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닉: 리크루트>에서 빌딩에 매달린 스타뎀.

제이슨 스타뎀은 몸값을 제대로 해내는 배우다. <메카닉: 리크루트>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를 스타뎀은 무리 없이 해낸다. 영화의 홍보문구인 “제이슨 스타뎀, 액션 현업 복귀”는 나무랄 데 없이 잘 뽑은 카피인 셈이다. 그런데! 스타뎀은 언제부터 액션배우였을까.

배우 이전: 다이빙 국가대표, 짝퉁 판매원, 모델
스타뎀은 영국 국가대표 다이빙 팀에서 무려 12년이나 활동했다고 한다. 10미터 플랫폼, 3미터 스프링보드 종목에 출전했다. 아마도 가장 좋은 성적은 1992년 세운 12위 기록이다. 당시 전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다이빙을 잘하는 남자였다는 말이다. 이 정도면 잘 먹고 잘 살 것 같은데 그렇지 못 했던 모양이다. 12등은 좀 애매한 성적이긴 하다. 결국 그는 길거리에 나섰다. 짝퉁을 팔았다. 블랙마켓 세일즈맨이라고 불렸다. 짝퉁 향수 등을 팔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운이 좋았는지 패션모델이 된다. ‘프렌치 커넥션’이라는 의류 브랜드의 모델로 유명해졌다. 그렇게 배우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1990년 다이빙 선수 시절 제이슨 스타뎀. 수염도 없고 머리숱이 많아서 못 알아볼 뻔.
<메카닉: 리크루트> 메인 예고편, 1분 22초에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스타뎀 1초 나옵니다.

배우 데뷔: 가이 리치 감독, 비니 존스
스타뎀의 영화 데뷔작은 1998년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한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다. 거의 서른에 가까운 나이에 배우가 됐다. 스타뎀은 베이컨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실제 길거리에서 짝퉁을 팔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윔블던, 셰필드, 첼시 등에서 뛰었던 전직 축구 선수인 배우 비니 존스 역시 이 영화에 출연하는데 두 사람은 친구 사이다. 어쩌면 존스가 스타뎀을 영화에 꽂아준(?) 건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은 가이 리치의 <스내치>(2000)에도 출연했다. 여기서 문제는 이거다. 스타뎀은 두 편의 영화에서 얼굴을 알리긴 했지만 아직은 액션 스타가 아니었다.

<스내치>에 출연한 스타뎀(맨 왼쪽). 브래드 피트에 비하면 존재감이 형편없었던 시절이다.
친구 비니 존스(왼쪽)와 함께 출연한 코미디 영화 <그들만의 월드컵>.

액션배우의 시작: 원규 감독, 이연걸
원규가 누군가. 홍콩 영화 좀 본 사람은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취권>의 무술감독, 주성치의 <도성>, <이연걸의 보디가드>, <방세옥> 등 그가 참여한 영화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그러던 그가 1998년 <리셀웨폰4>로 할리우드에 무술감독으로 진출했고 2002년 뤽 베송이 제작한 <트랜스포터>를 연출하게 된다. 이때 스타뎀이 주연으로 기용됐다. <트랜스포터>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다른 영화를 살펴봐야 한다. 스타뎀과 이연걸이 출연한 <더 원>(2001)이다. 이때 이연걸이 주연이었고 스타뎀은 조금 비중 있는 조연이었다. 스타뎀은 이연걸을 보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다. 타고난 운동신경을 지닌 스포츠맨이었던 자신의 재능은 액션에 있었다. 이연걸과 스타뎀의 인연은 <더 원> 이후 <워>(2007), <익스펜더블>(2010)까지 이어진다.

<트랜스포터>에서 스타뎀은 (스타뎀이 둘러메고 있는) 서기와 함께 출연했다.
<트랜스포터>에서 덩치 큰 악당과 대결하는 스타뎀. 덩치 큰 악당이 이기는 영화는 언제 나오려나.

액션배우의 완성: 프랭크 마틴=제이슨 스타뎀
아직도 많은 이들은 제이슨 스타뎀을 떠올릴 때 프랭크 마틴이 먼저 기억날 것이다. 스타뎀의 시그니처와 같은 과묵한 성격, 대머리, 짧은 수염, 슈트는 모두 프랭크 마틴의 것이다. <트랜스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특수부대 출신인 프랭크 마틴이라는 캐릭터는 범죄조직이 의뢰한 물건을 운반해주는 일을 한다. 이 시리즈에서 먼저 시선을 끄는 건 카체이싱이다. 1편에선 BMW 7시리즈를, 2편에서는 아우디 A8을 몰고 질주한다. 당연히 운전은 스타뎀이 직접 했다. 2003년엔 <이탈리안 잡>에서 또 한번 운전 솜씨를 뽐냈다. <데스 레이스>(2008)도 빼놓으면 섭섭할 영화다.

<트랜스포터> 자동차 액션 장면.
시리즈 2편인 <트랜스포터: 엑스트림>에선 자동차뿐 만 아니라 제트 스키도 몰았다.
시리즈 3편인 <트랜스포터: 라스트 미션>에선 자전거를 타고 차를 따라잡아 운전석에 올라탄다.

운전 실력만 가지고 액션 스타가 될 수는 없다. 이연걸의 영향인지 영춘권를 비롯해 킥복싱, 주짓수 등을 통해 단련된 맨몸 액션도 스타뎀의 무기다. 다이빙 선수 출신답게 <트랜스포터> 시리즈에서 스쿠버다이빙 장면도 대역을 쓰지 않았다. 몸으로 뛰는 액션배우로서 스타뎀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같은 영화가 못마땅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공개됐을 때 그는 “우리 할머니에게 망토 씌우고 그린 스크린에 세운 뒤, 스턴트 더블로 모든 액션을 하면 된다. 누구든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비전을 연기한 폴 베타니는 “나는 스턴트를 부를 테니, 누군가 제이슨 스타뎀에게 연기 대역을 데려다줄 것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액션배우 계보: 21세기 스타
<트랜스포터> 시리즈의 성공 이후 스타뎀은 확고한 액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말하자면 스타뎀은 21세기의 액션 스타다. 이소룡에서 시작됐고 성룡, 이연걸 등 중국 액션배우의 할리우드 진출 이후 종적을 감췄던 척 노리스, 스티븐 시걸 등 서양 액션배우의 계보를 스타뎀이 잇고 있다. 견자단, 토니 자 등과 경쟁 관계에 있다고 해야 할까. 특히 한국에서 그의 인기가 상당하다. 스마트폰 광고에도 등장하니까. 한국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춘권 등 동양의 무술을 익혀서가 아닐까 싶다. 한국인들의 홍콩 무술영화 사랑은 꽤 지극한 편이다. 어쨌든 스타뎀은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할리우드에서 늘 러브콜을 받는 배우다. <메카닉>, <익스펜더블>, <분노의 질주> 시리즈까지 스타뎀은 언제나 (스타뎀의 몸에 지불하는) 돈값을 한다. 아, 폴 페이그 감독의 코미디 영화 <스파이>에선 이런 자신의 스타일을 희화화시키는 재능도 있다. 물론 감독의 역량에서 비롯된 웃음이긴 하다.

왕년의 형님들과 함께 한 <익스펜더블>.

스타뎀은 스타뎀이다. 스타뎀에게 연기를 논해야 할까. 액션을 논해야 할까. 그에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나 오스카는 결코 필요 없다. 지금 극장에 걸린 <메카닉: 리크루트>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봐야 할 영화다. 스타뎀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영화를 기꺼이 보러 갈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금 여기서 이 글을 보지 않았겠지.

덧, 그의 성 ‘Statham’의 발음은 스타뎀이 아니라 스테이섬에 가깝다. 스칼렛 요한슨이 사실은 스칼렛 조핸슨인데 이미 국내에서 바뀔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스테이섬도 한국에선 그냥 스타뎀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