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스타도 사람이다.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할리우드의 후광에 가려졌던 배우들의 남다른 관심사. 특히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소신을 좇아 다른 역할을 다하는 ‘멋진 그들’의 이유 있는 딴짓을 모았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 아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배우들의 사적인 목소리가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비치>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1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환경보호에 쓴 스타가 있다. <비치> 촬영 당시 “영화를 위해 자연을 훼손한다”는 비난을 들은 이후, 적극적인 환경 운동에 앞장서 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는 1998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재단(LDF)을 설립해 20년간 1억 달러(한화 약 1126억)에 이르는 금액을 기부했다. 이는 기후 변화와 원주민 권리, 재생 에너지 등 200여 개의 환경 프로젝트 지원에 쓰였다.
<11번째 시간>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비인도적인 고래 포획 반대 청원을 벌여 고래 감옥의 빗장을 열었으며, 환경이 보존된 휴양지를 위해 중남미 무인도 벨리즈를 매입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환경 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을 기획해 직접 내레이션을 했다. 지구의 종말을 은유하는 12시가 다가온다는 의미의 제목으로, 우리가 파괴한 자연들을 비추며 경각심을 일깨우는 다큐멘터리다. 최근 디카프리오는 금융시장까지 진출했다. 투자업체 프린스빌 캐피털이 투자하는 기후변화 대응 기술 펀드에서 후원자 겸 수석고문을 맡게 된 것이다.
2016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에 호명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본격적으로 그의 오랜 환경 활동이 전 세계에 알려진 때는 2016년.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88회 오스카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 당시, 그는 수상소감을 통해 환경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기후 변화는 전 인류와 동물을 위협하는 가장 긴급한 위협이며,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중략) 우리가 이 지구에 산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지 맙시다. 저 또한 오늘 밤 이 영광을 당연히 여기지 않겠습니다.”
브래드 피트는 2017년, <짐 제프리스 쇼>에 출연해 기상 캐스터로 깜짝 변신했다. 짐 제프리스가 “날씨가 어떤가, 기상캐스터?”라고 묻자, 피트는 지도상의 미국을 가리키며 “이 지역 전체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프리스가 “미래의 날씨는 어떤가”라고 질문하자, 피트는 “미래는 없다”고 답했다. 이는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자 환경문제에 관한 관심을 촉구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복구 사업 현장에서 브래드 피트.
브래드 피트의 환경 보호 활동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삶의 터전을 잃은 많은 주민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메이크 잇 라잇’(Make It Right) 재단을 설립해 환경친화적인 주택 건설 및 복구 사업에 앞장섰다. 또, 지난 2008년에는 환경친화적 건축을 지향하는 가치 실현을 위해 지속 가능한 환경 건축물 사업에 디자인 컨설턴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레이첼 맥아담스
화제가 된 레이첼 맥아담스의 화보 비하인드 컷.
2019년 초 레이첼 맥아담스의 파격적인 화보 비하인드 컷이 화제였다. 화보 속 맥아담스는 짙은 화장에 명품 재킷을 걸치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착용한 채 양쪽 가슴에 유축기를 달고 있다. 지난해 4월 아들을 출산한 그는 잡지 화보 촬영 현장에서 모유 수유를 위해 유축기를 사용했는데, 이를 본 사진작가가 연출 사진을 제안했다. 비하인드 컷은 본 화보보다 훨씬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사진을 찍은 작가 겸 잡지 설립자 클레어 로스스테인은 “모유 수유는 숨 쉬는 것처럼 너무도 일반적인 행위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범한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남겼다.
수유는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장소의 모유 수유 자체만으로 민망한 행위로 지탄받아 왔다. 문제는 수유를 할 만한 장소도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근래 들어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모유 수유 정상화(#normalizebreastfeeding) 캠페인으로 확산됐다. 레이첼 맥아담스의 화보는 즉흥적인 프로젝트였지만 현시대를 관통하는 캠페인의 메시지와 부합했고, 모유 수유 인식 개선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맷 데이먼
2017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맷 데이먼.
2017년, 맷 데이먼이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물 부족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맷 데이먼이 개발도상국의 물 부족 문제에 힘쓰는 재단 워터닷오알지(Water.org)의 공동 설립자라는 사실을 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비영리 인도주의 단체 워터닷오알지는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의 식수 공급을 위해 제반을 마련하는 자선 단체로, 맷 데이먼의 H2O 아프리카 재단과 게리 화이트의 워터파트너스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워터닷오알지(Water.org)의 활동을 알리는 맷 데이먼.
맷 데이먼은 2016년 <제이슨 본> 홍보 차 내한한 당시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물의 중요성에 대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인도 슬럼가에 물 공급을 위해 지자체가 수도관을 묻었는데, 각 가정까지 연결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주 1회 정해진 곳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물을 얻었습니다. 수도관을 각 가정까지 연결하는 데 드는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재단의 일입니다. 그들에게 소중한 시간을 돌려주게 됐고 그들은 그 시간에 일을 해서 빚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사소하지만 심각한 일이죠.”
신은 실수하지 않아. 나는 이렇게 태어났고 나 자체로 아름다워. 레이디 가가는 대표곡 중 하나인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를 통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길 바라는 평등의 메시지를 세상에 노래했다. 가가는 스스로 쓴 노랫말에 충실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2010년과 2011년, 2년 연속으로 자선활동을 가장 많이 펼친 할리우드 선행스타로 뽑힌 레이디 가가다. 그가 뻗친 도움의 손길은 소외된 곳 여기저기를 향해 있다.
본 디스 웨이 재단(BTWF)의 캐치프레이즈.
2011년 그는 자신의 노래 제목을 본 딴 본 디스 웨이 재단(BTWF)을 설립했는데, 특히 유년기 아이들의 아픔에 위로가 돼 주었다. 과거 가가는 학창시절 왕따 경험을 고백한 적이 있다. 청소년들에게 더 용기 있고 따뜻한 세상을 주겠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이 재단은 기금을 내 집단 따돌림 치료에 나서는가 하면, 학교 폭력 반대 운동, 10대 자살 방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Don't Ask Don't Tell' 정책 반대 집회에서 연설하는 레이디 가가(왼쪽)와 생고기 드레스로 화제가 된 레이디 가가.
뿐만 아니라 레이디 가가는 LGBTQ의 후원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2010년의 파격적인 생고기 드레스도 LGBTQ의 입장을 대변하는 퍼포먼스였다. 당시 미국에는 성소수자들이 군대에 자원할 경우 성 정체성을 밝히지 말아야 하며, 밝혀질 경우 군인 자격이 박탈된다는 ‘Don’t Ask Don’t Tell’(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법률이 있었다. 레이디 가가는 해당 정책을 반대하는 집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등은 미국의 최고급 등심입니다. 그러나 이성애자 병사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음식의 권리를 일부는 박탈 당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가 입고 있던 생고기 드레스를 입을 권리가 있지 않나요?” 이듬해 미국 오바마 정부는 ‘Don’t Ask Don’t Tell’ 법안을 폐기했다.
이안 맥켈런
1988년 마가렛 대처의 법안 반대 집회에서 이안 맥켈런(왼쪽).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이자 <엑스맨>의 매그니토. 이안 맥켈런은 지속적으로 LGBTQ 운동에 앞장서 온 대표적인 배우다. 30년 전, 맥켈런은 마가렛 대처 정부의 동성애 혐오적 법안에 반발해 ‘BBC’ 라디오 방송 중에 돌연 커밍아웃했다. 당시 사회는 에이즈의 위기로 불안했고, 게이 남성을 향한 편견이 넘치던 때였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맥켈런은 이후 동성애자의 인권 운동 단체인 스톤월(Stonewall)을 공동 창립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한 이안 맥켈런.
이들의 분투는 현재 영국의 친게이적(pro-gay) 법령의 상당 부분에 영향력을 미쳤다. 스톤월은 다른 성적 지향성을 가진 이들의 관계가 합법적으로 성립되는 데 목표를 두고 운동에 힘써왔다. 맥켈런은 “논점은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과, 너무나 오랫동안 숨겨졌고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관계들이 오해받아왔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안 맥켈런과 스톤월의 LGBTQ 운동은 동성 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진 미국과 아일랜드에 공개 축하를 보내며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