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찾아오는 <캡틴 마블>을 향한 관심은 차고 넘친다. 마블 유니버스 사상 첫 여성 히어로 솔로 무비인 데다가, <어벤져스4>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고, 지구 절반을 가루로 만들어버린 타노스(조쉬 브롤린)에 대적할 막강 캐릭터의 영화라는 점 때문이다. 미국 영화 사이트들은 <캡틴 마블>의 흥행세를 예측하느라 아주 신이 났다. 긍정적인 관심만 있는 게 아니다. 캡틴 마블을 맡은 브리 라슨을 둘러싼 여러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원작 코믹스와 브리 라슨의 싱크로율이 별로라는 논란에만 머물지 않는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마블의 대부 스탠 리 추모 과정에서 그녀가 드러낸 경솔함(칵테일을 들고 가방과 신발을 자랑하는 듯한 모습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스탠 리를 추모했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녀가 여러 인터뷰에서 보여준 지나치게 솔직한 모습들(“캡틴 마블에게 타노스는 새우 같은 존재다”라는 발언 등)도 마블 팬들의 공분을 샀다. 바람 잘 날 없는 브리 라슨을 바라보며, 여러 이유로 캐스팅 논란에 휩싸였던 배우들의 사례를 소환해봤다.


<007 카지노로얄> “다니엘 크레이그, NO!”

다니엘 크레이그

다니엘 크레이그의 하차인가, 복귀인가. 그의 007 잔류 여부는 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사였다. 차기 007 자리를 두고 많은 배우가 하마평에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직접 007 잔류를 밝히면서 팬들은 ‘다니엘 크레이그 표 007’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반가움을 표한 상황. 다니엘 크레이그에게 더블오(00) 살인면허가 주어지자 “최악의 선택!”이라는 항의가 쏟아졌던 2006년 <007 카지노 로얄> 때를 떠올리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당시 팬들은 ‘키가 작다!’(숀 코너리,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등 역대 007들은 모두 185cm가 넘는다. 다니엘은 180cm) ‘금발이다!’(역대 007들은 갈색머리다.) ‘촌스럽다!’(이건 좀…)는 이유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캐스팅을 반대했었다. 일부 팬들은 웹사이트 www.craignotbond.com 을 만들어 대니얼 크레이그를 캐스팅한 제작진에게 007영화를 보이콧하겠다고 위협까지 가했다. 하지만 그는 <007 카지노 로얄>를 시작으로 <007 퀀텀 오브 솔러스> <007 스카이폴> <007 스펙터>를 거치며 믿음직한 6대 제임스 본드로 자리매김했다. 조롱과 패러디의 대상으로 전락해가던 본드가 고독하면서도 강인한 남자의 상징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한 것도 다니엘 크레이그 덕분. 실력으로 팬들의 마음을 돌린 대표적인 사례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독이 든 성배?

(왼쪽부터) 마릴린 먼로, 미셸 윌리엄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히 죽지 않는 아이콘이 된 마릴린 먼로. 그런 그녀의 은밀한 일주일은 그린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 제작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누가 저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 것인가! 안젤리나 졸리, 스칼렛 요한슨, 에이미 아담스, 케이트 허드슨 등 쟁쟁한 배우들 이름이 거론됐지만 최종 낙점된 이는 미셸 윌리엄스였다. 언론과 팬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미셸 윌리엄스가 섹시함으로 어필해 온 배우도, 미모로 사랑받아 온 배우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공개되는 순간, 잡음은 쑥 들어갔다. 마릴린 먼로 특유의 관능과 순수함을 미셸 윌리엄스가 너무나 찰떡같이 표현해냈으니 말이다. 미셸 윌리엄스는 이 작품으로 골든글러브는 물론 각종 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여우주연상을 싹쓸이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며 배우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타짜> 조승우는 어떻게 팬들 마음을 돌렸나

조승우

‘타짜’ 하면 떠오르는 얼굴은 단연 조승우다. 그는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에서 주인공 고니를 맡아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그런 조승우도 캐스팅 당시에는 적지 않은 미스 캐스팅 논란을 겪었다는 사실. 덩치가 크고 곰처럼 우직하게 표현된 원작의 고니와 조승우의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조승우는 제작보고회에서 “고니 역할의 미스캐스팅이란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원작자 허영만 작가와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고, 실제로 만화와는 또 다른 캐릭터를 새롭게 창조해내며 최동훈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톰 크루즈, 키가 무슨 죄

톰 크루즈

톰 크루즈 역시 이미지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케이스. 그는 <잭 리처> 캐스팅 당시 팬들의 불만에 적지 않게 시달려야 했다. 원작 소설 속 잭 리처는 키 196cm에 몸무게 100kg가 넘는 거구. 170cm 단신인 톰 크루즈와 잭 리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논란의 골자였다. 이에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 톰 크루즈를 감싸고 나섰지만, 팬들의 원성을 잦아들지 않았다. 그러나 톰 크루즈는 잭 리처에 자신만의 개성을 가미하며 논란을 잠재웠고, 속편 <잭 리처: 네버 고 백>까지 찍으며 해피엔딩을 맞는 듯했으나…(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 한다) <잭 리처> 리부트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을 최근 전해왔다. 원작자 리 차일드가 밝힌 톰 크루즈의 하차 이유는 작은 키. <잭 리처: 네버 고 백>의 기대 이하 성적과도 무관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쨌든 톰 크루즈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톰 크루즈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레스타트로 캐스팅된 1994년에도 캐스팅 수난을 겪었다. 원작자 앤 라이스가 그의 이미지가 레스타트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때는 톰 크루즈의 완승. 완성된 영화를 본 앤 라이스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했으니 말이다. 앤 라이스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톰 크루즈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한 건, 유명한 일화다.


영원히 고통 받은 해리포터 첫 사랑

케이티 렁

전 세계가 사랑하는 소년의 첫사랑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해리 포터(대니얼 래드클리프)의 첫사랑, 작가 J.K. 롤링이 온갖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한 소녀의 이름은 초 챙. 4000:1의 경쟁률을 뚫고 초 챙 역에 캐스팅된 행운의 주인공 케이티 렁의 사진이 공개된 건 2005년 8월의 일이다. 공개와 동시에 인터넷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호그와트의 최고 미인이라고 하기엔 초 챙의 외모가 부족하다는 항의 때문이었다. 대니얼 래드클리프의 팬들이 케이티 렁의 외모를 트집 잡아 인신공격을 가하면서 ‘인종차별’ 논쟁까지 일었다. 여기에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엠마 왓슨)가 커플이 되길 은근히 응원했던 팬들의 목소리까지 엮이면서 ‘해리 포터의 첫사랑’은 시련 아닌 시련을 겪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초 챙을 향한 논란은 영화가 개봉한 후에도 꺼지지 않았다.


상상 속 왕자님 구현은 힘들어

제이미 도넌

찰리 허냄

매력적인 캐릭터의 첫사랑이 되는 것만큼이나 험난한 것? 무수히 많은 여성들의 상상 속 왕자님으로 분하는 일이다. ‘엄마들의 포르노’로 불리며 전 세계적인 메가 히트를 기록한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영화화 과정이 그랬다. 캐스팅이 발표될 때마다 영화 제작진은 자신들의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전 세계 독자들과 팽팽한 신경전을 펼쳐야 했다. 독자들은 자신들이 투영한 완벽한 할리퀸 왕자님을 누가 맡을까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적극적으로 캐스팅에 영향력을 끼치려 했다. 찰리 허냄이 그레이 역에 캐스팅됐을 때, 이에 반발한 팬들의 반대 서명이 4만5천 건이나 모인 일화가 이를 보여준다. 이후 허냄은 스케줄을 이유로 영화에서 하차했는데, 진짜 하차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도 소문이 무성하다. 팬들의 거센 항의에 허냄이 백기를 든 것일까. 진실은 저 너머에. 잘 알려졌다시피 허냄이 빠진 자리는 캘빈 클라인 속옷 모델로 활약했던 제이미 도넌이 채웠다.


갤 가돗, 시오니스트 논란

갤 가돗

“평화의 전사가 알고 보니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자)?” 영화 속에서 전쟁의 비극을 내내 설파한 배우가 현실에선 이와 배치되는 행동을 했다면? 아이러니일 수 없다. 논란의 주인공은 <원더우먼>의 히어로 갤 가돗. 갤 가돗은 지난 2014년 이스라엘 방위군이 가자 지구에 폭격을 가했을 때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스라엘 방위군을 응원하는 글을 올려 시오니스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레바논은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영웅이 되기에 갤 가돗은 부적절하다며 <원더우먼> 보이콧이라는 칼을 꺼내 들었고, 해당 논란은 전 세계로 발 빠르게 보도됐다. <원더우먼>은 논란 속에서도 흥행에 성공하며 헛발질 연속이던 DC를 암흑의 늪에서 건져 올렸으나, 갤 가돗 논란은 이 영화의 오점으로 남았다.


조니 뎁, ‘아 과거의 영광이여’

조니 뎁

수현

‘해리포터’ 팬들 사이에서 일었던 <신비한 동물사전> 조니 뎁의 출연 논란. 논란은 뎁이 지난 2016년 전 부인인 엠버 허드에게 가정폭력 혐의로 피소된 데에서 시작됐다. 가정폭력 소송은 취하됐고 이혼 소송 역시 마무리됐지만, 팬들은 가정폭력 혐의가 제기된 조니 뎁이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에 출연해서는 안 된다며 하차 요구 운동을 벌였다. 이에 각본을 쓴 J.K. 롤링이 조니 뎁 옹호에 나서기도 했지만 잡음은 영화 개봉 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를 둘러싼 캐스팅 잡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수현이 연기한 캐릭터가 내기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 한 차례 일었다. 내기니는 원작에서 볼드모트가 소중히 여겼던 뱀인 동시에 호크룩스. 시리즈에선 내기니가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전혀 언급이 없었기에 팬들은 원작의 설정을 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백인 남성이 사역하는 동물이 알고 보니 아시아 여성이었다는 점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흑인이 스톰트루퍼라고?”

존 보예가

“흑인이 광선검을 들어?” “흑인 스톰트루퍼는 반댈세!” 팬덤이 강한 시리즈의 운명은 가끔 가혹하다. 2015년, <스타워즈> 시리즈의 7번째 작품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공식 예고편이 공개되자 온라인은 환호와 비명으로 난리가 났다. 비명의 목소리를 낸 일부 SNS 이용자들은 영화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점에 난색을 표했다. 이들은 급기야 SNS상에서 ‘#BoycottStarWarsVII’, ‘#whitegenocide’ 등의 해시태그를 달며 광선검을 쥔 사나이 존 보예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해당 영화는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여성(데이지 리들리)이라는 점에서도 일부 팬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존 보예가와 데이지 리들리는 논란을 무색케 하는 존재감을 영화에서 드러내며 새로운 포스의 힘을 증명해 보였다.


<너의 이름은.> 연예인 마케팅?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국내 배리어프리버전(시·청각 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자막화면해설 영화) 제작과정에서 더빙 논란을 빚은 케이스다. ‘성우를 기용하겠다’며 공개 오디션을 예고한 수입배급사가 돌연 남자 주인공 ‘타키’역에 지창욱, 여자 주인공 ‘미츠하’역에 김소현을 캐스팅하며 ‘연예인 마케팅’이라는 비판을 샀다. 비판에 전문 성우들이 가세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는데, 목소리 출연료 전액을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 기부하는 취지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배우들도 뜻하지 않은 상황에 난처해했다는 후문. 김소현은 한 인터뷰에서 “그런 (더빙) 논란이 있는 것도 후에 알았다. 잘 알지 못하고 시작했던 부분이 있던 게 사실이라 그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밝힌바 있다.


할리우드 고질병, ‘화이트워싱’

틸다 스윈튼

<공각기동대>의 스칼렛 요한슨(원작의 일본인 캐릭터), <닥터 스트레인지>의 틸다 스윈튼(티베트인 역할), <알로하>의 엠마 스톤(중국계 하와이안 역할) 등 잠잠해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터지는 ‘화이트워싱’(백인이 아닌 캐릭터인데도 백색 인종 배우로 캐스팅하는 행태)은 할리우드에서 만나기 쉬운 캐스팅 논란 중 하나다. 이에 대한 항의로 2016년 소셜미디어에서는 ‘존 조 놀이’(#StarringJohnCho·할리우드 영화 포스터에 존 조의 얼굴을 합성해 공유하는 문화 현상)가 유행하기도 했다. <헬보이>에 일본계 미국인 소령 벤 다이미오 역으로 발탁됐던 에드 스크레인은 인종의 다양성을 응원하며 자진 하차해 지지를 받은 경우. 그는 성명을 통해 “처음 출연 제의를 수락했을 때 원작의 캐릭터가 아시아계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뒤늦게 이를 알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출연을 취소했다. 인종적 다양성을 제대로 표현하는 건 중요하다. 언젠가 이런 논쟁이 필요하지 않고 예술에서 모두가 동등하게 표현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정시우 /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