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와인스타인

한때 메릴 스트립이 ‘신’이라 칭하기도 했던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 할리우드 미투의 진앙지인 그는 영화 산업에서 추방됐다. 30여 년간 행해진 여배우 성추문 논란으로 인해, 와인스타인은 제작자로는 몰락했지만 미투 운동의 공공의 적 1호로 캐스팅됐으며, 남성 중심의 연예계를 변화시킬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의 공로로 희생자들은 전 CBS CEO 레스 문브스, 감독 브라이언 싱어, 코미디언 루이스 C.K., 가수 R. 켈리 등 수많은 남성들을 상대로 목소리를 낼 용기를 가지게 됐다. 게다가, 한때 그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가졌던 업계는 이제 그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할리우드 거리에 등장한 와인스타인 풍자 조각상. 힘 있는 제작자가 여배우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고 대가로 출연을 보장한다는 의미의 '캐스팅 카우치'가 작품명이다.

각종 영화 시상식은 또 어땠나. 와인스타인을 향한 풍자로 무대와 객석이 뜨거웠다. 하지만 알다시피 새로운 사건은 나날이 갱신 또 갱신된다. 때문에 미투 이후 와인스타인은 대중들의 주목으로부터 꽤 멀어졌다. 1급 성범죄 혐의로 재판을 앞둔 하비 와인스타인의 미투 이후 행적을 짚어봤다.


하비 와인스타인(왼쪽), 조지나 채프먼

# 싱글이 됐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혐의 중 일부를 인정했지만 그의 법률 팀은 그가 범죄자가 아니라 간통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떠들썩한 스캔들의 또 다른 피해자는 그의 아내였다. 패션 디자이너 조지나 채프먼은 2018년, 우리 돈 약 214억 원의 위자료를 받고 와인스타인과 이혼했다. 이 엄청난 액수는 결혼 10주년을 코앞에 두고 나왔다.

조지나 채프먼

채프먼은 남편에 관한 소식이 불거지자 처음에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결국 <보그>와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첫 보도가 나왔을 때, 사건은 내가 와인스타인을 만나기 한참 전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사실에 입각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점차 일은 커졌고, 그것이 유일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의 관계에서 물러나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비 와인스타인(왼쪽), 벤자민 브라프만

# 변호사가 떠났다

<워싱턴포스트>는 “와인스타인이 자신의 법정 소송 사건에서 준 법률가에 맞먹는 활약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그의 변호를 맡은 벤자민 브라프만은 “그의 노력이 지금까지 수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와인스타인이 몰락했다고? 전혀. 그는 기죽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설립한 제작사 와인스타인 컴퍼니에서 쫓겨나는 등 여파를 직격탄으로 맞은 그이지만, 금세 다시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와 법정 사건에 심기일전하고 있다. 한때 브라프만은 “와인스타인은 지금도 대본을 읽고 있으며, 향후 추가적인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그가 훌륭한 영화제작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벤자민 브라프만

<뉴욕타임스>는 와인스타인이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내 생애 최악의 악몽,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그가 처한 법적 어려움에 도움을 요청한 정황을 확보했다. 이 이메일이 공개되면서 변호사 브라프만과 와인스타인의 신뢰에 금이 갔다. 브라프만은 와인스타인이 추가로 변호사를 고용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격분했다. 와인스타인은 더 효과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기 위해 여성 변호사를 데려오고 싶어 했다.

벤자민 브라프만

2019년 1월, 벤자민 브라프만은 공식적으로 와인스타인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간 변호 전략을 놓고 변호인단과 와인스타인은 잦은 충돌을 빚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브라프만은 “그를 떠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비 와인스타인(왼쪽), 로즈 맥고완

# 피해 주장 여성의 변호사를 고용했다

잔인한 운명의 아이러니. 와인스타인은 그의 가장 큰 고발자 중 하나인 배우 로즈 맥고완을 대변해 온 변호사를 고용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와인스타인은 벤자민 브라프만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과거 로즈 맥고완의 코카인 소지 혐의 사건을 변호한 호세 바에즈, 로날드 설리번을 고용했다. 이 같은 결정은 재판을 지연시키는 카운터펀치 전략임과 동시에 로즈 맥고완을 향한 복수처럼 보인다.

(왼쪽부터) 하비 와인스타인, 로날드 설리번, 호세 바에즈

맥고완은 <ABC>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와인스타인을 ‘소시오패스 포식자’이자 ‘국제 강간범’이라 말하며, “1997년 23세 때 선댄스영화제의 호텔 방에서 강제로 구강 성행위를 강요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뉴욕타임스>에서는 “와인스타인이 10만 달러의 합의금, 침묵을 지키는 조건으로 100만 달러를 더 제안했다”고 밝혔다. 맥고완은 제안을 거절했고, 이후 미투 운동을 이끌며 여성 인권 운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로즈 맥고완


하비 와인스타인

# 독서에 매진하고 있다

2018년 봄, 뉴욕 경찰청을 방문한 와인스타인의 손에 들린 세 권의 책이 포착됐다. <NPR>에 따르면 하나는 노트, 나머지 두 권은 토드 S. 퍼덤의 <썸싱 원더풀: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브로드웨이 혁명>(이하 <썸싱 원더풀>)과 리처드 쉬켈의 <엘리아 카잔> 전기로 추정됐다. <썸싱 원더풀>은 브로드웨이의 선구자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두 사람 사이의 창조적 파트너십에 관한 분석과 찬탄이 담긴 책이다.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를 연결하는 사업 개척에 있어 시대적 통찰을 보여주는 책이다.

(왼쪽부터) <엘리아 카잔>, <썸싱 원더풀>

다른 하나는 할리우드 고전기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의 전기다. 엘리아 카잔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에덴의 동쪽> 등의 걸출한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예술가의 정체성을 지워내고 나면, 그는 굉장히 논쟁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할리우드에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1952년 미국 의회 반미행위조사위원회에 참석했다. 증언석에서 그는 옛 동료의 공산당 활동을 증언했다. 엘리아 카잔은 대중의 싸늘한 비난 이후, 영화 <워터프론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거머쥐며 재기에 성공한 인물로 남아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는 자신의 정치적 행동을 사과하지 않았다. 쉬켈은 전기를 통해 카잔의 악명 높은 여성(주로 유명 배우) 편력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와인스타인은 두 권의 책을 통해 어떤 동류의식을 형성한 것일까?


<언터처블>

# 그의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2019년 선댄스영화제에 가장 뜨거운 두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문을 파헤치는 <리빙 네버랜드>, 그리고 하비 와인스타인의 이야기를 다룬 <언터처블>이다. 우르술라 맥팔레인 감독의 <언터처블>은 와인스타인이 할리우드에서 권력을 차지하게 된 과정과 몰락,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피해 여성들의 진술이 포함돼 있다.

<시티즌 하비>

영국의 공영 방송사 <BBC>도 그에 관한 영화를 제작했다. 다큐멘터리의 이름은 <시티즌 하비>(가제). 2018년 칸영화제 마켓에 나온 <시티즌 하비>는 세계 바이어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칸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남부 칸은 와인스타인이 그간 여배우와 여성 영화인에게 성폭력을 가한 장소라는 폭로가 이어졌기 때문에 더욱 상징성이 크다. <시티즌 하비>는 그의 성범죄는 물론 배우들의 용기 있는 고백, 전 세계로 확산된 미투 운동을 조명했다.


애슐리 저드(왼쪽), 하비 와인스타인

# 애슐리 저드의 소송이 기각됐다

와인스타인에 관한 미투 운동을 확산시킨 배우 애슐리 저드. 그가 와인스타인에 제기한 소송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저드는 2015년, "익명의 인물에게서 호텔 방으로 와서 샤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서 2017년, 저드는 가해자로 와인스타인을 지목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제안을 거절하자 와인스타인은 나의 영화 활동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피터 잭슨 감독이 저드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는데,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애슐리 저드를 캐스팅하기 위해 ‘미라맥스’(와인스타인 컴퍼니의 전신)에 연락을 취했으나 “저드와 일하는 건 끔찍한 악몽”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애슐리 저드

2019년 1월, 캘리포니아 법원은 저드와 와인스타인의 소송을 기각했다. 직업적 관계 내에서 벌어진 성희롱을 다루는 캘리포니아 주법이 이번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사는 배우와 영화 제작자 사이의 관계는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 법률은 미래의 고용인에 대한 고용주의 성희롱에는 적용된 적이 없다”면서, 다만 “이 기각 결정이 성희롱의 여부에 대해 판단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비 와인스타인

# 남은 재판은 언제?

와인스타인은 아직 여성 2명에 가한 성폭행 혐의로 5월 6일 뉴욕주 맨해튼의 법원에서 치러질 재판을 앞두고 있다. 피고인 와인스타인은 2006년과 2013년에 각각 다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소송을 당했고, 총 다섯 가지에 이르는 1급 성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모든 혐의에 대해 “동의된 행위였다”고 주장하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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