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설날, 여름방학, 겨울방학 시즌과 함께 극장가의 대표적인 성수기다. 그만큼 수많은 신작들이 명절 특수를 노리고 극장가를 빼곡하게 장식한다. 맛있는 음식들이 그득한 명절상차림 앞에서 뭐부터 먹어야 할지 골똘히 생각하듯, 상영작 리스트 앞에서 잠시 아득해질 이들을 위해 유형별 추석영화 추천선을 준비했다. 이제 영화 보고 찾아갈 맛집만 검색하면 된다.


"나이 먹고 서먹서먹해진
또래 친척들과 뭘 하면 좋을까?"

<밀정>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공유,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

<밀정>은 꾸준히 스타일리시한 장르영화를 만들어온 김지운 감독, 배우 송강호와 공유가 만났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추석 개봉작 단연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번 영화는 스파이물이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는 서사의 몰입도를 높이는 선에서 활용됐다. 김지운 감독은 장르적인 쾌감을 살짝 거두는 대신, 일제 치하를 견뎌냈던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다 강조했다. 일본인 경찰로서 자신의 존재와 의무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인 주인공 이정출을 송강호가 능수능란하게 구현해냈다.


<매그니피센트 7>

감독 안톤 후쿠아
출연 덴젤 워싱턴, 크리스 프랫, 이병헌, 에단 호크, 맷 보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와 <쥬라기 월드>(2015)의 크리스 프랫, <맨 온 파이어>(2004)의 덴젤 워싱턴, <비포>시리즈의 에단 호크, 우리나라 배우 이병헌 등 빽빽한 캐스팅만 봐도 저절로 배가 부르다. <매그니피센트 7>는 이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연기한 7인의 무법자들이 위기에 놓인 마을을 구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과정을 그린다. 7명 모두 각자 다른 능력치를 발휘해 맹활약하는 웨스턴 액션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매그니피센트 7>은 <황야의 7인>(1962)에 이어 걸작 일본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곧 업데이트될 씨네플레이의 <매그니피센트 7> 원작 비교 기사를 정독하면 어디서 영화박사 노릇 좀 할 수 있을지도.


"효도가 뭐 별건가?
부모님과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

  <고산자, 대동여지도>

감독 강우석
출연 차승원, 유준상, 김인권, 남지현, 신동미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강점은 영화만큼이나 TV에서도 큰 인지도를 자랑하는 스타 차승원의 존재다. 널리 백성도 이용할 수 있도록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도 제작에 몰두하는 장인정신과 권력의 압박으로부터 딸을 지키려는 부성애가 감동을 자아낼 것으로 보인다. 백미는 김정호의 발자취를 따라 아름답게 담아낸 한국의 풍경이다. 합천 황매산의 봄 철쭉, 한겨울의 북한강, 여수 여자만의 일몰, 몽환적인 마라도, 한국영화 최초로 찍은 백두산 천지까지 CG를 거치지 않고 담아낸 우리나라의 절승한 풍경이 오감을 자극할 것이다.


<벤허>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출연 잭 휴스턴, 모건 프리먼, 토비 켑벨, 나자닌 보니아디

어르신들의 인생영화인 <벤허>(1959)가 근 60년 만에 리메이크 됐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어른들을 모시고 갈 만하지 않을까? 2016년판 <벤허>는 루 월리스의 동명 원작소설을 가장 충실하게 각색해 ‘용서와 화해’라는 테마를 강조했다고 알려졌다. 이번 <벤허>가 부피를 한껏 줄여 122분으로 제작됐다는 사실은, 거의 4시간에 육박하는 기존 버전의 러닝타임이 부담스러웠던 이들에겐 희소식일 것이다.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의 전작인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액션 <원티드>(2008) 속 민첩한 액션을 떠올린다면, 줄어든 부피만큼 더 밀도 있는 액션을 기대해봐도 좋겠다.


"좋은 삼촌/이모 노릇 좀 해야겠어!"

<거울나라의 앨리스>

감독 제임스 보빈
출연 조니 뎁, 미아 와시코브스카, 헬레나 본햄 카터, 앤 해서웨이, 사챠 바론 코엔


팀 버튼이 연출해 전 세계에서 무려 10억 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렸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의 속편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색감이 알록달록 어우러진 비주얼이 대번에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감돌았던 팀 버튼 특유의 난해하고 음울한 코드가 염려된다면 걱정 붙들어 매도 좋다. 어린이용 영화 <머펫 대소동>(2011)을 연출했던 제임스 보빈 감독의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눈높이를 한결 낮춰 전편보다 쉬운 이야기로 전 연령층에게 다가간다. 한편 모자장수, 하얀 여왕, 붉은 여왕 등 시리즈의 캐릭터들은 한층 더 사랑스러워졌다.


<장난감이 살아있다>

감독 후안 호세 캄파넬라
우리말 더빙 남도형, 김채하, 컬투

장난감이 움직인다는 설정은 아이들에게 꾸준히 흥미를 끌어내는 아이템이다. 아르헨티나 애니메이션 <장난감이 살아있다>는 테이블 축구 게임의 장난감들이 엉뚱한 장소에서 깨어나 상상치 못한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다. 컬투를 비롯해 남도형, 김채하 등 한국의 유명 성우들이 우리말 목소리를 맡았다. 아무래도 축구선수 장난감이 주요 캐릭터이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에게 더 인기가 좋을 것이다. 감독인 후안 호세 캄파넬라는 애니메이션 감독 이전에 준수한 드라마라서 돋보이는 극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2009)도 만든 바 있으니, 연출력 하나는 믿어도 좋겠다.


"추석에도 데이트의 기본은 극장이지."

<카페 소사이어티>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제시 아이젠버그, 크리스틴 스튜어트, 블레이크 라이블리, 스티브 카렐

여든을 넘긴 우디 앨런의 창작력은 멈출 줄 모르고, 그의 작품은 늘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 <카페 소사이어티>는 193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뉴욕 남자 바비가 할리우드 여자 보니와 사랑에 빠진 후 그녀에게 청혼하며 자기 고향인 뉴욕행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하고, 그로부터 몇 년 후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담았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절묘한 합을 자랑하는 두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제시 아이젠버그가 보니와 바비를 연기했다. 그들의 케미는 <어드벤처랜드>(2009)와 <아메리칸 울트라>(2015)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1930년대 할리우드의 호사로운 생활상들이 눈을 씻긴다.


<더 시크릿>

감독 황진진
출연 여명, 왕뤄단, 임준걸, 장용용

카이펑은 사고로 아내를 잃은 뒤 실의에 빠진다. 어느 날 아내의 영혼이 돌아오지만, 그녀는 자신이 영혼이라는 걸 알게 되면 사라져버리고 만다. <카페 소사이어티>의 쿨한 사랑에 비하면,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던 중화권 스타 여명 주연의 <더 시크릿>은 거의 청승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그만큼 <더 시크릿>의 신파는 힘이 세다. 중국 현지 개봉 당시 로맨스와 스릴러의 조합으로 화제를 모았고, 후반부에 몰아치는 신파가 강력해서 극장가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고로 손수건은 필수.


"다시 극장에 걸리는 명작들,
이번엔 기필코 놓치지 않겠다!"

<포레스트 검프>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출연 톰 행크스, 로빈 라이트, 게리 시나이즈


<포레스트 검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걸작 칭송을 받는 영화 중 하나다. 남들보다 낮은 지능과 허약한 몸을 갖고 태어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오히려 자신의 핸디캡으로 미식축구 선수, 전쟁 영웅, 탁구 선수, 새우잡이배 선장, 억만장자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한계를 딛고 선 인간의 끝없는 가능성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의 묘미를 미국 현대사에 자연스럽게 녹여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작품이다. 오래 전 개봉을 놓쳐 작은 화면으로만 이 작품을 본 이들이라면, 이번 재개봉을 놓치지 말자.


<싱글 맨>

감독 톰 포드
출연 콜린 퍼스, 줄리안 무어, 니콜라스 홀트, 매튜 구드

지구에서 미적 감각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연출작이다. 그는 영국 문학의 거장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소설을 토대로 직접 시나리오까지 써서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오래된 연인의 죽음을 이겨내려는 주인공의 안간힘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싱글 맨>에서 가장 돋보이는 톰 포드가 심혈을 기울인 탐미적인 이미지다. 이 궁극의 아름다움은 필히 스크린으로 즐겨야 한다. 톰 포드의 수트를 입은 콜린 퍼스의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킹스맨>의 해리 저리가라다. 2010년 개봉작이 이번에 재개봉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