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이 개봉 15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극한직업>은 15번째 '천만영화'가, 영화를 연출한 이병헌 감독은 12번째 '천만감독'이 됐다. 물론 모든 감독이 '수원왕갈비통닭'처럼 곧바로 대박을 기록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최고의 기록이 있다면 최저도 물론 있는 법. 이번엔 천만감독들의 '최저 관객' 작품을 짚었다. 독립영화로 데뷔한 이병헌 감독은 그 격차가 특히 크다. 최저 관객수는 얼마고, 그게 무슨 영화냐고? 정답은 저~~~ 아래에 있다.
강우석
2003년 <실미도>
1108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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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고산자, 대동여지도>
94만 명
<미스터 맘마>(1992), <투캅스>(1993), <마누라 죽이기>(1994), <투캅스 2>(1996) 등 히트작을 매해 연거푸 내놓으며 90년대 한국영화계 흥행 마스터로 군림한 강우석. 살짝 주춤했던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1998)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공공의 적>(2002)으로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두루 받은 그는 이듬해 말 개봉한 <실미도>(2003)로 첫 천만 감독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꾸준히 '공공의 적' 시리즈, <이끼>(2010) 등으로 준수한 성공을 거뒀지만, 2010년대 들어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어거나 그러지 못하는 성적을 내놓았다. 백두산 천지를 비롯, 한국 각지의 절경을 담아낸 야심작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는 김지운/송강호의 <밀정>에 크게 밀려 100만 관객조차 채우지 못했다.
강제규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1174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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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장수상회>
116만 명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였던 강제규는 특수효과를 적극 활용한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1996)과 당시 기념비적인 흥행 기록을 세운 <쉬리>(1998)를 성공시키며 90년대 말을 대표하는 흥행 감독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2004)로 강우석에 이어 두 번째 천만 감독이 됐다. 7년 만에 발표한 또 다른 전쟁영화 <마이웨이>(2011)는 전작 대비 1/5에도 못 미치는 관객을 동원했다. 힘을 쫙 덜어낸 채 노년의 로맨스를 그린 <장수상회>(2014) 역시 100만을 살짝 웃도는 성적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준익
2005년 <왕의 남자>
1230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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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변산>
49만 명
이준익은 감독 데뷔작 <키드캅>(1993)의 실패 이후 제작, 외화 수입에 전념해오다가 10년 만의 신작 <황산벌>(2003)의 성공으로 다시 활발히 연출에 집중했다. 세 번째 영화 <왕의 남자>(2005)는 그 흔한 '스타 배우' 없이 무려 65일 만에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라디오스타>(2006), <소원>(2013), <사도>(2014), <동주>(2015), <박열>(2017) 등 사극과 현대물을 오가며 들쑥날쑥한 성적을 거둬왔지만, 작년 개봉한 구수한 청춘영화 <변산>(2018)은 49만 명을 동원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봉준호
2006년 <괴물>
1302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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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플란다스의 개>
(서울) 5.7만 명
한국 최고 감독으로 손꼽히는 봉준호의 시작은 순탄치 못했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는 우리 일상을 뒤틀어 페이소스를 유발하는 봉준호 특유의 유머가 충분히 발휘됐지만 (서울 기준) 5만7천 관객만을 만났다. 다만 침체는 거기까지. <플란다스의 개>의 차승재 프로듀서와 다시 한번 손잡은 <살인의 추억>(2003)의 큰 성공에 힘입어 시도한 SF 괴수영화 <괴물>(2006)은 한국에서 비주류 장르라고 일컬어지던 장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1300만 관객을 불러들였다.
윤제균
2009년 <해운대>
1145만 명
2014년 <국제시장>
1425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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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낭만자객>
94만 명
윤제균은 첫 '쌍천만 감독'이다. 2001년 <두사부일체>로 데뷔해 <색즉시공>(2002), <1번가의 기적>(2007) 등 감동이 가미된 코미디로 꾸준히 일정 이상의 흥행을 이뤘고, 한껏 스케일을 키운 <해운대>(2009), <국제시장>(2014)으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낭만자객>(2003)은 순풍에 돛 단 듯한 행보에 오점처럼 남은 영화다. '청소년 관람불가' 코미디인 전작의 방향에 무사 코드를 곁들였지만, 장사도 시원치 않았을 뿐더러 관객 평도 아주 나빴다.
최동훈
2012년 <도둑들>
1298만 명
2015년 <암살>
1270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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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범죄의 재구성>
213만 명
최동훈 감독은 시작부터 순조로웠다. 탄탄한 시나리오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과 수많은 명대사를 쏟아낸 <타짜>(2006)를 연달아 성공시켜 스릴러/케이퍼 무비의 대가로 올라섰다. 3년 꼴로 신작을 발표한 그는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도둑들>(2012), <암살>(2015)로 다시 한번 쌍천만의 기록을 세웠다. 최저 관객 작품이 213만 명을 동원한 <범죄의 재구성>이니 15년 커리어 내내 흥행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셈이다.
추창민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
1232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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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년의 밤>
53만 명
추창민의 영화는 소박하고 따뜻하다. <마파도>(2004), <사랑을 놓치다>(2006),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 등을 거쳐, 추창민표 휴머니즘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로 1200만이 넘는 관객을 만났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작은 계속 늦춰졌다. 탄탄한 플롯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을 삼았다는 점만으로 기대치가 대단했지만 촬영을 마친 지 근 2년 만에 빛을 본 <7년의 밤>(2018)은 철저히 관객에게 외면됐다.
이환경
2012년 <7번방의 선물>
1281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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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챔프>
53만 명
귀여니 소설을 원작으로 한 두 영화 <늑대의 유혹>과 <그 놈은 멋있었다>가 2004년 7월 22일 같은 날 개봉했다. 이환경 감독의 데뷔작 <그 놈은 멋있었다>만 고배를 마셨다. 임수정 주연의 승마 영화 <각설탕>(2006)은 <괴물>의 흥행 신드롬 가운데서 나름 소박한 성공을 거두었고, 5년 후 비슷한 소재의 <챔프>를 내놓았다. 서서히 흥행력에 물이 오르고 있던 차태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각설탕>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음 작품 <7번방의 선물>(2012)이 설날 연휴의 특수를 제대로 누리며 예상치 못한 대박을 터트렸다.
양우석
2013년 <변호인>
1137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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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강철비>
445만 명
첫 영화로 곧장 '천만'의 주인공이 된 감독이 있다. <변호인>(2013)의 양우석 감독이다. 웹툰 작가였던 그는 본래 웹툰용 시나리오로 <변호인>을 썼지만, 학교 선배였던 영화사 대표의 청을 받아 영화 시나리오는 물론 연출직까지 맡게 됐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 아래, 송강호의 명연에 비춰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는 뭇 대중들을 연말연시 극장가로 불러들였다. 2011년 연재했던 <스틸 레인>을 영화로 옮긴 <강철비>(2017) 역시 크리스마스 시즌 경쟁 가운데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김한민
2013년 <명량>
1761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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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핸드폰>
63만 명
<명량>은 2013년 여름방학 시즌에 개봉해 그야말로 한국영화 흥행사를 다시 썼다. 김한민은 <명량> 이전에도 꽤 괜찮은 흥행력을 자랑한 감독이었다.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2007)은 220만, 또 한번 박해일을 기용해 도전한 사극 <최종병기 활>(2011)은 750만 관객을 넘겼다. 두 영화 사이에 만든 <핸드폰>(2008)만 유일하게 흥행에 실패했다. 소재와 흥행 성적으로만 보면 사극에서 크게 강점을 보인 셈이다.
류승완
2015년 <베테랑>
1341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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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서울) 6만 명
멀티플렉스 이전 세대부터 활동한 경우를 제외하면, 류승완 감독은 가장 오랜 경력을 거쳐 천만 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15년. 2000년 단편 4개를 한 장편으로 묶은 '독립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주목받기 시작해 화려한 액션에 투박한 드라마가 가미된 영화들을 통해 서서히 흥행 감독으로서 자리를 굳혀 나갔다.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 그리고 <베테랑>(2015)까지 2010년대 들어 발표한, 공권력과 악당들의 대결을 그린 작품들이 관객수 그래프를 부쩍 가파르게 만들었다.
연상호
2016년 <부산행>
1156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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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돼지의 왕>
1.9만 명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는 염세적이고 잔혹해서 아이들에겐 보여줄 수 없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실험적인 단편들을 거쳐 처음 내놓은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와 독립영화계 스타들의 목소리 연기 참여로 찬사를 이끌어냈고, 기독교를 사칭한 이단 종교에 초점을 맞춘 차기작 <사이비>(2013)가 더 큰 성과를 내 그는 한국영화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첫 실사영화 <부산행>(2016)이 천만 관객을 훌쩍 넘기며, 연상호를 인식하는 대중의 시선은 많아졌고 달라졌다. <부산행>보다 한 달 늦게 개봉된 애니메이션 <서울역>(2016)은 "<부산행>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이 됐다.
장훈
2017년 <택시운전사>
1218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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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영화는 영화다>
130만 명
김기덕의 연출부/조감독을 거쳐 중저예산 액션 <영화는 영화다>(2008)로 데뷔해 130만이라는 유의미한 흥행을 이룬 장훈 감독은, 2010년 송강호와 강동원을 내세운 <의형제>를 크게 히트시키며 한국영화계의 기대주로 손꼽혔다. 100억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전쟁영화 <고지전>(2011)은 안타깝게 세일즈에서 미끄러졌지만, 장훈의 연출력에 대한 믿음만큼은 더욱 공고히 했다. <택시운전사>는 그가 6년 만에 내놓은 네 번째 영화였다. 예의 영화적 긴장감은 푹 꺼지긴 했으나 (혹은 꺼진 덕에?) 여름방학 특수와 5.18 광주 학살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에 힘입어 1218만 관객을 동원했다.
김용화
2017년 <신과함께-죄와 벌>
1441만 명
2018년 <신과함께-인과 연>
1227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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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미스터 고>
133만 명
김용화 감독은 연출부/조감독 생활을 거치지 않고 곧장 연출한 <오! 브라더스>(2003)가 314만, 두 번째 영화 <미녀는 괴로워>(2006) 그 두 배 이상의 성적을 남겼다. <국가대표>(2009) 역시 850만에 육박하는 성공을 누렸고, 김용화 감독은 직접 설립한 VFX 업체 덱스터 스튜디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든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삼은 야구영화 <미스터 고>를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흥행/비평 면에서 철저히 실패작으로 평가받았다. 약 22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900만 명 이상이었다고. 하지만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2부작으로 동시 제작된 <신과함께> 시리즈가 모두 천만의 고지를 가볍게 넘기며, 쌍천만 감독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병헌
2018년 <극한직업>
(2019년 2월 10일 기준) 1283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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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힘내세요, 병헌씨>
3589명
3589명. 강형철 감독의 히트작 <과속스캔들>(2008), <써니>(2011)의 각색하며 영화계에 입문한 이병헌 감독의 장편 데뷔작 <힘내세요, 병헌씨>(2012)이 개봉 당시 극장에서 만난 관객들의 수다. 독립영화계에서도 그리 넉넉한 관객수는 아니었지만,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발휘되는 코미디 감각만큼은 제대로 알렸다. 첫 메이저 영화 <스물>(2014)이 쏠쏠한 반응을 낳았고, 그로부터 3년 후 내놓은 <바람 바람 바람>(2017)은 전작의 1/3에 달하는 밋밋한 성적표를 남겼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뚝딱 완성한 신작 <극한직업>으로 범상치 않은 흥행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다섯 배우들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러닝타임 내내 휘몰아치는 유머와 쫀득쫀득한 대사의 리듬을 구사한 이병헌 감독의 솜씨에 대한 감탄이 무엇보다 크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