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은 가슴이 먹먹한 이야기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먹먹함을 넘어 답답함까지 느껴지는 영화들은 여러 가지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무르곤 한다. 오늘은 고구마는 100개는 먹은 것 같이 답답해져 오는 ‘고구마 답답이’ 영화 5편을 선정했다. 이 영화들을 볼 때 시원한 탄산음료 한 잔을 곁에 두고 보길 추천한다. 아래 선정된 5편의 영화들은 네이버 시리즈에서 4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 2008

감독 마크 허만 / 전쟁, 드라마, 스릴러 / 12세 관람가 / 94분

출연 에이사 버터필드, 잭 스캔론, 베라 파미가 ▶바로보기

8살 소년 브루노(에이사 버터필드)는 수용소 관리자 직책을 임명받은 아버지를 따라 가족과 함께 폴란드로 이사한다. 그들이 이사한 곳은 바로 악명높은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까운 집에서 살게 된 브루노는 창문 너머 유대인들을 보지만 나치와 그에 대해 알리가 없어 궁금할 뿐이다. 학교도 없어 집에서만 생활하던 브루노는 어느 날 호기심에 몰래 뒷문을 빠져나가고, 길의 끝에서 수용소 철조망을 보게 된다. 철조망 너머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소년 슈무엘(잭 스캔론)을 만나 반가움을 느낀 브루노는 다음날부터 계속해서 슈무엘을 찾아 가고, 두 소년은 남몰래 우정을 쌓아나간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 본 홀로코스트 영화로 나치가 유대인을 향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들이 아이들의 순수함과 더욱 대비되어 보여진다.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들이 맞이해버린 비극은 이로 하여금 나치의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보다 시각적으로는 덜 자극적이지만 그보다 더 날카롭게 당대의 현실이 마음을 파고들며 아픈 울림을 내는 영화.


어톤먼트

Atonement , 2007

감독 조 라이트 / 드라마, 멜로, 전쟁 / 15세 관람가 / 122분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제임스 맥어보이, 시얼샤 로넌 ▶바로보기

1935년 영국, 부유한 집안인 탈리스 가의 막내 딸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은 희곡 쓰기를 즐겨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다. 브라이오니의 언니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저택으로 돌아온 상황. 세실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지만 집사의 아들이라는 계급 차이로 인해 거리를 두고 있던 로비(제임스 맥어보이)와 부딪히고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마음과 성적인 긴장감은 점점 주체할 수 없이 서로를 향해간다.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탈리스 가에 놀러 온 친척 로라(주노 템플)가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모든 사람들이 로라를 찾으러 간 사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충동적인 정사를 나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목격하고야 만 브라이오니는 충격에 로라의 실종과 더불어 벌어진 사건에 대한 거짓 증언을 한다.

두 젊은 남녀 사이로 틈을 비집고 피어난 한 소녀의 치기어린 거짓말이 야기한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어톤먼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어린 시절 저지른 자신의 실수에 대한 끊임없는 회한으로 평생을 살아 온 브라이오니를 마주할 때, 알 수 없는 답답한 기분에 휩싸이게 될 것. 잘못에 대해 (일방적인) 용서를 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 것일까. 또 다른 폭력을 자행한 건 아닐까. <어톤먼트>의 브라이오니는 ‘희대의 X년’으로 불리며 많은 안티팬(?)을 양성해낸 캐릭터로 유명하다. <어톤먼트>는 2008년 골든글로브 드라마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더 헌트

Jagten , The Hunt , 2012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 드라마 / 15세 관람가 / 115분

출연 매즈 미켈슨, 토머스 보 라센, 수시 울드 ▶바로보기

이혼 후, 고향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며 새 여자친구, 아들과 함께 소소하게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루카스(매즈 미켈슨). 루카스의 친구 테오의 딸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는 루카스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중 하나다.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클라라를 챙겨주던 루카스는 자신에게 아이답지 않은 호감을 비추는 클라라에 난처해지고, 클라라가 상처받지 않게 타이른다. 하지만 클라라는 루카스의 거절에 상처받은 나머지 유치원 원장에게 충동적으로 루카스의 성기를 봤다는 거짓말을 하고, 이는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지며 루카스의 삶을 흔들기 시작한다.

'어린 아이들은 (순수하기에)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말을 근거 삼아 한 남자에게 아동 성범죄자라는 낙인을 찍는 사람들. 이성적 판단과 집단 본성의 오류를 목격함과 동시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과 행동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읽을 때 드는 섬뜩함이 있다.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총성은 ‘진실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희망어린 통념을 무력하게 만들며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를 것. 여담이지만 <어톤먼트>를 보고 <더 헌트>를 본 기자는 이후로 성악설을 믿었다고 한다.


쿠르스크

Kursk , 2018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 드라마 / 15세 관람가 / 118분

출연 콜린 퍼스,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레아 세이두 ▶바로보기

재난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법이다. 별다를 것 없이 평범했던 토요일 아침, 러시아의 핵잠수함 쿠르스크에 승선한 주인공 미하일(마티아스 쇼에나에츠). 하지만 출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없는 폭발과 함께 선체에 구멍이 뚫리며 쿠르스크는 바다 아래로 침몰한다. 같은 시각 남편의 소식을 듣게 된 아내 타냐(레아 세이두)는 다른 선원 가족들과 함께 안에 갇혀 있을 남편의 생사를 정부에 묻지만 국가는 그들의 물음을 회피하기에 급급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간다.

<쿠르스크>는 2000년 8월 바렌츠 해에서 발생한 러시아 초대형 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침몰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당시 러시아 정부에게 영국과 미국 등 타 국가들이 지원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러시아는 제안을 거절, 독자적으로 구조작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낙후된 장비탓에 구조 작전이 자꾸만 실패로 돌아가자 러시아는 자존심을 굽히고 영국과 노르웨이의 지원을 받아들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결국 해치를 여는 데는 성공했으나 승조원 118명 전원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당시 발견된 메모로 추정되는 사건 직후 생존자는 23명이었다). 예고 없이 닥친 재난 앞에서 국가는 어떤 모습을 하는가. <쿠르스크>가 더욱 답답하고 참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쿠르스크의 이야기가 우리 가까이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부도의 날

Default , 2018

감독 최국희 / 드라마 / 12세 관람가 / 114분

출연 김혜수, 유아인, 허준호, 조우진, 뱅상 카셀 ▶바로보기

산꼭대기에 올라섰다면 다음 이어질 길은 내리막뿐이다. 문제는 이 내리막을 어떻게 걸어내려 가느냐다. <국가부도의 날>은 최고의 경제 호황을 맞은 1997년 한국이 사실은 국가 부도를 일주일 남겨 놓고 있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은 국가 부도가 일주일 남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정부에 알린다. 이에 정부는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비공개 대책팀을 꾸리지만, 국가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재정국 차관(조우진)에 의해 한시현이 제안하는 실질적인 해결책은 유보되기만 할 뿐이다. 결국 시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정국 차관은 IMF 총재(뱅상 카셀)을 한국에 불러와 합의를 진행시킨다. 그리고 그 아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평범한 시민들과 상황을 알고 위기에 한 방을 건 세 남자가 있다.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일어난 IMF 외환위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가 의미를 갖는 지점은 바로 결말에 있다.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것 없는 현재를 비추면서, 영화는 위기가 비단 당시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다. 당대의 과오가 21년이 지난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갖추고 산을 걷고 있는 것인지 자문하게 될 것. 영화를 끄고 난 이후 답답함이 가시질 않는다면, 이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씨네플레이 문선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