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백만을 넘겼다. 아직 손익분기(약 180만)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봄나들이가 한창이라 비수기였던 극장가에서 블록버스터들과 싸우며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했다.

이제 <엔드게임 : 엔드게임>이 개봉했으니, <생일>은 스크린을 하나씩 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수호 엄마’는 꼭 극장에서 만나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전도연은 유독 엄마 역할을 자주 했다.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은 단편 <보금자리>를 제외하더라도 6편이나 된다. 인피니티 스톤 여섯개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한국영화의 보물, 전도연이 연기한 6명의 엄마를 만나본다.

** 일부 작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해피 엔드 1999

전도연은 97년 <접속>으로 데뷔해서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받는다. 98년에 출연한 정통멜로 <약속>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그 뒤를 잇는 작품이 ‘치정 살인극’이라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해피 엔드>는 한국 영화사 전체의 동일 장르를 뒤져봐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밀도가 높은 수작이었다. 전도연은 여기에서 무능력한 남편에게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여전히 전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유부녀 ‘최보라’를 연기한다. 정부를 만나러가기 위해 분유에 수면제를 갈아넣는 엄마는 아무나 연기할 수 있는 파격이 아니다.


인어공주 2004

나영은 억척스럽기만 한 엄마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아빠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행방불명 된다. 나영은 부모님의 고향으로 아빠를 찾아갔다가 신비로운 여행을 하게 된다. 전도연이 ‘딸’ 나영과 ‘젊은 날의 엄마’ 연순을 1인 2역 하는 타임슬립 영화. 때론 친구같고 때론 원수 같은 모녀지간의 디테일을 유쾌한 판타지로 그려냈다. 엄마도 원래는 꿈 많은 소녀였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 왠일인지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랄까.


밀양 2007

자식 잃은 아픔을 연기한 것은 <밀양>이 먼저였다. 남편을 잃고 이렇다할 연고도 없는 밀양으로 아들과 함께 내려온 신애(전도연). 세상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웅변학원 원장의 어설픈 납치극으로 잃고 만다. 교회의 힘을 빌어 원장을 용서하러 왔건만, 살인범은 이미 신에게 용서를 받았다며 부처와 같은 표정으로 신애를 맞는다. 말그대로 용서할래야 용서를 할 수 없는 상황. 거장 이창동이 설정한 이 끔찍한 딜레마 앞에 모정은 한번 더 무너진다.


집으로 가는길 2013

전도연은 이미 JTBC 뉴스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바로 영화 <집으로 가는길>의 개봉 즈음이었다.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누명을 쓰고 마르티니크 섬의 감옥에 갇혀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여인 ‘정인’이었다. ‘정연’은 무책임한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에도 굴하지 않고 집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딸 ‘혜린’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 안타까운 모정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전도연은 <집으로 가는길>에서 실제 수감자들 속에 몸을 던지는 열연을 펼쳤다.


남과 여 2015

운명적인 사랑이란 게, 결혼한 이후에 오면 어쩌나? 상민(전도연)은 아이를 국제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찾은 헬싱키에서 유부남 기홍(공유)을 만난다. 운명적인 끌림 속에 두 사람은 선을 넘지만, 기홍은 끝내 가정을 포기하지 못한다. 작품은 호불호가 다소 갈렸다. 그저 북유럽의 풍광을 배경으로 했을 뿐, 아침 불륜 드라마와 다를 게 없다고 손가락질하는 팬들도 많았다. 그러나 상민이 나쁜 엄마가 되면서까지 운명적인 사랑에 모든 걸 던지는 과정만은 충분히 설득력있는 연기였다.


생일 2018

전도연은 개봉 전후로 ‘생일’과 관련한 말을 아꼈다. 개봉하고 몇주가 지나서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날은 마침 세월호 참사 5주기 하루 전이었다. 앵커 손석희의 표현처럼 아직 ‘수호 엄마’의 눈빛으로 스튜디오를 찾은 그녀는 우리가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마도 많은 분이 다시 아픔을 끄집어내는 것에 두려움이 있겠지만, 전도연은 <생일>이 결국 남아있는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영화를 꼭 봐주기를 당부했다.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안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