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시간의 예술이라 한다. 영화 자체가 시간이 흐르는 과정을 담았기 때문인데, 좀 더 넓게 보면 이 영화가 나오기 위해 공들인 시간이 곧 영화에 묻어나는 것도 이유라고 생각한다. 2월에 개봉하는 <콜드 워>, <이월>(이 영화만 1월 30일 개봉), <험악한 꿈>, <됴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메리 포핀스 리턴즈> 다섯 편에 영화는 모두 오랜만에 돌아온 감독들의 신작이다. 작품을 만나기 전 그들의 전작들을 다시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 ‘뒹굴뒹굴 VOD’를 통해 소개해본다.
이다
Ida, 2013
감독 파벨 포리코브스키|출연 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 아가타 쿠레샤, 조안나 쿠릭|▶<이다> 바로 보기
수녀 안나(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는 서원을 앞두고 이모 완다 그루즈(아가타 쿠레샤)를 만나게 된다. 완다를 통해 안나는 자신이 유대인이며 본명은 이다라는 걸 알게 된다. 안나의 부모님이 어디 묻혔는지도 모른다는 완다의 말에 안나는 함께 묘지를 찾아보자고 권유한다. 두 사람은 묘지를 찾기 위해 안나의 부모님이 살았던 집으로 향한다.
2018년 <콜드 워>를 공개한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전작 <이다>는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폴란드에서 제작된 <이다>는 그해 영·미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뉴욕 비평가 협회상 외국영화상, LA 비평가 협회상 외국어 영화상, 런던 국제 영화제 작품상 등 비영어권 국가에서 제작된 영화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를 누렸다. 4:3 화면 비율 속에 인물 대신 여백을 선택한 미장센이나, 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와 아가타 쿠레샤 등 배우들의 앙상블, 유태인이자 가톨릭 수녀라는 상호배타적 운명의 인물이 마주할 폴란드의 근대사. <이다>에 담긴 이 요소들이 놀라운 합을 보여준다.
가시
Choked, 2011
감독 김중현|출연 엄태구, 박세진, 길해연|▶<가시> 바로 보기
희수(길해연)는 서희(박세진)의 돈까지 엄한 곳에 투자했다가 몽땅 잃고 잠적한다. 희수의 아들 윤호(엄태구)는 회사 생활과 결혼 준비로 바쁜 와중에 엄마에게 빚진 돈을 갚으라는 서희의 성화까지 떠안게 된다. 윤호에게 사채업자까지 찾아오면서 윤호의 생활은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된다.
1월 30일 <이월>을 공개한 김중현 감독의 전작. 8년 전,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이다. 제목과 내용에서 알 수 있듯, 팍팍한 삶의 한 면을 그대로 엿보는 것 같은 영화. 하지만 캐릭터들을 막상 미워할 수만은 없어서 가족이란 불가항력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최근 상업 영화에서 인상적인 캐릭터 연기를 보여준 엄태구의 일상 연기와 길해연의 미우면서도 어딘가 아련한 연기를 만날 수 있다. 다만, 지금 당장 본인의 삶이 팍팍하다면 좀 더 여유 있을 때 보길 권장한다.
보이드 갱
Edwin Boyd: Citizen Gangster, 2011
감독 나단 몰랜도|출연 스코트 스피드먼, 켈리 라일리, 조셉 크로스|▶<보이드 갱> 바로 보기
에드윈 보이드(스코트 스피드먼)는 군인 출신의 버스 기사다. 아내와 두 자식을 데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때때로 참전 군인에 대한 사회의 냉대에 환멸을 느끼곤 한다. 배우의 꿈이 날아간 어느 날, 에드윈 보이드는 짙은 분장을 하고 은행을 턴다. 독특한 분장으로 유명해지고, 이후 수감 생활 중 만난 동료들과 갱단을 조직한다.
2016년에 제작돼 2019년 2월 14일, 3년 만에 개봉하는 개봉하는 <험악한 꿈>. 나단 몰랜도 감독이 <보이드 갱> 이후 5년 만에 공개한 신작이다. <보이드 갱>은 1950년대 미 대륙을 흔들었던 은행강도 에드윈 보이드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다. 모든 열기가 가라앉은 듯한 무채색 화면을 통해 한 인간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은행 강도로 거듭나는 걸 지켜볼 수 있다. 무엇이 이 남자를 강도로 만들었는가로 시작하지만, 이 남자는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로 귀결되는 엔딩이 인상적이다. 소재에 비하면 밋밋한 영화지만 스코트 스피드먼의 복합적인 표정과 컨트리 음악들은 즐길 만하다.
이별까지 7일
ぼくたちの家族, 2014
감독 이시이 유야|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하라다 미에코, 이케마츠 소스케|▶<이별까지 7일> 바로 보기
레이코(하라다 미에코)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한다. 뭘 하고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잊곤 한다. 큰아들 코스케(츠마부키 사토시) 부부가 임신했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 본인은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남편(나가츠카 쿄조)과 코스케, 둘째 아들 슌페이(이케마츠 소스케)는 레이코에게 남은 시간이 7일뿐인 걸 알게 된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이시이 유야 감독의 전작.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 공개한 전작이다. <이별까지 7일>과 이번 신작 사이에 <벤쿠버의 아침>, 드라마 <과자의 집>을 연출했다. 이번 VOD 리스트에 소개된 감독 중 가장 부지런히 작업한 축이다.
일본 영화 특유의 담담한 드라마로 종종 폐부를 찌르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레이코가 자신의 건망증 때문에 병원에 가는 길에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야?”라고 묻거나 남편과 슌페이는 알아보면서 코스케에겐 “당신, 누구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처럼. 모든 걸 감내하던 어머니의 부재로 세 남자가 각자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이야기는 평범한 편이지만 현실적인 부분, 특히 가족 간의 돈 문제를 적극적으로 묘사해 더 아프게 다가온다.
숲속으로
Into the Woods, 2014
감독 롭 마샬|출연 메릴 스트립, 에밀리 블런트, 제임스 코든|▶<숲속으로> 바로 보기
자녀가 없는 베이커 부부, 그들 앞에 마녀가 나타나 자녀를 갖는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숲으로 들어가 붉은 망토, 하얀 소, 노란 머리카락, 빛나는 구두를 찾으라는 것. 한편 숲속에선 늑대가 호시탐탐 빨간 망토를 노리고, 신데렐라가 성에서 도망쳐 나왔고, 잭이 소를 팔기 위해 길을 떠나고 있다.
<애니>, <시카고>, <나인> 등 뮤지컬 전문 감독으로 잘 알려진 롭 마셜 감독의 2014년 작품. 이번에 개봉하는 <메리 포핀스 리턴즈> 직전 작품이다. <숲속으로>는 동화 속 주인공들이 숲에서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동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다. <스위니 토드>를 작곡한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답게 삽입 넘버들은 귀에 맴돌 만큼 인상적이다. 메릴 스트립, 에밀리 블런트, 안나 켄드릭, 크리스 파인 등 배우들의 캐스팅도 화려한 편. 숲이란 공간 때문에 우중충해 보이지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 영화다. 다만 동화를 다룬다고 ‘동화 비틀기’를 기대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어디까지나 전체 관람가 영화니까.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