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20대에 많이 도전해보라고 한다. 실패를 해도 극복하기 쉽고, 뭔가 배우기 좋은 나이라고. 그런데 이 감독들은 그 20대, 30대에 명작을 만들어 영화사에 이름을 남겼다. 극찬과 그 이상의 견제를 받았던 천재감독들과 그들의 명작을 소개한다.
※ 본 기사는 해외매체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Taste of Cinema)의 리스트를 참고, 작품 발표 순으로 재정리했다.
<전함 포템킨> 1925年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27살
1905년 러시아 해군 전함 포템킨의 병사들이 부당한 처우에 반발, 반란을 일으킨 사건을 토대로 제작된 영화. 에이젠슈타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의 각 쇼트는 긴밀하게 연결돼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는 ‘몽타주 이론’을 정립한다. <전함 포템킨> 이전 영화들도 편집의 개념은 있었으나, 풀샷이나 인물 클로즈업처럼 인물의 움직임을 그리는 방식의 기초적인 편집이 전부였다. 에이젠슈타인은 레프 쿨레쇼프가 주장한 ‘쿨레쇼프 효과’(“쇼트는 전후 제시되는 쇼트와 충돌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를 발전시켜 <전함 포템킨>에 적용했다.
<안달루시아의 개> 1929年
루이스 부뉴엘 29살
다른 영화들이 비평적 해석을 거듭해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면, <안달루시아의 개>는 그 모든 해석을 거부함으로써 걸작이 되었다. 루이스 부뉴엘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이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는 한 남성이 여성의 눈동자를 면도칼로 긋는 장면으로 시작해 구멍난 손에서 개미가 기어나오고, 그게 여성의 겨드랑이로 오버랩되더니, 성게로 이어지는 알 수없는 전개를 보여준다.
<시민 케인> 1941年
오손 웰즈 25살
<시민 케인>, 혹은 “로즈버드”. 영화를 사랑한다고 자부한다면 한 번쯤은 접했을 이름. <시민 케인>은 오손 웰즈가 감독, 각본, 제작, 주연까지 도맡은 장편 데뷔작이다. 찰스 포스터 케인이란 가상의 언론인이 살아온 삶과 죽음을 다룬다. 당시 오손 웰즈의 나이는 고작 25살이었는데, 작중 케인의 청년시기부터 70살 노년시기까지 모두 소화하는 연기력과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칭송받는 연출력을 모두 보여줬다.
이 작품의 위치는 각종 영화 전문 연구기관에서 발표하는 ‘역대 영화 순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시민 케인>이 나온지 70년이 넘었는데도, 항상 최상위권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 케인>을 향한 극찬을 모두 옮길 순 없으나 몇몇 특징을 짚어보면, 먼저 미스터리를 제시한 후 인물을 행적을 뒤쫓는 비선형적 전개가 있다. 기자 톰슨이 화자로 등장하나 관객들을 위한 안내자에 가깝게 의도적으로 캐릭터성을 희석시켰다. 그래서 관객들은 톰슨의 행적을 따르되 케인의 인생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영광의 길> 1957年
스탠리 큐브릭 29살
말년에야 한 작품 한 작품, 정말 공들여 만들었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도 젊은 시절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53년 <공포와 욕망> 이후로 1964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까지는 2년에 한 편씩 신작을 냈으니까. 그중 1차 세계 대전 속 무능한 장교와 억울하게 죽음에 내몰린 병사들을 그린 <영광의 길>은 후기작 못지 않은 그만의 진중한 연출력과 인간성을 향한 고찰을 보여준다.
특히 <영광의 길>은 그의 후기 작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나 <풀 메탈 자켓>과 연결시켜보면 더욱 흥미롭다. 세 작품 모두 전쟁을 다루면서도 그 방식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블랙 코미디를, <풀 메탈 자켓>이 병사의 에세이를 표방한다면 <영광의 길>은 전장과 법정이란 공간을 대비시켜 전쟁의 비인도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전투가 아닌 인간 존재에 주목하는 영리함 덕분에, 기술이 발전해 더 뛰어난 전투 장면을 보여주는 현대 전쟁 영화들이 범람해도 <영광의 길>의 입지는 여전하다.
핵심 키워드 = #롱테이크 #큐브릭식전쟁영화
<400번의 구타> 1959年
프랑소와 트뤼포 27살
천재들을 이야기하는데 이 감독이 빠질 수 없다. 프랑소와 트뤼포는 1950년대 프랑스에서 출발한 누벨바그 사조의 일원이다. 그는 27살의 나이에 자전적인 영화 <400번의 구타>를 완성했다. 극 중 앙트완을 통해 10대 시절 자신의 반항심을 표현하면서 <400번의 구타>를 완성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드러냈다.
<네 멋대로 해라> 1959
장 뤽 고다르 29살
파격적인 데뷔라면, 트뤼포보다 고다르 쪽이 한 수 위다. 도둑 미셸과 유학생 패트리샤의 사랑을 그린 <네 멋대로 해라>는 누벨바그 사조의 대표작 중 하나다. 언제나 자신을 ‘창작자’가 아닌 ‘비평가‘라고 생각한다는 고다르답게, <네 멋대로 해라>도 통속적인 구석 하나 없이 도전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대표적인 요소가 점프컷. 컷 간의 연결성을 파괴하고 의도적으로 다른 시간, 공간으로 넘겨버리는 점프 컷은 광고나 강렬한 이미지를 원하는 영상 매체에 필수로 자리 잡았다.
<가까이서 본 기차> 1966
이리 멘젤 28살
영화사에서 ‘걸작’이라고 말하면, 어쩐지 마음을 짓누르는 빡빡한 영화일 것만 같다. 이리 멘젤 감독의 <가까이서 본 기차>는 다르다. 2차세계대전이란 비극 속 밀로시라는 신입 철도원의 풋풋한 사랑과 성적 성장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 자그마치 2차 세계대전 코미디인 것이다. 이리 멘젤 감독은 밀로시라는 분출하고 싶은 성욕을 품은 청년을 통해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감정에 대해 말한다.
<잔느 딜망> 1975年
샹탈 애커만 25살
잔느는 청소를 한다. 요리를 한다. 설거지를 한다. 때때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춘을 한다. <잔느 딜망>은 그게 다다. 잔느가 보낸 3일을 201분에 거쳐 보여준다. 극적인 순간도 거의 없고, 현란한 테크닉은 없다. 화면 구성이나, 컷 순서도 보다보면 외울 만큼 단조롭다. 그런데 샹탈 애커만이 <잔느 딜망>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갑갑한 형식에 있다. 그는 사회 속 여성의 입지를 형식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1989年
스티븐 소더버그 26살
1989년, 칸 영화제의 수상자 발표날. 전세계 영화인들은 놀랐다. 그해 최고상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건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연출한 스티븐 소더버그였다. 그의 나이는 고작 26살이었고, 영화 사상 가장 화려하게 데뷔한 감독 중 하나가 됐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수상을 두고 찬반 논쟁이 있었다지만, 상의 권위와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모두가 인정하는 소더버그의 가장 빼어난 영화인 건 사실이다.
네 사람의 성생활을 소재로 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도발적이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영역인 성욕과 영원히 기록을 남기고 싶을 때 쓰는 비디오테이프라는 대립적인 요소를 이용해 인물의 단절과 소통을 얘기했다. 그 어떤 영화도 이런 방식을 시도하지 않았다. 비디오테이프라는 (당시로선 가장 현대적인) 매체를 이용한 것도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충분했다. 26살의 스티븐 소더버그가 그렇게 큰 상을 받을 근거는 부족했을지 몰라도, 주목받기엔 충분한 사람이었다.
핵심 키워드 = #최연소수상자 #멈블코어
<부기 나이트> 1997年
폴 토마스 앤더슨 27살
현재 활동 중인 감독 중 ‘천재’란 말이 어울리는 감독은? 이 질문에 각자 최애감독을 외치겠지만, 누군가 “폴 토마스 앤더슨이요” 말한다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1996년 <리노의 도박사>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부기 나이트>를 연출했다. 70년대 유명한 포르노 배우 존 C. 홈스의 이야기를 각색해 영화로 옮겼다.
<부기 나이트>는 완벽한 오프닝 연출로도 유명하다. 약 4분간 이어지는 롱테이크는 영화 속 공간 제시, 인물 소개라는 기본적인 기능은 물론이고 유려한 카메라워크와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담아낸다. 물론 오프닝이 지난 후에도 <부기 나이트>의 완벽함은 여전하다. 인물과 사회가 몰락하고 재기하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얽었고, 탁월한 선곡과 배우들의 재기발랄한 연기는 소름끼칠 정도. 폴 토마스 앤더슨은 <부기 나이트> 당시 감독상이나 작품상과는 인연이 없었으나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마스터>, <데어 윌 비 블러드> 등 빼어난 작품으로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하는 거장으로 거듭났다.
핵심키워드 = #오프닝 #군상드라마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