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데스데이 2 유>

비명이 극장 안을 가득 메운다. 으스스한 기운으로 솜털이 삐쭉 서기도 한다. 따뜻한 히터 바람을 맞으며 공포영화를 보는 사람들. 그렇다. 지금은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다.

과거에 공포영화는 여름이 성수기였다. ‘납량특집극’이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납량은 들일 납(納)에 서늘한 량(涼)을 더한 말로 여름철에 더위를 피하여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는 뜻이다.

지금도 그럴까. 납량특집극은 사라진 지 오래다. ‘공포영화=여름’의 공식은 옛말이 됐다. 어쩌다 이렇게 바뀐 걸까. 정말 사소하지만 궁금증이 생겨 조사해봤다. 최근 몇 년 동안 흥행한 공포영화는 언제 개봉했을까.


<곤지암>

지난 2018년 가장 크게 흥행한 공포영화는 <곤지암>이다. 267만 5575명(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의 관객이 <곤지암>을 보러 갔다. 언제 갔느냐가 중요하다. <곤지암>은 3월 28일 개봉했다. 3월 28일? 흔히 생각하는 공포영화의 배급시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공포영화는 여름, 방학과 한데 묶이는 장르였다. 3월 28일은 덥지도 않고 중고생이나 대학생 모두 학교를 다니는 시기다.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곤지암>의 흥행 요인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배급사 쇼박스 관계자는 “영화 속 무대가 10대와 20대들에게 공포 체험의 성지로 알려진 데다, 1인칭 시점의 촬영 방식이 실제 그 장소 안에 있는 듯한 생생한 몰입감과 현장감, 극도의 공포감을 준 덕분”이라고 흥행 이유를 분석했다. 덧붙여 “공포영화는 여름 성수기에 통한다는 통념을 깨고 3월 비수기에 거둔 성과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곤지암>

위 기사 내용 가운데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수기에 거둔 성과’라는 말이다. 즉, <곤지암>은 배급사에서 크게 기대했던 영화가 아닌데 흥행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3월 비수기에 개봉한 것부터가 기대작이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지난해 쇼박스의 최대 기대작은 겨울 성수기에 개봉한 <마약왕>이었다.

<마약왕>과 <곤지암>을 비교해보자. 공포영화 <곤지암>에는 송강호 같은 유명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마약왕>의 우민호 감독에 비해 <곤지암>의 정범식 감독을 아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곤지암>은 공포 체험 성지라는 장소와 1인칭 시점의 촬영방식이라는 아이디어로 승부한 영화다. 종합해보면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한 <마약왕>에 비해 <곤지암>의 제작비는 초라할 지경이다. 고작 11억 원이다. 이 같은 저예산 영화는 여름에 진입하기 어렵다. 여름 시장은 각 배급사의 텐트폴 영화가 버티고 있다. 결국 <곤지암> 같은 저예산 공포영화는 비수기를 노리는 전략을 세운다. 그리고 성공했다.


<겟 아웃>

한 해 더 과거로 가보자. 2017년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한 공포(혹은 스릴러)영화는 <겟 아웃>이다. 213만 8425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했다. 개봉은? 5월 17일이다. 역시 여름이 아니다. <겟 아웃>은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영화다. 공포영화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 아는 이름이다. 블룸하우스의 공포영화가 전형적인 저예산 영화다. 이를 배급한 UPI는 치열한 여름 시장에 <겟 아웃>을 밀어넣지 않고 봄 시장을 노렸다. 참고로 2017년 여름에는 <택시운전사>, <군함도> 등이 버티고 있었다.

블룸하우스의 흥행작 <컨저링>은 어떨까. 2013년 9월 17일 개봉한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은 미국에서 7월에 개봉한 영화다. 관객수 226만 2758명을 기록한 <컨저링>은 여름 성수기가 아닌 추석에 개봉했다. 2013년 여름에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 손현주 주연의 <숨바꼭질> 등이 개봉했다. <관상>, <스파이>, <슈퍼 배드 2> 등이 개봉한 추석 시장이 좀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저예산 공포영화의 시대가 되니 아예 겨울에 개봉하는 공포영화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인시디어스 4: 라스트 키>는 2018년 1월 31일, 한겨울에 개봉했다. 네이버에 검색해본 결과 이날 최저 기온은 영화 3도다. 홍보사는 이 영화를 ‘이한치한’(以寒治寒)이라는 말로 영화를 소개했다. 서늘한 공포로 더위가 아닌 추위를 이겨내자는 거다.

<인시디어스 4: 라스트 키>


<사바하>

2019년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2월 14일 <해피 데스데이 2 유>가 개봉했다. 미국과 동시에 개봉하는 직배사 UPI의 영화이긴 하지만 어쨌든 겨울에 개봉하는 공포영화다. 전작 <해피 데스데이>는 2017년 11월 8일에 개봉했다. 이 시리즈 역시 블룸하우스의 영화다. 2월 20일에 개봉하는 공포영화는 국내 영화 <사바하>다. 직배사와 달리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직접 겨울 공포영화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뜻이다.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퇴마를 소재로 한 오컬트 장르영화 <검은 사제들>은 2015년 11월 5일에 개봉해 544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검은 사제들>


한때 한국에서 공포영화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시기가 있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다. 사실 이때는 공포영

화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한국영화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여기선 공포영화만 놓고 보자. 이 시기에 개봉한 공포영화로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2003)이 있다. 314만 명을 불러모았다. 또 178만 관객을 모은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 계단>(2003), 110만 명의 <령>(2004), 169만 명의 <알포인트>(2004), 137만 명의 <분홍신>(2006), 112만 명의 <아랑>(2006), 144만 명의 <궁녀>(2007) 등이 있다. 100만 이상의 공포영화가 이렇게 많다. 그밖에 흥행 면에서는 부진했지만 기억할 만한 공포영화로 <거울속으로>(2003), <4인용 식탁>(2003), <쓰리 몬스터>(2003), <기담>(2007) 등이 있다. 참고로 <기담>은 <곤지암>의 정범식 감독의 공동연출작이기도 하다.

<장화, 홍련>

2008부터 약 10여 년 간 한국 공포영화의 흥행 그래프는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렸다. <곤지암>으로 반등하기 전까지 말이다. 10여 년의 시기, 블룸하우스의 습격(?)이 시작됐다. 국내 주요 투자배급사가 공포영화에 관심을 두지 않던 한국은 말하자면 빈 집이었다. 국내 공포영화의 침체, 블룸하우스의 성공 사례로 ‘공포=여름’, 대신 ‘공포=비수기’의 공식이 성립됐다. 여름 성수기에 공포영화를 보기 힘들어진 이유다. 좋은 점도 있어 보인다. 사시사철 언제든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공포영화를 볼 수 있으니까. 공포영화 마니아들은 분명 이런 변화에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있을 듯하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