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이 들어가는 모르고 살아도 애들이 쑥쑥 자라는 건 금방 눈에 들어온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 나이가 무색할 만큼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던 아역배우가 어느 날 성큼 자란 모습으로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걸 목격하게 된다. 좋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 뿌듯한 경험이다. 근래 인상적인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던 아역배우들의 근황을 살폈다.


<세인트 빈센트>

<그것>

제이든 리버허

세인트 빈센트

제이든 리버허는 60세 할아버지와 10살 소년의 우정을 그린 첫 장편 <세인트 빈센트>(2014)에서 빌 머레이와 찰떡같은 케미를 보여줬다. 카메론 크로우, 제프 니콜스, 콜린 트레보로우 등 이름 있는 감독들의 작품에 출연해 경력을 쌓았다. 공포영화로서 최고의 수익을 거둔 <그것>(2017)의 주인공으로서 두려움을 딛고 공포의 대상에 맞선다는 영화의 뜻을 차분히 보여줬다. 비단 성인배우를 서포트 하는 수준이 아닌, 영화 전반을 이끄는 주연으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던 셈이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는 없었지만 올해는 다르다. 얼마 전 선댄스 영화제에서 <롯지>가 공개됐고, 어른이 된 빌(제임스 맥어보이)의 플래시백 신으로 등장할 <그것>의 속편이 9월에 개봉된다. <나이브스 아웃>는 대니얼 크레이그와 크리스 에반스, <트루 어드벤쳐스 오브 울프보이>는 클로에 셰비니와 존 터투로와 함께 했다.

그것


<그것>

소피아 릴리스

그것

또래보다 성숙한 외모의 베벌리 역의 소피아 릴리스는 <그것>의 중요한 테마인 사춘기의 표상을 보여줬다. 에이미 애덤스와 꽤나 닮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년 방영된 HBO 드라마 <샤프 오브젝트>에서 애덤스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미국의 유명 미스터리 소설 '낸시 드류' 시리즈를 영화로 만든 <낸시 드류와 숨겨진 계단>이 오는 3월 중순 북미에 개봉하고, 리버허와 마찬가지로 어른이 된 베벌리(제시카 차스테인)의 회상 신으로 <그것>에 출연했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영화로 옮긴 <그레텔과 헨젤>의 촬영을 마치면, 나오미 왓츠와 모녀를 연기할 <버닝 시즌>에 착수할 예정이다.


<기묘한 이야기>

<그것>

핀 울프하드

그것 / 기묘한 이야기

핀 울프하드는 아역배우의 역할이 두드러진 근래 작품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그것>과 <기묘한 이야기>(2016~)에 모두 출연했다. 리치와 마이크 둘 다 유독 어려 보이는 더벅머리지만, 정반대라고 봐도 무방한 캐릭터였다. 울프하드는 다방면으로 바빴다. 목소리 출연한 <아담스 패밀리>, 아뉴린 바너드의 아역을 맡은 <골드 핀치>, 그리고 <그것 2>까지 부지런히 영화 작업을 이어오는 중에도 여러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고, 밴드 '칼퍼니아'를 꾸려 앨범을 발표했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나사의 회전>을 바탕으로 한 공포영화 <더 터닝>까지 부지런한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기묘한 이야기>

밀리 바비 브라운

미스터리 스릴러 <기묘한 이야기>의 정체성을 장악하는 일레븐 역의 밀리 바비 브라운이 등장했을 때 눈 밝은 이들은 죄다 브라운을 찬양했다. 준수한 연기도 연기지만, 중성적인 이미지가 물씬한 매력에 대한 찬탄이 줄을 이었다. 지난 3년 사이, 배우보다는 모델로서 커리어가 더 두드러졌다.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해 캐빈 클라인, 몽클레어의 얼굴이 됐다. 음악계에서 상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드레이크, 마룬 파이브, 더 엑스엑스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오는 5월 개봉하는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브라운의 첫 영화다. 베라 파미가, 샐리 호킨스, 카일 챈들러 등이 참여하는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역할이다. 현재 고질라와 킹콩이 맞붙는 <고질라 vs 콩>을 촬영 중이다.


<데드풀 2>

줄리안 데니슨

<데드풀 2>을 보는 재미 중 하나. 데드풀의 새로운 친구 러셀/파이어피스트의 잔망스러운 매력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금발에 근육질인 원작의 설정과 달리 뉴질랜드계의 똥똥이었지만, 줄리안 데니슨의 훌륭한 연기 덕분에 바뀐 설정이 오히려 호재가 됐다. 데니슨이 <데드풀 2>에 캐스팅 될 수 있었던 건 <토르: 라그나로크>의 타이카 와이티티의 소개 덕분이었다. 데니슨은 와이티티의 전작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2016)의 주인공이었다. 아직 <데드풀 3>의 캐스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 앞서 언급한 <고질라 vs 콩>이 현재 발표된 데니슨의 유일한 차기작이다.

<고질라 vs 콩> 현장의 줄리안 데니슨과 밀리 바비 브라운


<로건>

다프네 킨

로건

<로건>(2017)은 로건/울버린(휴 잭맨)의 퇴장이자 로라/X-23의 등장을 의미했다. 다프네 킨의 얼굴은 위기에 처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손등의 칼날을 드러내다가도, 말 한 마디 없이 아버지를 향해 마음을 열어가는 로라 그 자체처럼 보였다. 스페인의 TV 시리즈 <레퓨지>가 유일한 출연작이었던 킨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로건>이 개봉한 지 2년이 지난 시점, 기다림은 곧 끝난다. 앤디 가르시아와 호흡을 맞춘 <아나>와 판타지 소설 '황금나침반'을 원작으로 한 BBC 드라마 <히스 다크 매트리얼>이 올해 중 공개될 전망이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더 큰 기대가 실린다.


<룸>

제이콥 트렘블레이

룸 / 원더

7년간 골방에 갇힌 모자의 이야기를 그린 <룸>(2015)은 두 명의 걸출한 재능을 세상에 소개했다. 브리 라슨과 제이콥 트렘블레이다. 빛이라곤 보이지 않는 생활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 잭을 완벽하게 보여준 트렘블레이의 다채로운 표정이 있어 조이와 잭 모자의 탈출이 그토록 거대한 의미를 품을 수 있었다. 제이든 리버허와 형제로 나온 <북 오브 헨리>(2017), 까다로운 분장을 견디며 안면 기형을 앓는 아이의 마음을 보여준 <원더>(2017), SF에 도전한 <더 프레데터>(2018) 등 <룸>만큼의 화제를 모으진 못했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경유하며 보다 넓은 연기의 길을 모색하는 행보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또래의 배우들과 함께 한 코미디 <굿 보이즈>가 올해 중 공개될 예정이다.

<굿 보이즈> (왼쪽이 제이콥 트렘블레이)


<원더>

<콰이어트 플레이스>

노아 주프

원더 / 콰이어트 플레이스

노아 주프 하면 동글동글 오밀조밀한 얼굴만큼이나 ‘불안’이 먼저 떠오른다. 비중 있게 출연한 <원더>와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 때문이다. 미세한 소리로도 괴생물체에게 공격 당하는 절망을 견뎌야 하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물론이고, 어린 마음에 몸이 불편한 친구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와 친하게 지내는 걸 감추려다가 괜한 오해를 만들어 외려 친구의 냉대를 맞닥뜨린 잭의 상황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으니까. 영화를 시작한 재작년에 4편, 그 이듬해 3편이나 작업한 주프는 올해 두 신작 <허니 보이>와 <포드 vs 페라리>를 내놓는다. 샤이아 라보프가 시나리오를 쓴 <허니 보이>에선 루카스 헤지스의 아역을,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새 영화 <포드 vs 페라리>에서는 크리스찬 베일의 아들을 연기한다. 오랜만에 TV 드라마도 작업한다. <버드 박스>(2018)의 수잔 비에르가 연출한 HBO 드라마 <더 언두잉>이다. 니콜 키드먼과 휴 그랜트의 아들 역에 캐스팅 됐다.

허니 보이


<플로리다 프로젝트>

브루클린 프린스

플로리다 프로젝트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 브루클린 프린스는 작년 한국 관객이 만난 가장 놀라운 아역배우일 것이다. 싱글맘이자 하우스푸어 가정에서 자라는 무니의 생활을 보여주던 프린스는 '연기'의 뉘앙스가 끼어들 틈 없이 오로지 인물의 에너지로 충만했다. <레고 무비 2>와 <앵그리버드 더 무비 2>에 목소리 연기를 보탠 프린스는 내년 핀 울프하드와 함께 한 <더 터닝>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이면 너무 멀다고? 걱정 마시라. 머지 않아 '감독' 브루클린 프린스의 데뷔작이 공개될 예정이니. 평소 역사상 가장 어린 감독이 꿈이었다고 말하던 프린스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감독의 도움을 받아 단편영화 <컬러스>를 연출했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