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반>

아드레날린 폭발. 아드레날린이 혈류에 공급되면 뇌와 근육을 촉진시키고 심박수가 빨라지고 동공이 확장된다. 지금 우리는 영화 속의 카체이싱 장면을 보고 있다. 관객은 스크린 속에서 질주하는 자동차를 보며 빠른 스피드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을 대리체험한다. 뺑소니 전담반 경찰을 소재로 한 <뺑반>도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영화다. <뺑반>의 개봉에 맞춰 특색 있는 혹은 인상적인 카체이싱 혹은 자동차 액션 장면이 담긴 영화 10편을 소개한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제외했음에 주의하자.


<블리트>

블리트 (1968)

카체이싱의 고전 영화부터 소개한다. 스티브 맥퀸 주연의 <블리트>다. 수많은 사람들이 <블리트>를 최고의 카체이싱 영화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블리트>의 카체이싱 액션의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 이전에 이런 자동차 액션은 없었다. 마치 <매트릭스> 이전과 이후, <본 아이덴티티> 이전과 이후의 액션영화 트렌드가 달라진 것과도 같다. 스티브 맥퀸이 운전하는 머슬카, 포드 머스탱 GT 안에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관객은 마치 뒷좌석에 앉아 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자동차 스턴트맨이 시속 160km로 실제로 운전한 장면을 담았다. 언덕이 많은 샌프란시스코의 지형도 한몫했다. <와스프와 앤트맨>의 카체이싱 신을 본 사람이라면 샌프란시스코의 도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할 거다. 특히 이 영화가 개봉한 연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68년이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영상임에 분명하다. 음악 따위는 필요없는 진짜 자동차 액션을 <블리트>에서 볼 수 있다.


<이탈리안 잡>

이탈리안 잡 (1969)

카체이싱의 고전 영화 한 편 더 소개한다. 젊은 마이클 케인을 볼 수 있는 <이탈리안 잡>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달달한 멜로디의 노래와 함께 알프스의 아름다운 도로를 한가롭게 달리는 빨간색 람브로기니를 볼 수 있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잊기 힘든 인트로다. 사실 <이탈리안 잡>의 진짜 주인공은 이후에 등장한다. 마이클 케인이 탄 애스틴 마틴이냐고? 아니다. 미니 쿠퍼다. 주인공 일당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금괴를 훔쳐 3대의 미니 쿠퍼에 실었다. 좁은 이탈리아의 도로를 질주하는 미니 쿠퍼는 아케이드 건물을 통과하고 계단을 내려가 지하도를 건너고 성당을 지나 건물 옥상에 올라가며 경찰을 따돌린 뒤 강을 건너 시외로 나와 버스에 올라탄다. 10여 분 간 이어지는 미니 쿠퍼의 귀여운(?) 질주 덕분에 2003년에 우리는 리메이크 영화 <이탈리안 잡>을 볼 수 있었다.


<대결>

대결 (1971)

스티븐 스필버그의 TV영화 <대결>(Duel)을 여기에 소개하는 건 사실 맞지 않다. 일반적인 카체이싱이라는 용어에 적합한 액션이라고 보기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끼워넣은 건 자동차, 정확하게는 트럭이 어떻게 이렇게 공포스러울 수 있는가를 보여준 영화기 때문이다. 한적한 도로. 트럭 운전수는 먼저 가라며 손짓을 한다. 트럭의 뒤를 따르던 주인공은 중앙선을 넘어 추월을 시도한다. 그 순간. 주인공은 다가오는 차와 정면 충돌할 뻔한다. 도대체 이 트럭 운전수는 왜 이러는 걸까. 누가 탔는지 알 수 없는 이 트럭은 끊임없이 주인공을 위협한다. <대결>은 빠른 스피드의 액션이 아니라 거대한 트럭의 위협이 만들어내는 공포를 보여준 영화다. 카체이싱이 아니라 카호러 무비라고 부르면 적당할까.


<터미네이터 2>

터미네이터 2 (1991)

<대결>처럼 <터미네이터 2>에도 트럭이 등장한다. 이때는 <대결>과는 달리 일반적인 카체이싱 액션을 보여준다. 트럭에게 쫓기는 사람은 오토바이를 탄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다. 터미네이터 T-1000(로버트 패트릭)이 트럭에 타고 있다. 존 코너를 구하기 위해 이 트럭을 다시 쫓는 이는 터미네이터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이다. LA의 하수도(?) 혹은 배수로를 따라 질주하는 트럭의 기세가 대단하다. 보통의 카체이싱 영화에서 날렵한 스포츠카의 빠른 스피드가 만드는 쫄깃한 스릴이 기본이라면 <터미네이터 2>의 트럭 카체이싱 장면은 웬만한 방해물을 부숴버리는 육중한 트럭이 만들어내는 묵직한 박진감이 일품이다.


<택시>

택시 (1998)

푸조 VS. 메르세데스 벤츠. 뤽 베송 감독의 연출작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뤽 베송 감독이 제작한 영화 <택시>는 프랑스 자동차 푸조의 스피도를 보여주는 영화다. 어마어마한 튜닝을 한 푸조 406 택시를 모는 다니엘(사미 나세리)은 마르세유에 들어온 메르세데스 벤츠를 모는 독일 범죄 집단을 물리친다. 다시 생각해보면 <택시>는 프랑스 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영화 같다. 물론 깨알 같은 한국인 디스도 있었고. 어째 됐든 튜닝한 푸조 406의 질주는 볼 만했다. 영화의 초반부. 공항까지 빨리 가달라는 남자가 택시에 탄다. 다니엘이 버튼을 누르자 각종 튜닝 장비가 자동차에 장착된다. 운전대를 바꾸고 다니엘은 스톱워치를 작동시킨다.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가 다니엘의 택시를 탄 덕분에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얻은 승객은 택시에서 내리자마, 우웩!


본 아이덴티티 (2002)

<본 아이덴티티>는 액션영화의 생태계를 바꿨다. 그 전까지 그렇게 빠른 편집의 액션을 보지 못했으니까. 카체이싱도 기존의 영화와는 많이 달랐다. 특히 제임스 본드의 카체이싱과 다르다. 본드는 턱시도를 입고 새끈한 스포츠카를 탔다. 주로 재규어나 애스틴 마틴. 제이슨 본은? 후줄근한 점퍼에 1960년대 생산된 미니를 탔다. <이탈리안 잡>의 그 귀여운 미니를 생각하면 안 된다. 0.9리터 엔진에 55마력을 발휘(?)하는 폐차 직전의 차다. 55마력이라니. 2019년형 스파크가 75마력을 낸다. 그러니까 <본 아이덴티티>의 획기적인 점은 자동차의 스펙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데서 발생한다. 파리의 좁은 도로를 질주하는 제이슨 본의 놀라운 운전 실력도 대단하지만 사실은 더그 라이만 감독의 연출 혹은 편집감독이 능력이 중요했던 같다.


<데쓰 프루프>

<데쓰 프루프> (2007)

쿠엔틴 타란티노의 카체이싱은 다른 영화와 달랐다. 단순히 속도와 충돌을 담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보닛에 매달리게 했다. 이게 뭐가 다르냐고? 다르다. <데쓰 프루프>의 이 액션은 진짜다. CG가 아닐 뿐만 아니라 보닛에 올라탄 배우는 실제로 그게 직업이기 때문이다. 조 벨이라는 뛰어난 스턴트우먼 배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녀는 우마 서먼을 대신한 <킬 빌> 이외의 수많은 영화에 스턴트맨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는 배우다. 말하자면 타란티노 감독은 성룡이 <폴리스 스토리>에서 버스에 매달린 것과 똑같은 진짜 액션을 2007년에 재연했다.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드라이브>

드라이브 (2011)

카체이싱은 무조건 스피드! 아니, 아니. <드라이브>의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펀칭된 가족 드라이빙 장갑을 낀 그는 평범한 차를 고른다. 경찰의 눈에 뛸 필요는 없다. 범죄자를 실어나르는 일을 하는 그는 시계를 풀고 운전대에 장착한다. 그는 컴퓨터처럼 정확한 운전을 한다. 신호도 지킨다. 심지어 잠시 멈추기도 한다. <GTA 5>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의 운전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경찰 헬리콥터의 스포트라이트를 피하는 방법은 그 어떤 스포츠카로 불가능하니까. 경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운전이다. <드라이브>는 스피드 없이도 쫄깃한 스릴을 만들어내는 영리한 영화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매드맥스 2>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2015)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영화 전체가 카체이싱 신으로 이뤄졌다고 과언이 아니다. 문명이 망해버린 지구, 모래폭풍이 일어나는 사막에서 벌어진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또 다른 점이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다 미치광이라는 점. V8! V8! V8!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미치광이들이 왜 8기통 엔진에 열광하는가. 안 그래도 기름이 많이 없는데 말이다. 조지 밀러 감독은 이 미치광이들의 질주를 오래 전에 이미 만들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미쳐날뛰는 카체이싱 액션이 맘에 든다면 <매드 맥스 2>를 보길 슬며시 권해본다. 이 영화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보여준 미친 액션의 원형이 있다.


<베이비 드라이버>

베이비 드라이버 (2017)

<베이비 드라이버>와 <드라이브>는 꽤 비슷한 구석이 많다. 우선 주인공이 말이 없다. 이름도 없다. <드라이브>의 주인공 이름은 드라이버, <베이비 드라이버>의 주인공 이름은 베이비다. 직업은? 같다. 둘 다 범죄자들의 탈출을 돕는다. 심지어 영화의 시작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분위기와 음악이다. 특히 <베이비 드라이버>는 오프닝은 자동차 액션이라기보다는 삽입된 노래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의 ‘벨 바텀스’(Bellbottoms)의 뮤직비디오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민트 로얄(Mint Royale)의 ‘블루 송’(Blue Song)이라는 노래로 <베이비 드라이버>와 거의 유사한 뮤직비디오를 만든 적이 있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차에서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에게 최고의 카체이싱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