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린치, 찰리 채플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수많은 명작을 남긴 거장? 당연히 맞다. 그런데 정답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본인이 직접 영화 스코어를 만들어본 감독이라는 점이다. 어떤 작품이 있는지 살펴보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미스틱 리버>,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음악, 특히 재즈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 클럽에서 래그타임(Ragtime) 피아니스트로 활동했고, 1960년대 초 서부극 드라마 <로우하이드>에 출연할 당시엔 컨트리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무명 가수를 연기한 <고독한 방랑자>(1982)를 연출/연기 한 걸 제외하곤 필모그래피에 좀처럼 음악에 관한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1988년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셀로니어스 몽크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찰리 파커의 삶을 그린 극영화 <버드>를 내놓았다. 그리고 4년 후 <용서 받지 못한 자>(1992)를 기점으로 드문드문 자기가 만든 곡을 사운드트랙에 수록하곤 했다. 이스트우드가 음악감독으로 제 이름을 올린 건 <미스틱 리버>(2003)부터다. <페일 라이더>(1985)부터 줄곧 협업 체제를 이어온 레니 니하우스의 자리를 스스로 채운 셈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 <아버지의 깃발>(2006), <체인질링>(2008), <히어애프터>(2010) 등의 스코어를 직접 만들었다. 이 시기에 직접 음악감독을 겸하지 않은 작품들은 재즈 베이시스트인 아들 카일 이스트우드에게 맡겼다. 제임스 C. 스트로즈 감독의 2007년 작 <굿바이 그레이스>는 이스트우드가 자기가 연출하지 않은 영화의 스코어를 만든 유일한 사례다.
찰리 채플린
<모던 타임즈>, <라임 라이트> 등
영화사의 위대한 이름 찰리 채플린이 수상한 유일한 (경쟁부문) 오스카 트로피는 1971년 (재개봉한) <라임라이트>로 음악상을 받은 것이다. 발라드 가수인 아버지를 보고 자란 채플린은 어려서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을 독학하며 음악에 열을 올렸고, 일찍이 영화 속 음악 활용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다. 연출, 제작, 각본, 편집, 연기에 이어 음악까지 스스로 해내기 시작한 건 1931년 <시티 라이트>부터다. <모던 타임즈>(1936), <위대한 독재자>(1940), <살인광시대>(1947), <라임라이트>(1952) 모두 채플린이 스스로 곡을 썼다. 악보를 볼 줄 몰라 데이브 락신, 레이몬드 라치, 알프레드 뉴먼 등 베테랑들의 도움을 받아 음악을 완성해갔다. <시티 라이트> 이전에 연출한 작품들에도 훗날 자신이 만든 음악을 입혔다. 최근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예고편에 사용된 냇 킹 콜의 ‘스마일’(Smile)을 비롯한 지미 영의 ‘이터널리’(Eternally), 페툴라 클라크의 ‘디스 이즈 마이 송’(This is My Song) 등은 채플린이 영화를 위해 만든 곡에 노랫말을 붙여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다.
존 카펜터
<할로윈>, <분노의 13번가> 등
컬트의 제왕, 존 카펜터 역시 어릴 적부터 음대 교수였던 아버지의 작업을 듣고 자라면서 음악에 대한 흥미를 가졌다. 장편 데뷔작 <다크 스타>(1974)부터 음악을 직접 만들었다. 80년대에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은 알란 하워스와 협업해 기술적인 측면에 도움을 받았다. 최근작 <더 워드>(2010)까지, 총 18개의 장편 가운데 딱 네 작품만 다른 이에게 스코어를 맡겼다. <괴물>(1982)은 엔니오 모리코네, <스타맨>(1984)은 잭 니체, <투명인간의 사랑>(1992)는 셜리 워커, <더 워드>는 마크 킬리안이 만들었다. 존 카펜터 하면 떠오르는 악기는 신시사이저다. 이를 적극 활용해 만든 단출한 구성의 사운드는 완벽하게 영화의 분위기를 수식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멜로디로 곧장 청자의 뇌리에 박힌다. 카펜터가 만든 스코어는 전자음악을 만드는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었다.
데이빗 린치
<이레이저 헤드>
데이빗 린치는 신문 배달을 하며 제작비를 대느라 제작에만 5년이 걸린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의 사운드트랙 작업까지 도맡았다. 사운드 디자이너 앨런 스플렛과 함께 만든, 영화처럼 난해하고 희뿌연 앰비언트 사운드로 채워져 있다. 그가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장편은 <이레이저 헤드>가 전부다. 이후엔 노랫말을 쓰거나, 린치의 오랜 음악 파트너 안젤로 바달라멘티와 공동작곡한 노래를 수록하는 선에 그쳤다. <블루 벨벳>(1986)의 주제가 ‘미스테리스 오브 러브’(Mysteries Of Love), <로스트 하이웨이>(1997)의 ‘더브 드라이빙’(Dub Driving),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의 ‘실렌시오’(Silencio) 등이 그 결과물이다. 린치는 존 네프와 함께 한 프로젝트 블루밥의 앨범을 비롯, 뮤지션으로 3개의 음반을 발표한 바 있다.
사티야지트 레이
<대도시>, <대지의 눈물> 등
사티야지트 레이는 저명한 연주자 라비 샹카르, 빌랴아트 칸, 알리 아크바르 칸을 음악감독으로 초대한 걸작들로 일찌감치 인도영화계 만신전에 올랐다. 레이가 스코어를 직접 쓰기 시작한 건, 인도 문학의 거목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소설 3개를 영화로 옮긴 옴니버스 <세 딸들>(1961)부터다. <뮤직 룸>(1958) 같은 걸출한 음악영화를 만든 바 있는 레이는 그 즈음 무수한 음악적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더 이상 베테랑 뮤지션의 음악을 빌리지 않아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유작 <이방인>(1991)까지 쭉 스스로 만든 음악으로 영화를 채웠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웨스 앤더슨의 <다즐링 주식회사>(2007)의 사운드트랙엔 레이가 기존에 발표한 음악이 다섯 트랙이나 수록됐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씬 시티>, <플래닛 테러> 등
제임스 카메론의 프로젝트 <알리타: 배틀 엔젤>을 연출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본래 연출, 제작, 각본, 편집, 촬영 등을 혼자서 해내는 작업 스타일로 정평나 있다. 2001년 야심 차게 시작한 전체관람가 시리즈 <스파이 키드>에 이르러 드디어 음악 크레딧에도 이름을 새겼다. 일렉트릭 기타의 강렬한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워 이국적인 리듬을 쏟아내는 음악은 말초적인 재미만큼은 제대로 자극할 줄 아는 로드리게즈의 영화에 찰떡같이 붙는다. <신 시티>(2005), <플래닛 테러>(2007), <마셰티>(2010) 등의 액션 시퀀스들은 로드리게즈의 음악을 통해 그 시원시원한 쾌감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마이크 피기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원 나잇 스탠드> 등
마이크 피기스는 영화감독이기 전에 뮤지션이었다. 10대 때 프리재즈 그룹 피플 밴드, 브라이언 페리가 록시 뮤직을 결성하기 전 이끌었던 밴드 가스 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다. 연극계에서도 이름을 떨친 그는 저예산 영화 <폭풍의 월요일>로 화려하게 감독 신고식을 치렀다. “나의 배경은 뮤지션이며 작곡가다. 감독은 오히려 우연히 얻게 된 직업”이라고 밝힌 피기스는 데뷔작부터 음악을 (스팅을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영화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피기스 영화에 배어 있는 밤의 몽롱하고 관능적인 정서는, 스타일리시 한 이미지만큼이나 그가 작곡하고 연주한 트럼펫 선율의 힘이 작용한 바가 컸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 등
이야기를 만들고 거기에 키보드와 기타로 멜로디를 붙이던 유년 시절을 보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단편을 내놓던 시기부터 스코어를 썼다. <떼시스>(1996), <오픈 유어 아이즈>(1997), <디 아더스>(2001) 등 아메나바르가 한창 잘나가던 시기의 영화음악은 모두 본인이 직접 만든 것이다.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그의 영화처럼 복합적인 정서가 스코어 하나하나에 묻어난다. 기성 영화음악가를 방불케 하는 실력을 자랑하던 아메나바르는 각본이나 제작을 함께 했던 스페인 감독들의 영화 음악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