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보내는 방법이야 다양하겠지만, 4박 5일, 그러니까 120 시간은 짧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고향에 못 가신 분들, 고향에 내려가셨더라도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불편한 분들에게 노트북에 담아두면 든든한 미드를 소개한다.


<킬링 이브 >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는 드라마 <킬링 이브>로 지난 1월 5일 열린 골든글로브에서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데 이어, 1월 27일 열린 전미 배우조합상에서도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킬링 이브>는 매력적인 연쇄 살인마 빌라넬(조디 코머)과 그녀의 뒤를 쫓는 수사관 이브(산드라 오)의 이야기다. 연쇄 살인마와 수사관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양성애자인 살인마가 수사관을 흠모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흔한 사이코패스 스릴러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산드라 오는 이미 명작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의 ‘크리스티나 양’ 역으로 에미상에 5번 노미네이트되었고 골든 글로브를 한 차례 수상했지만, <킬링 이브>는 그녀의 또 다른 인생작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명연기를 펼친다.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던 시즌 1에 이어 오는 4월엔 시즌 2가 방영될 예정이다.


<디 어페어>

명절에 보는 막장극이라니 묘한 쾌감이 있겠다. <디 어페어>는 별 볼일 없는 작가 ‘노아’가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갔다가 그곳의 웨이트리스 ‘앨리슨’과 불륜을 저지른다는 뻔한 내용의 치정극이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남성과 여성의 시선으로 다르게 보여주는 전개와 문학적 감수성이 가득한 대사가 많은 팬을 불러들였다. 말하자면 고급 막장극이랄까. 첫 시즌에 골든 글로브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디 어페어>는 비교적 고른 긴장감을 유지했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다섯 번째 시즌으로 시리즈를 마감할 계획이라고. 한가지, 파격적인 베드신이 제법 많으니, 고향집에서는 후방주의, 귀성길 버스안에서는 재빠르게 스킵할 순발력이 필요하겠다.


<애틀란타>

친척 어르신들의 환담에서 또 수많은 ‘엄친아’가 소환되겠지만, 우리 시대에 천재를 꼽으라면 단연 도널드 글로버가 아닐까? 그는 그래미에서 최우수 트레디셔널 R&B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으며, 드라마 <애틀란타>로 에미상의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받았다. 뮤지션, 감독, 프로듀서, 작가,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2019 최고의 흥행작이 될 <라이온 킹>에서 주인공 심바 역으로 목소리 연기에 도전한다. 그가 감독, 주연, 시나리오, 제작을 맡아 북치고 장구친 드라마 <애틀란타>는 랩퍼 ‘페이퍼 보이’와 그의 매니저로 나선 사촌동생 ‘언’의 이야기다. 뭔가 쇼비즈니스계의 암투를 기대하겠지만, 그런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는 전혀 없고 일상의 소동들이 이어질 뿐이다. 그러나 한 에피소드가 25분 안팎인 이 드라마는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한 시즌을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디 아메리칸즈>

부지런한 미드팬이 아니라면 낯선 시리즈일 수 있겠지만, <디 아메리칸즈>는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받은 명작이다. KGB 요원 두명이 부부로 위장해 미국 사회에 잠입한다. 두 사람은 완벽한 미국 중산층 가정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아이까지 낳게 된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 스릴러는 많지만, <디 아메리칸즈>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고독을 깊게 들여다본 작품이다. 국가, 직장, 가족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개인을 다룬다. 그러고보면, 명절에 고향집 가득 모인 가족들 속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 더 깊은 고독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과 많이 닮았다.


<기묘한 이야기>

흥행에 성공한 작품 중에서 온 가족이 같이 볼 수 있는 미드는 의외로 많지 않다. 인기 미드 3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왕좌의 게임>은 은근 야한 장면이 많고, <워킹 데드>의 피칠갑 액션은 연령대보다 취향의 문제다. <빅뱅이론>의 섹드립은 거실을 ‘갑분싸’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기묘한 이야기>는 조카들도 볼 수 있는 모험활극이자, 힙스터 이모의 레트로 트렌드를 만족 시킨다. 또한, 큰아빠, 작은 엄마의 향수를 자극하는 미장센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인디애나주의 시골마을에 있는 정부실험시설 주변에 한 소년이 행방불명되고 초능력을 가진 소녀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판타지물이다. 밀라 바비 브라운, 핀 울프하드 등 사랑스러운 아역들이 더 자라기 전에 어서 더 많은 시즌을 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안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