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넷플릭스에서 첫 국내 좀비 드라마 <킹덤>이 공개됐다. 좀비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는 사골이 문드러질 정도로 우리고 또 우려낸 소재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낯선 재료다. 두 편의 좀비 영화가 제작되어 한 번의 대성공과 한 번의 대실패를 경험하면서 좀비의 대한민국 적응도를 평가하기도 아직 이른 시점이라 좀비 사극 드라마라는 시도에 기대와 함께 우려도 많았다.
좀비의 직접적인 역사는 죽은 자를 주술을 통해 소생시킨다는 민속신앙이 있던 17세기의 아이티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좀비에 대한 개념의 대부분은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를 제외한다면) 1968년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으로부터 기인한다. 그 이후 조지 A. 로메로의 <더 데드>(The Dead) 시리즈와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시리즈, 댄 오배넌 <바탈리언>과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 등으로 이어진다.
조지 A. 로메로 이후로 소설과 영화는 물론 코믹스, 망가,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매체에서 좀비를 다루었지만 드라마는 가장 늦게 합류한 편이었다. 20세기 좀비물은 수많은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증명하듯 주류 장르가 아니었다. 특히 사지가 떨어져 나가고 뇌를 파먹는 행위 등 좀비물 특유의 문화 덕분에 안방으로의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었다. <킹덤>의 김은희 작가가 결국 국내 방송국이 아닌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이유에도 예산 문제와 더불어 여전히 높은 국내 방송문화의 진입장벽이 있었다.
이렇듯 좀비에 관해서는 후발주자였던 드라마는 21세기 들어 오히려 좀비붐을 주도하는 축이 되었다. 영화가 이에 영향을 받아 2014년에만 50여 편의 좀비물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드라마에서도 2010년대 들어 수많은 좀비가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다만 좀비가 짧은 시간 안에 갑자기 폭주하면서 피로도도 동시에 급격히 올라감에 따라 색다른 시선과 규칙을 적용한 다양한 시도의 드라마가 나오고 있다. 이젠 좀비도 골라 먹는 시대,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AMC, 2010년~ <워킹 데드>
또다시 말하기엔 입이 아프지만, 빼면 또 섭섭할 좀비 드라마. 21세기 들어 좀비의 입지를 가장 크게 넓힌 작품은 영화나 코믹스가 아닌 드라마 <워킹 데드>였다. <워킹 데드>는 2003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로버트 커크만과 토니 무어의 동명의 코믹스를 바탕으로 한다. 소비층이 제한적인 코믹스에서 대중성이 강한 TV로 이동하면서 팬층을 대폭 넓힐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단지 좀비 드라마에 머무르지 않고 2010년대 흥행 미드의 중심이 되었다.
<워킹 데드>는 좀비(walker)로 종말을 맞이한 세상의 처참한 환경과 잔혹한 생존법칙을 <미스트>의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사실적이고 거친 화면에 담아 완성하면서 기틀을 잡았다. 하반신이 절단된 좀비가 상체만 끌고 가는 모습은 20년 전만 해도 피터 잭슨의 저예산 컬트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21세기의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에서도 이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드라마는 단번에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임무수행 중 부상을 당한 경찰 릭 그라임스(앤드류 링컨)가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고 맞게 된 세상은 이미 좀비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드라마는 그 이후 릭을 중심으로 점차 늘어나기도 줄기도 하는 그의 일행을 따라간다. 좀비와 싸울 일보다 주로 사람끼리 싸울 일이 훨씬 많은 릭 일행의 여정은 종말의 시대에서 가장 큰 적은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씁쓸하게 증명한다. 다만, 시즌이 길어질수록 비슷한 양상의 싸움이 반복되고 잔혹함만 더해지면서 시즌 7 이후로는 인기가 상당히 꺾인 편이다.
자매품으로 <워킹 데드>의 인기를 업고 2015년부터 방영된 <피어 오브 워킹 데드>가 있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남동부를 배경으로 한 <워킹 데드>와 달리 멕시코를 포함한 남서부를 배경으로 한다. <워킹 데드>의 인기에 힘을 입어 높은 관심 속에 출발했지만, 결국 형보다 나은 아우는 되지 못했다.
Syfy, 2014년~2018년 <Z 네이션>
<Z 네이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워킹 데드>와 가장 유사한 드라마라는 점이다. 이 점은 <워킹 데드> 팬에게는 친숙함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짝퉁이라는 인상도 함께 부여할 가능성을 키우고 말았다. <Z 네이션>은 <워킹 데드>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만큼 필연적으로 모든 면에서 비교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워킹 데드>보다 부족한 예산과 배우들로 만든 <Z 네이션>은 일면 1970~80년대 저예산 영화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리고 <워킹 데드>에서 사람들끼리만 싸우는 것에 지친 시청자들은 좀비 살상에 좀 더 열정을 보이고 있는 <Z 네이션>에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듯하다. 그것도 더 잔인하게.
드라마는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한 좀비 백신 생체실험의 유일한 생존자 머피와 그를 뉴욕에서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있는 캘리포니아까지 배달해야 하는 일행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북극권 안의 시설에 반려견 펍과 고립된 시티즌Z도 있다. 그는 해커 출신 NSA 직원으로 종말이 온 시대에도 모두를 감시하고 지켜보며 소통한다.
문제는 머피가 이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데다 좀비와 인간의 하이브리드가 되면서 기묘한 능력까지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거다. 게다가 툭하면 서로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단합력과 일관성이라고는 ‘1도’ 없는 구성원들의 성향도 드라마의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모두가 발암유발자라는 평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넷플릭스, 2019년~ <킹덤>
<킹덤>은 국내에서 연기력과 고증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언어와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해외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0세기형 서양 괴물인 좀비를 다룬 장르가 17세기 동양의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갔다는 점만으로도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점이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의 건축, 예식, 의복, 하다못해 갓 마저도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좀비 장르라는 레드오션에서 도드라지는 특이점이 되었다.
봉준호의 <괴물>이 그랬듯 <킹덤>도 활달한 ‘괴물’과 엮인 액션 못지않게 사회 배경에도 많은 투자를 한다. 시대 배경이 백성들이 두 번의 전란을 지나며 무능한 임금과 조정을 겪은 후라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조선의 화려한 궁궐과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장면들 사이사이로 끼어드는 참혹한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은 특히 국내 시청자들을 가슴 아프게 한다. 주로 정부가 배제되고 개인이나 개인주의가 확장된 소규모 그룹의 생존을 다룬 좀비 미드와 달리 국가 지도층과 사회 계급의 문제를 부각한 좀비 ‘한드’ <킹덤>을 많은 외국 시청자들은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Starz, 2015년~2018년 <애쉬 vs 이블 데드>
<애쉬 vs 이블 데드>는 샘 레이미 감독의 1981년작 <이블 데드>를 기준으로 30여 년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블 데드> 시리즈의 아이콘이 된 배우 브루스 캠벨이 나이가 든 모습의 애쉬로 돌아왔다. 세월은 흘렀고 몸은 무거워졌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 전기톱 팔과 사지를 절단하고 짓는 익살스러운 표정만은 그대로다. 샘 레이미가 기획하고 극본을 썼으며 파일럿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공포에 집중한 <이블 데드>보다는 잔혹코믹호러페스티발인 <이블 데드 2>와 <이블 데드 3: 암흑의 군단>에 가깝다. CGI의 발전으로 잔혹한 묘사는 영화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세련됐지만, 이젠 잔혹함에 대한 면역력이 향상된 탓인지 공포보다는 코미디를 더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애쉬 vs 이블 데드>를 좀비 드라마로 봐도 되는지는 <이블 데드> 시리즈를 좀비 영화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는 좀비의 정의에 대한 논쟁으로도 이어진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블 데드’는 악령이 육체를 사로잡은 형태라는 점을 거론하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보다는 <폴터가이스트>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가장 흔한 좀비의 유형인 죽었다가 소생되는 시체는 <이블 데드> 시리즈에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그러한 태생과 상관없이 흉측하게 훼손된 육체를 끌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다가, 사지를 절단당하고 찔리고 뭉개지며 퇴치되는 형태는 좀비의 그것을 많이 닮았다. <이블 데드>가 그 이전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이다. <이블데드>는 그대로 그 이후의 좀비 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좀비 영화의 역사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Syfy, 2014년~2015년 <헬릭스>
<워킹 데드> 시즌 1을 통해 명성을 높이고 <Z 네이션>에도 등장했던 CDC가 이번엔 드라마의 주역이 되었다. 다만 무대는 조지아도 캘리포니아도 아닌 북극이다. 누구에게든 무슨 말 한마디만 걸어도 곧 “응, 나도 박사야”라는 대꾸가 돌아오는, 수백 명의 박사들이 가득한 북국의 첨단 연구시설에 기괴한 바이러스가 퍼진다. 이에 앨런 박사를 중심으로 한 CDC의 신속 대응팀이 고립된 연구소로 파견되어 감염되면 벡터(vector)가 되어 좀비와 같은 증상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아 나선다.
외부와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서 CDC 팀은 바이러스나 벡터와의 싸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구성원들과도 치열한 심리 싸움을 치러야 한다. 협조하는 듯 마는 듯한 연구소장, 우리 편인지 적인지 모를 경호요원, 그리고 무언가를 은폐하려는 듯한 군에서 파견된 장교까지, 눈치싸움할 일도 힘 겨루기 할 일도 태산이다. 이 와중에 CDC 팀 내에서 전처와 친동생, 그리고 신참에게도 뻗은 삼각, 사각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헬릭스>의 두드러진 점은 북극에 고립되었다는 설정이다. 존 카펜터의 <괴물>이 증명했듯이 극지방이라는 지리적인 요소와 함께 추위와 눈보라에 갇혀 위축되고 고립된 배경은 공포감 조성에 벡터보다 크게 일조한다. 외부와 단절된 제한된 영역 내에서 파멸의 기운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가지만, 우리가 의지하던 바깥세상의 법이나 도덕이 적용되지 않으면서 모두가 생존 본능만 살아남은 상태로 서로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간다. 똑똑한 사람들은 다를 줄 알았는데 말이다. 시즌 2에서 무대는 북극에서 멀리 홀로 떨어진 섬으로 옮겨진다.
BBC 3, 2013년~2014년 <인 더 플레쉬>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좀비와 다르게 말도 하고 일도 하며 인간에 더 가까운 좀비에 익숙해져야 한다. 수많은 좀비물들이 좀비로 인한 종말을 다루면서도 치료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것에는 상당히 인색했다. 영드 <인 더 플레쉬>는 한때 좀비 역병이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몇 년 만에 이를 제어할 방법을 찾았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좀비난리(The Rising)를 겪은 사회의 문제들은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 보인다.
좀비의 특성을 억제하는 약물 개발로 사람의 뇌를 파먹던 좀비(rotter)들은 예전의 기억과 감각을 되찾게 된다. 약물로 예전의 ‘나’로 돌아간 이들은 이제 ‘부분적사망증후군’(PDS)을 겪는 환자로 분류되어 정부의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이전의 가족들로 돌아간다. 다만 매일 약물을 투약하고, 약물로도 변하지 않는 창백한 피부와 변형된 눈동자를 가릴 화장품과 콘택트렌즈도 챙겨야 한다.
주인공 키어런도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좀비 출신이다(그의 성이 ‘워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키어런은 좀비난리 이전에 친구를 잃고 죄책감에 자살을 했다가 좀비가 되었다. 약물을 통해 이성을 되찾았지만, 이젠 좀비였을 때 자신에게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한편 좀비였다가 돌아온 아들을 부모님은 복잡한 심경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으로 감싸주지만, 키어런이 아끼던 여동생은 그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난리를 겪는 동안 영국에는 HVF라는 일종의 민간 군사조직이 결성되었고, 그들과 교회의 주도로 마을에는 좀비는 물론 PDS 환자들에게 적대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HVF는 키어런이 사는 보수적인 마을 같은 곳에서 법의 실질적인 집행권과 사법권을 갖고 있는 자경단처럼 활동하면서 몰래 마을로 돌아온 PDS 환자들을 찾아내서 즉결 처형을 한다. 그 모습은 흡사 유대인을 색출해 처형장으로 보내던 나치의 게슈타포 혹은 전후 프랑스나 폴란드와 같은 나치 점령지는 물론 영국 등 전 유럽에서 나치 동조자들을 대상으로 때론 도를 넘은 마녀사냥이 이뤄지던 유럽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렇게 예전의 역사와 현재의 이민자 문제로 이어지는 증오와 갈등이 투영되는 <인 더 플레쉬>는 여타 좀비물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무게감을 갖고 있다.
The CW, 2015년~ <아이 좀비>
동명의 코믹스에서 출발한 <아이 좀비>는 20대의 매력적인 여성 리브 무어가 주인공이다. 당연히 그녀는 좀비다. 우연한 기회에 좀비가 된 리브는 피부가 창백하고 머리카락이 유난히 밝은 금발인 것을 제외하면 외관상 좀비인 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덕분에 인간들 틈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섞여 평범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좀비가 되기 전 의과 레지던트였던 적성을 살려 식량이 되는 뇌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시체안치소의 검시관이 된다.
그녀는 위기 상황에서 헐크처럼 완연한 좀비의 모습과 힘을 지닌 ‘풀좀비모드’로 변신할 수 있다. 또한 뇌를 먹으면 일시적으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 재능은 물론 기억의 일부까지 얻게 되는 슈퍼파워를 발견하고는 형사와 협력하며 이 재능을 범죄자들을 잡는 데 활용한다.
위의 설정에서도 대충 감이 오겠지만, 외로워도 좀비라도 절대 울지 않는 활달한 캐릭터인 리브처럼 <아이 좀비>는 상당히 밝고 긍정적인 톤을 유지한다. 전도유망한 레지던트이자 가족의 자랑이었던 리브는 하루아침에 지하 검안소로 들어가고 파혼까지 하며 별종으로 찍히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특유의 낙관주의와 높은 자존감을 무기로 극복한다.
<아이 좀비>는 매우 세부적인 기억력을 가진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언포게터블>과 같은 재료를 <뱀파이어 해결사>처럼 발랄하게 톡톡 튀는 틴에이지 무비 감각으로 맛을 낸 느낌이 있다. 덕분에 <CSI>에 버금가는 신체 장기와 절단 묘사에도 다양한 레시피를 펼치며 뇌를 섭취하는 리브의 먹방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뇌가 알탕의 이리처럼 맛나게 보이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넷플릭스, 2017년~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
피와 살이 튀는 순간은 물론 최악의 상황에서도 항상 해맑기로는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도 밀리지 않는다. 쉴라(드류 베리모어)와 조엘(티모시 올리펀트)은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한적하고 지루한 동네인 산타 클라리타의 평범한 부동산 중개인 부부다. 그런데 쉴라는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좀비가 된다.
다행히 좀비가 되긴 했어도 혈색도 머리색도 남아 있는 쉴라가 눈에 뜨이게 달라진 점이라고는 식습관이 남달라졌다는 사실뿐이다. 쉴라가 생고기 그것도 인육만을 먹을 수 있게 되자 평범했던 가족은 식량 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제목에 있는 ‘다이어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살 빼는 다이어트가 아닌 ‘식생활’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드류 베리모어의 여전히 밝고 귀여운 매력은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에서도 빛을 발한다. 좀비가 된 아내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남편 역의 티모시 올리펀트의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도 재미를 더한다.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는 수사에 집중하는 <아이 좀비>에 비해 코미디를 진중하게 밀고 나간다. <모던 패밀리>의 가족에 <파고>의 위트가 더해진 듯한 드라마는 호러 코미디보다 가족 중심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 ‘로코’를 좋아한다면 추천! 그러나 역시 쉴라의 특별한 식습관에 적응은 필요하다.
ABC/넷플릭스, 2015년~ <착오>
<착오>는 다른 시대에 사망했던 7명의 사람들이 소생해서 공동묘지 무덤에서 동시에 일어나면서 시작한다. <월하의 공동묘지>인가, 호러 드라마인가 싶겠지만 <착오>는 이 장면조차 요란을 떨지 않고 차분하게 다루며, 그 이후의 전개 또한 일상을 다룬 잔잔한 드라마를 더 닮았다.
귀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좀비라고도 하기도 뭣한 이들(The Risen)을 발견한 경찰 제임스는 의사 맥켈러 박사와 함께 담담하고 따뜻하게 보살피기 시작한다. 더구나 ‘리즌’ 중에 2년 전에 사별한 아내 케이트를 발견하고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는 비밀로 한다. 동시에 죽은 자가 되살아난 원인과 그로 인해 흙더미 위로 새로 드러나기 시작한 문제들을 해결할 방안을 찾고자 노력한다.
드라마 초반은 죽었던 아내가 돌아오면서 복잡해진 제임스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복잡한 심리와 상황, 그리고 다른 시대와 삶을 살았던 리즌 각각의 개인사와 더불어 호주의 역사를 되짚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후반으로 가면서는 점차 소생의 원인과 그 배경을 파헤치는 것으로 중심을 옮겨간다.
<착오>는 좀처럼 쉽게 접할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호주 드라마로 배경인 유라나는 황량한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호주 외딴 시골의 작은 마을이다. 탄탄한 스토리와 단단한 연기, 깔끔한 연출과 여유로운 풍경까지, <착오>는 장점이 많은 드라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소생한 죽은 자들에 대한 신선한 설정과 시선, 그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와 다양한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무덤에서 일어난 이들에게 뻗는 <착오>의 포용력과 공감 능력을 경험하고 나면, 왠지 나도 다음에 만나는 좀비에게 담요 하나 둘러주고 집으로 데려가 씻긴 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내 뇌를 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에그테일 에디터 빈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