝 댄스라는 소재에 집중한 영화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시놉시스는 백인 사교 클럽 여신들에게 흑인 전통 군무인 ‘스테핑’을 완성하라는 특명이 떨어진다고 소개한다. 그러니까 <스텝 시스터스>는 한때 유행했던 댄스 소재의 틴에이지 무비다. 그렇다면 <스텝 시스터스> 대신 <스텝 업> 시리즈를 보는 게 낫겠다.
브라이트
Bright
오크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 판타지 장르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다면 <브라이트>의 설정에 혹할 만하다. 윌 스미스와 조엘 에저튼의 조합도 기대를 부풀 게 만든다. 막상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나면 <브라이트>가 그저그런 형사 버디무비임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가 평론가들의 평가다. 관객들의 평가는 다르다.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볼 수밖에.
샌디 웩슬러
Sandy Wexler
악! 또 아담 샌들러의 코미디 영화가 등장했다. 이쯤되면 아담 샌들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감독 스티븐 브릴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는 <두 오버>의 감독이기도 하다.
데스노트
Death Note
<와호장룡>과 비슷한 케이스가 또 있다. <데스노트>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수많은 일본 만화 원작 할리우드 리메이크의 실수를 반복할 걸까. 이 영화를 재미없다고 한 사람들의 주장의 핵심은 두뇌싸움이 없다는 거다. 원작에서의 주인공 라이토과 L은 끊임없이 수싸움을 벌인다. 넷플릭스 버전에서는 이 부분을 간과한 듯하다.
ARQ
ARQ
<ARQ>는 SF 장르 영화다. 이 분야는 넷플릭스가 잘해온 분야다. 넷플릭스가 서비스하고 있는 <블랙미러>를 생각해보라. 타임루프 소재의 <ARQ>는 <블랙미러>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많은 관객들은 주인공의 행동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다. 왜냐면 과거로 돌아가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ARQ>의 제작직은 <사랑의 블랙홀>(1993)을 참고하지 않았더 걸까. 빌 머레이와 앤드 맥도웰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은 영화 역사상 가장 로맨틱하고 재밌는 타임루프 영화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
Annihilation
나탈리 포트만, 테사 톰슨, 오스카 아이삭.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주연배우들의 이름이 꽤 하려하다. 물론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해냈지만 진짜 주인공은 영화 전체를 감싸는 묘한 분위기다. 정부의 비밀 임무에 참여했던 남편(오스카 아이삭)이 X구역에서 실종된 뒤 리나(나탈리 포트만) 일행이 그곳에 투입된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유전자 굴절로 인해 변해가는 X구역을 미려하고 독특한 비주얼로 담았다. 꽤 환상적인 묘사다. 여기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도 잊지 않았다.
임페리얼 드림
Imperial Dreams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들은 대체로 진지한 편이다. <임페리얼 드림>도 그렇다. 가난 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이 영화에 있다. 이 굴레는 작가가 되고 싶은, 갓 출소한 아버지가 헤쳐나가기에는 버겁다.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진 미국 사회의 현실을 존 보예가의 훌륭한 연기로 보여준다. <임페리얼 드림>은 넷플릭스의 숨은 명작이다.
카우보이의 노래
The Ballad of Buster Scruggs
넷플릭스의 투자가 무서운 이유를 <카우보이의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유명한 코엔 형제를 기용했기 때문이다. 코엔 형제는 넷플릭스의 자본으로 자신들이 늘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부담 없이 만들 수 있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창작의 자유와 흥행에 대한 걱정이 사라진 환경. <카우보이의 노래>는 이 두 가지 조건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에 가깝다. 분명 <카우보이의 노래>가 코엔 형제의 걸작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영화는 그저 감탄하며 볼 수밖에 없는 마력이 있다.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
Beasts of No Nation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은 넷플리스 오리지널 영화의 첫 작품이다. 매우 성공적인 시작이었다. 아프리카의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소년병의 비참한 이야기을 담아낸 이 영화를 통해 주연을 맡은 이드리스 엘바와 캐리 후쿠나가 감독은 수많은 시상식 트로피를 받았다.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은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전쟁의 진짜 모습을 보여줬다. 참고로 후쿠나가 감독은 <본드 25>의 감독으로 발탁됐다.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고른 신작)
The Meyerowitz Stories (New and Selected)
아담 샌들러? 맞다.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고른 신작)>은 아담 샌들러가 출연한다. 이 영화가 아마도 그가 출연한 유일한 성공한 넷플릭스 영화일 듯싶다. 아담 샌들러도 노아 바움백 감독을 만나면 달라진다. 노아 바움백 감독 이외에도 벤 스틸러가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물론 엠마 톤슨도. 더스틴 호프만도.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고른 신작)>은 감독의 역량과 명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인 영화다.
캠 걸스
Cam
소재부터 자극적이다. 성인방송을 진행하는 캠 걸이라니. <캠 걸스>는 자극적인 소재를 꽤 진지하게 풀어냈다.또 은근히 무섭기도 하다. 캠 걸 앨리스(매들린 브루어)가 자신의 계정을 해킹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캠 걸스>는 호러 혹은 스릴러 영화다. 유튜브 시대의 병폐를 담은 <캠 걸스>는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영화이기도 하다. 21세기 호러 영화의 시대를 선도하는 그곳에서 만들었으니 믿고 봐도 좋겠다.
대니와 엘리
Tramps
수상한 가방을 운반하는 대니(칼럼 터너). 그는 실수로 다른 가방을 가져온다. 진짜 가방을 찾지 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이 지독한 상황에 엘리(그레이스 밴 패튼)가 엮인다. <대니와 엘리>는 색다른 로맨스 영화를 표방하고 있다. 로튼토마토지수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리뷰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니와 엘리>는 할리우드의 비슷비슷한 로맨틱 코미디가 지겨워 질 때쯤 보기에 그야말로 신선한 영화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To All the boys I loved before
넷플릭스의 로맨틱 코미디를 대표하는 영화를 꼽자면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첫번째다. 2018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으로 시작된 할리우드의 아시아 열풍에도 한몫한 영화이기도 하다. 짝사랑 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버린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라라 진(라나 콘도르)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이 아시안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살짝 익숙한 전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10대 청춘의 달달한 로맨스를 즐기기에는 문제가 없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속편 제작이 결정됐다.
로마
Roma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의 최대 성공작 <로마>. 만약 당신이 <로마>를 보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보길 권한다. 여건이 된다면 극장으로 가는 걸 적극 추천한다. 넷플릭스를 통해 봐도 좋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극장에서 보길 원했다. 중요한 점 한 가지. 극장 스크린이든 TV 스크린이든 이 영화의 위대함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치욕의 대지
Mudbound
로튼토마토지수를 볼 때 평균 평점(Average Rating)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로튼토마토지수에서 <로마>보다 높은 <치욕의 대지>가 평균 평점은 조금 낮긴 하다. 관객 평점은 <치욕의 대지>가 조금 더 높다. 결론은? 두 영화 모두 훌륭하다는 것이다. <치욕의 대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흑인과 백인 두 가족이 마주한 잔혹한 현실을 담았다. <치욕의 대지>는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두 영화, <버드 박스>와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봉준호 감독의 <옥자>의 평점도 첨부했다. 6500만 명이 봤다고 홍보한 수잔 비에르 감독의 <버드 박스>의 평점이 의외로 낮았다. 영화의 스토리를 관객이 결정하는 인터렉티브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준수한 성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당연하게도 신선한 토마토를 받았다.
버드 박스
Bird Box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Black Mirror: Bandersnatch
옥자
Okja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