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을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2일 막을 올렸다. 올해는 지난해 대비 16편이 증가한 262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은 어떤 영화를 관람해야 잘 봤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일 듯하다.

감독의 이름은 이런 고민을 줄여줄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다. 영화제에는 처음 접하는 이름부터 익숙한 이름까지, 수많은 감독의 작품이 초청됐다. 첫 장편영화를 선보이는 감독부터 해외 영화제 트로피를 거머쥐며 재능을 입증한 감독, 이름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거장도 있다. 이들 가운데 7명을 추려 그들이 전주에서 선보일 작품들을 소개한다.

화려한 데뷔작

셀리아 리코 클라베이노 감독 <엄마에게로의 여행>

스페인 / 2018 / 94분 / 픽션 / 국제경쟁

<엄마에게로의 여행>

스페인의 셀리아 리코 클라베이노는 첫 단편 <루이샤는 집에 없다>(2012)부터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된 감독이다. <엄마에게로의 여행>은 그녀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전주영화제에 앞서 산타바바라영화제 등에서 비전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루이샤는 집에 없다>에서 부부 관계를 다뤘던 클라베이노 감독은 <엄마에게로의 여행>에서는 모녀지간에 초점을 맞췄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려 집을 나서는 딸과 그런 그녀를 떠나보내는 엄마.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촘촘히 풀어낸 작품이다. 멀리 스페인에서 전주를 찾은 영화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소재는 국내 관객들에게도 큰 공감을 살 듯하다.


노라 핑샤이트 감독 <도주하는 아이>

독일 / 2019 / 118분 / 픽션 / 국제경쟁

<도주하는 아이>

독일의 노라 핑샤이트 감독은 첫 장편 <도주하는 아이>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그녀에게 트로피를 안겨준 장본인은 다름 아닌 9살짜리 소녀. 핑샤이트 감독이 창조한 캐릭터이자 <도주하는 아이>의 주인공 베니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특수 시설로 보내진 베니는 엄마, 치료사 등 주변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사랑스러웠다가도 한순간 괴물같이 변하는 그녀는 시설과 학교를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그 과정은 제목처럼 도주라 할 수 있겠다. 반면 베니의 내면에 집중해보자면, 오히려 사랑을 찾아 헤매는 힘겨운 여정을 볼 수 있을 듯하다. 베니를 연기한 아역배우 헬레나 젱겔은 폭발적인 연기로 이미 해외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짐 커밍스 감독 <썬더 로드>

미국 / 2018 / 90분 / 픽션 / 프론트라인

<썬더 로드>

전주영화제의 섹션 중 하나인 프론트라인(Frontline). 최전방이라는 이름답게 혁신을 표방, 질문과 논쟁을 촉진하는 문제작들이 모인 곳이다. 자연스레 프론트라인에는 번뜩이는 감각의 신진 감독의 영화가 대거 초청됐다. 그중에서도 <썬더 로드>의 짐 커밍스 감독은 1987년생의 젊은 감독이다.

배우 활동도 겸하고 있는 짐 커밍스 감독은 2016년 연출한 단편 <썬더 로드>가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한 경찰관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그녀가 좋아했던 노래 썬더 로드를 틀며 춤을 추는 내용이다. 전주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이를 장편으로 발전시킨 것. 단편이 코미디에 가까웠다면 장편은 주인공의 심경을 면밀히 비춰 짙은 드라마로 발전시켰다. <썬도 로드>는 2018년 북미 개봉,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현재 유명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98%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

전작의 명성을 잇는 기대작

메이 엘투키 감독 <퀸 오브 하츠>

덴마크, 스웨덴 / 2018 / 127분 / 픽션 / 시네마페스트

<퀸 오브 하츠>

선댄스의 사랑을 받은 또 한 명의 감독이다. 2015년 <롱 스토리 쇼트>로 코펜하겐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수상한 메이 엘투키 감독. 그녀는 신작 <퀸 오브 하츠>가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다시금 실력을 입증했다.

변호사로서의 성공적인 커리어, 의사 남편과 사랑스러운 두 딸까지. 안네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남편의 배다른 아들 구스타우가 나타나고 점차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거짓이 쌓여가는 상황 속, 안네의 결정은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 어 베러 월드>, <사랑의 시대> 등으로 연기력 인정받은 트린 디어홈이 안네를 연기했다. 구스타우를 연기한 구스타프 린드는 이 영화로 홍콩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 라이징스타로 급부상했다.


배리 젠킨스 감독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미국 / 2018 / 119분 / 픽션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2016년 <문라이트>로 아카데미를 휩쓸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배리 젠킨스 감독. 그의 신작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도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문라이트>에서 날카로운 비판의식보다는 아련한 감성으로 인권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냈던 젠킨스 감독. 그는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에서도 사회적 편견에 대항하는 커플의 이야기를 멜로드라마의 형식으로 풀어냈다. 주인공은 최근 약혼한 할렘가의 여성 티시. 그녀는 범죄자로 몰린 약혼자의 억울한 누명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제임스 볼드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믿고 보는 거장의 작품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 <벌레>

체코 / 2018 / 98분 / 픽션 / 마스터즈

<벌레>

거장들의 신작들을 소개하는 마스터즈 섹션.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그 가운데 가장 궁금증을 자극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초현실주의 애니메이션의 대가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의 <벌레>다. 이 작품 역시 실사에 콜라주 기법 등을 활용한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결합했다.

영화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곤충 극장>이라는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인물들이 연극 배역인 벌레들에 점점 동화되어가는 이야기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등 체코의 부조리 문학에 기반을 둔 작품.(영화에 등장하는 <곤충 극장>도 실제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의 유명 희곡이다) 여기에 내면을 잠식하는 이기심, 공포 등을 통해 인간의 밑바닥을 가감 없이 비췄다.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벌레들의 디자인을 직접 제작했다.

이외 마스터즈 섹션에는 다양한 장르로 철학적 의미를 담아내는 드루노 뒤몽 감독, 다큐멘터리 장인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 중국 독립영화계의 산증인 왕 샤오슈아이 감독 등 여러 거장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

프랑스 / 2019 / 115분 / 다큐멘터리 / 시네마톨로지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

영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들로 구성된 시네마톨로지 섹션에도 빠질 수 없는 이름이 등장했다. 지난 3월28일 타계한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다. 전주에서는 그녀의 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가 상영된다.

영화는 바르다 감독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이 사랑했던 영화들,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녀는 생전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솔직하게 나 스스로를 드러내 많은 사람들과 에너지를 나누고 싶었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는 나의 영화 원천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전했다. 바르다 감독이 오랜 세월 쌓아온 영화 인생을 공유, 관객들에게 선물을 주는 듯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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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