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전범기로 인식되는 욱일기. 이는 나치의 상징인 하겐크로이츠 문양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돼야 한다. 그럼에도 세계 전반 특히 서양에서의 이해도가 낮다. 그런 이유로 해외 스타들과 관련된 욱일기 논란이 수차례 포착됐다. 물론 더 널리 알려져야 할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해리 포터>의 말포이, 톰 펠튼이 욱일기 티셔츠로 인해 물의를 빚었지만, 깔끔한 대처로 올바른 사과 사례를 만들었다. 영화 외적으로 빚은 욱일기 관련 논란과 상처들, 그리고 대처까지 최신 순으로 나열해 봤다.


“입 닥치지 않아 줘서 잘 했어, 말포이”

톰 펠튼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동영상 캡처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말포이, 톰 펠튼은 최근 일본 방문 때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글로 논란을 빚었다. 해당 영상에는 일본 전체주의 전범기인 욱일기 문양이 선명한 티셔츠를 입은 톰 펠튼이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이 담겼다. 세계 각국의 누리꾼들로부터 “티셔츠에 욱일기 모양이 선명하다”, “아시아 지역 사람들에게 나치 깃발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적 댓글이 쏟아지자 톰 펠튼은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트위터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톰 펠튼이 트위터를 통해 전범기 티셔츠 사건을 사과했다.

“내 인스타그램 영상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안겼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몰랐다. 그 티셔츠를 산 것을 후회하고 이제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나의 무지가 변명이 될 수는 없지만 깊이 반성한다.” 군더더기 없는 사과문을 본 네티즌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서양권에게 익숙지 않은 욱일기 실수는 많았지만 이렇게 진심 어린 깔끔한 사과는 없었다”며 “실수를 알았으니 이제 괜찮다.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 멋지다”고 댓글을 달았다. ‘입닥쳐 말포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톰 펠튼에게 “입 닥치지 않아 줘서 잘했다”는 재치 있는 반응을 보낸 누리꾼도 있었다.


<보헤미안 랩소디> 안팎의 욱일기

<보헤미안 랩소디> 티저 영상에 나온 욱일기 티셔츠 캡처(왼쪽) / 논란 이후 수정을 거친 장면 캡처

유독 한국 팬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두 차례의 전범기 논란을 겪었다. 개봉 전 공개된 티저 영상에는 퀸의 멤버 로저 테일러로 등장한 배우 벤 하디가 욱일기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등장했는데, 당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를 비롯한 네티즌들이 퀸 공식 유튜브와 트위터 등에 적극적인 항의를 보냈다. 제작사 이십세기폭스는 해당 문제를 인지하고 하루 만에 욱일기를 지운 수정 영상으로 교체했고 사건은 일단락됐다.

귈림 리의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욱일기 사진

이후 퀸의 또 다른 멤버, 브라이언 메이를 연기한 귈림 리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서 다시 한 번 욱일 문양이 포착됐다. 밴드 퀸으로 호흡을 맞춘 배우 라미 말렉, 조셉 마젤로, 귈림 리가 벤 하디의 등신대와 함께 일본 도쿄에 방문했을 당시 사진에 욱일기가 찍힌 것.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 역대 음악 영화 흥행 1위에 오르는 등 배우 개개인에 대한 관심까지 부쩍 높아진 시기에 이 사진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국내 네티즌들은 귈림 리의 SNS 계정에 찾아가 “전범기 내려”, “세 번째 사진에 전범기 제발!” 등의 댓글을 달며 항의했다. 이에 귈림 리는 별도의 코멘트 없이 해당 게시글을 삭제했다.


<물괴> 초청한 스페인영화제 홍보 디자인

2018 스페인 판시네-말라가 판타스틱영화제 홍보 디자인

지난해 11월, 국내 영화 <물괴>를 초청한 스페인 판시네-말라가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소책자, 포스터, 홈페이지 등에 공통적으로 사용된 홍보 디자인에 적나라한 욱일기 문양이 충격을 안겼다. 홍보물은 말라가 대학교, 버스를 포함한 현지 시내 도처에 배포됐고, 이에 현지 교민들은 주최 측에 메일을 보내는 등 항의에 나섰다. 이후 주최 측은 논란이 된 욱일기를 뺀 홍보물로 교체했으나 인쇄 홍보물은 여전히 그대로 사용됐다. 항의가 빗발치자 주최 측도 끝내 사과를 발표했다. 주최 측은 “문제 된 디자인을 사용해서 불쾌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다”며 “이번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최대한 모든 홍보물을 수정했다. 오해로 인해 상처를 준 부분에 대해서 사과한다”고 해명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참석한 쿠니무라 준 욱일기 문답, 일본서 논란

일본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게양 모습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쿠니무라 준은 기자회견에서 당시 뜨거운 국제 이슈였던 ‘일본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게양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아직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괜찮다면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설명을 들은 뒤 “한국인이 이 깃발에 대해 남다르게 생각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으며 일본이 이해해야 한다”는 답변을 했다. 또 “일본 정부는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배우가 아닌 개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 발언으로 인해 야후 재팬 등의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 쿠니무라 준에게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국내 누리꾼 사이에서도 발언 자체는 무리가 없지만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다뤄지기에 민감한 질문과 답변이었다”는 의견이 오갔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 참석한 쿠니무라 준

논란이 커지자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수습에 나섰다. “정치적 의견이나 다양한 문답이 오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지나치게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게스트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수 십 시간의 토론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 기자회견의 짧은 문답은 그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고, 영화제는 게스트가 불필요한 오해에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하겠다”는 내용의 입장을 전달했다. 쿠니무라 준 역시 입장을 표명했다. “사람들은 모두 갈등과 고통 속에 사는 것보다 밝은 희망이나 따뜻한 추억이 필요하다. 지금 왜 이렇게 엄중한 상황이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세계에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영화제가 모두의 생각이나 의견이 섞이고 녹여져서, 어느새 아름다운 결정체가 되어가는 장이기를 염원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하연수 “부끄럽지 않다. 전범기가 아니다”

하연수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전범기 논란을 부른 사진

하연수는 지난해 7월, 개인 SNS에 러시아 여행 사진들을 올렸다. 그러나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서커스장 포토존 앞에서 찍은 사진이 욱일기 논란을 불렀다. 하연수의 뒤로 걸린 그림이 전범기 문양을 연상시킨다는 이유.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비난을 쏟아냈고, 하연수는 곧바로 “서커스장 포토존 패턴이 집중선 모양이라서 그렇다. 나도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 채도를 낮춰 올렸다. 원래는 새빨간 색이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오해의 여지가 있음에도 굳이 사진을 올린 점에 대해 불편함을 표했고 하연수는 “집중선 모양 자체로 심각한 논란이 된다면 삭제하겠다”며 결국 사진을 삭제했다.

하연수

이 사건에 대해 하연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재차 입장을 밝혔다. “다시 한번 팩트를 말하자면 욱일기가 아니다. 그래서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나는 당연히 한국을 좋아하고,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기본적인 소양은 지키고 있다. 사진 한 장으로 나라는 사람 전체가 평가된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존중한다. 보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지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연의 인스타그램 ‘좋아요’, 2차 사과

<버닝> 스티븐 연(왼쪽) / 스티븐 연이 '좋아요'를 누른 조 린치 감독의 게시글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은 <버닝> 개봉을 앞두고 욱일기 논란을 빚었다. 자신의 출연작인 영화 <메이햄>의 조 린치 감독이 올린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른 것이 화근이 됐다. 게시글은 욱일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조 린치 감독의 어린 시절 사진이었다. 네티즌의 지적을 받은 스티븐 연은 영어, 한국어 두 가지 버전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런데 이 사과문은 더 큰 논란으로 번졌다. 한국어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한 것에 반해, 영어로 쓴 사과문의 경우 “이번 일은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으로 넘기기 한번, 실수로 좋아요 누른 것, 생각 없이 스크롤을 움직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인터넷 세상은 굉장히 취약하다. 우리를 표출하는 데 이런 플랫폼을 쓰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스티븐 연이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2차 사과문

이 내용은 마치 ‘실수를 했을 뿐인데 쏟아지는 비난이 억울하다’는 식의 호소로 들릴 여지가 있었고, 이 때문에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논란이 더욱 거세지자 스티븐 연은 자신의 사과글을 삭제, 두 번째 사과문을 올렸다. 이후 스티븐 연은 프랑스 칸 모처에서 진행한 <버닝> 배우들의 인터뷰에서 “며칠 전에 영화 외적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다”며 “알아야 했던 부분을 몰라 섣부른 선택을 했고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말 부끄럽고 죄송하다. 그 일로 인해 새로 눈이 떠졌고 후회스럽다. 내가 더 잘 알았어야 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사과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욱일기 티셔츠 입고 방한

샤넬 2015~2016 크루즈 컬렉션 참석차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지난 2015년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샤넬 2015~2016 크루즈 컬렉션’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LA 국제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스튜어트의 옷차림이 문제가 됐다. 외신을 통해 공개된 사진 속 스튜어트는 선글라스에 편안한 차림이었으나, 레이어드 된 안쪽 티셔츠에 욱일기 문양이 선명했다. 해당 사진은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며 논란이 일었다.

DDP 샤넬 컬렉션 행사장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

네티즌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 “다른 곳도 아니고 한국에 오는 데 이런 옷을 입다니 실망이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하지만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별도로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스튜어트는 취재진 앞에 섰지만 국내 취재진이 참가하지는 않았다. 샤넬 컬렉션의 한 관계자는 “패션 행사인 만큼 즐기는 분위기였고, 크리스틴 스튜어트만을 위한 별도의 인터뷰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황제의 딸> 조미, 욱일기 원피스 입은 사건은?

드라마 <황제의 딸>에서 폭발적 인기를 끈 조미

과거 전범기 논란으로 커리어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중화권 배우도 있었다. 바로 <황제의 딸>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배우 조미. 그는 드라마 <황제의 딸>, <안개비연가> 등으로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승승장구하던 배우였다. 그러다 패션 매거진 ‘보그’와의 화보 촬영에서 욱일기 문양이 적나라한 원피스를 입으면서 엄청난 파장을 겪는다. 중국인들에게는 중일 전쟁의 역사로 인한 반일 감정이 극심했는데, 이를 모르고 욱일기 무늬 원피스를 입었다는 사실은 자국민들에게 엄청난 상처가 됐다.

패션지 ‘보그’ 화보에서 문제가 된 조미의 욱일기 원피스

사람들은 격분해 조미를 향해 “연예계를 떠나라”고 비난하며 등을 돌렸고, 각종 단체들은 조미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중국의 여러 방송사, 언론사는 사과가 있기 전까지 조미와 관련된 콘텐츠를 내보내지 않았을 정도. 분노한 한 중국인의 오물 투척 사건까지 빚어지자 조미는 직접 대중 앞에 나왔다. 눈물의 기자회견으로 공식 사과를 밝혔지만 커리어 회복은 어려웠다. 그러나 조미는 더 이상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번복하고 중일전쟁 60주년 기념 드라마인 <경화연운>에 출연했다. 이 작품은 당시 CCTV 사상 역대 시청률을 경신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조미는 과오를 청산하고 재기에 성공했다.


씨네플레이 심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