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 연기하란 법 있나. 동물도 연기한다. 심지어 여러 주연 배우들의 존재감을 위협할 정도의 강렬한 신 스틸러 자리를 꿰차기도 한다. 여러 영화 속 동물 캐스팅과 촬영 현장에 얽힌 이야기들을 모았다.
<캡틴 마블> 고양이 ‘구스’
<캡틴 마블>의 마스코트 고양이 구스. 귀여움도 모자라 특별한 능력까지 지닌 구스는 영화에서 전천후로 활약했다. 케빈 파이기가 시나리오 초고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구스의 분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치명적 매력을 가졌으면 그랬을까. 구스는 총 네 마리의 고양이가 팀을 이뤄 연기해 만들어진 캐릭터다. 오디션에서 뽑힌 레지가 주요 연기를 맡았고 아치, 곤조, 리조가 함께했다. 레지는 표정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고양이였다. 레지가 피곤하거나 다른 고양이들의 특정 기술이 필요할 때 다른 고양이가 대신했다.
실제 고양이가 연기했기 때문에 배우에게 몸을 비비거나 그루밍 하는 좋은 장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촬영에 협조적이지 않거나 배우들이 편안하지 않을 때는 고양이 퍼펫을 사용하거나 일부 CGI 작업을 더했다. 영화에서 구스와 좋은 호흡을 보여줬던 사무엘 L. 잭슨은 고양이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잘 아는 고양이 애호가였다. 그는 CGI 작업을 염두에 둔 장면에서도 실제 고양이가 있는 것 같이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는 특수효과 팀에게 좋은 참고가 되었다고 한다.
<리틀 포레스트> 진돗개 ‘오구’ 등
인간 배우들만 아역·성인 배우 나눠 캐스팅하라는 법 있나. 개도 아역, 성견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리틀 포레스트>의 오구는 아역, 성견 두 마리 개가 필요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이었다. 먼저 제작진은 동물 보호 단체를 통해 성견 진원이를 입양해 '오구'로 캐스팅했다. 진원이는 양평 개 농장에서 구조된 개다. 그리고 그와 닮은 아기 오구를 찾기 위해 전국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다녔고 천안시 보호소에서 구조된 새끼 강아지를 캐스팅했다. 임순례 감독은 “평소엔 말을 안 듣다가도 카메라만 돌아가면 원하는 장면을 연출해 준 진원이를 연기 체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오구 말고도 영화에는 다양한 동물, 생물들이 등장한다. 제작진은 아무리 작은 생물일지라도 조심스럽게 대했다. 예를 들어 혜원(김태리)이 친구 몸에 붙은 애벌레를 떼어 내 2층 난간 밑으로 던지는 장면에서 1층 바닥에 모포를 깔아 벌레들이 겪을 충격을 대비했고, 여름밤 조명에 달라붙는 날벌레 떼들도 죽이지 않고 쫓을 방법을 고민했다. 촬영에 임했던 개구리, 달팽이 등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 부엉이 ‘헤드위그’
각종 편지와 신문 등을 전달해주는 부엉이는 호그와트 학생이라면 필수인 애완동물이다. 특히 해리 포터의 애완용 부엉이 헤드위그는 해리 포터의 시그니처 동물이다. 그러나 영화처럼 그들이 직접 발톱을 이용해 소포와 편지를 가지고 다닌 건 아니었다. 조련사들이 부엉이 몸에 가벼운 플라스틱 장치 같은 것을 부착해 편지 등을 묶어두었던 것이었다.
큰 부엉이들이 작은 부엉이들을 먹이로 삼을 것을 우려해 여러 올빼미가 있는 장면은 따로 촬영해 합성했다. 배경에 사용하는 일부 부엉이들은 그린 매트가 설치된 바람을 일으키는 장치 앞에서 비행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영화 속 부엉이들은 먹이를 담보로 휘파람을 통해 어디에서 어디까지 날아오는 등의 훈련을 받았다.
<터널> 강아지 ‘탱이’
많은 장면이 하정우의 1인극에 가까웠던 <터널>. 그와 유일하게 호흡을 맞춘 상대역은 퍼그 '탱이'다. 퍼그는 여러 강아지 중에서도 훈련이 잘 안되는 종이라 조련사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훈 감독은 귀여우면서도 불쌍해 보이는, 측은지심이 느껴지는 이미지가 좋아 퍼그로 밀어붙였다. 탱이는 곰탱이, 밤탱이란 이름을 가진 두 마리 강아지가 돌아가면서 연기했다. 갇힌 공간에서 촬영해야 하는 데다 하정우가 탱이에게 소리 지르는 신 등이 있어서 한 마리가 연기하기엔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정우는 탱이와 연기한 뒤로 정이 들어 개 두 마리를 입양해 키우기 시작했다고. 탱이를 연기한 퍼그들을 데려올 수는 없던 상황이어서 다른 개들을 입양했다.
<아티스트> 강아지 ‘어기’
영화배우라면 꿈꿀 영예로운 자리에 오른 강아지가 있다. <아티스트> 등에 출연한 동물 배우 강아지 '어기'다. 어기는 강아지 최초로 할리우드 그라우맨스 차이니즈 극장 광장에 발자국을 새겼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지정 좌석을 배정받았다. 칸국제영화제에서는 팜 독 어워드(Palm Dog Award)를 받기도 했다.
어기는 너무 거칠다는 이유로 첫 두 주인에게 거부당했다.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질 예정이었지만 동물 조련사 오마르 본 뮬러가 그를 입양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 특히 <아티스트>에 출연해 스타 동물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아티스트>에는 다른 스턴트 대역 개들도 준비되어 있었으나 어기가 대부분의 장면을 소화했다고. 안타깝게도 2015년 전립선암에 걸려 13세의 생을 마감했다.
<로아> 사자
영화에 출연하는 동물들이 모두 귀여운 건 아니다. 때론 그들 때문에 살벌한 촬영 현장이 되기도 한다. <로아>는 실제 사자를 입양해 함께 살았던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 노엘 마샬이 만든 영화다. 사자, 호랑이, 재규어, 치타 등 맹수들이 등장하는데 영화 촬영장은 감독의 삶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촬영 현장은 위험천만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출연 배우 멜라니 그리피스는 사자에게 공격당해 얼굴을 50바늘 꿰맸다. 어떤 장면에서는 사자가 머리카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는데 그 장면이 영화에 담기기도 했다. 영화에 출연한 동물들에게 공격받은 제작진과 배우들이 70명에 달했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살벌한 영화 촬영 현장이다.
씨네플레이 조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