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 기질을 가졌음에도 당장 뛰쳐나가고 싶게 만드는 5월의 날씨다. 완연한 봄을 맞아 곳곳에서 각종 축제가 열리고 있다. 뭘 해도 좋은 계절, 영화 보기도 좋은 시기다. 이런 시기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 2일 개막했다. 전주영화제의 개막에 맞춰, 기자가 그동안 다녔던 영화제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석 같은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한다. 이 영화들은 5월 4일(토)부터 5월 10일(금)까지 네이버 시리즈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다. (단,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무료) 네이버 시리즈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영화 가운데 고르느라 몇 편의 영화들이 빠졌음을 밝히며, 영화 감상 당시 남겼던 개인의 취향 100% 반영된 별점도 함께 담았다.


내 사랑

- 2017년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야외상영 -

★★★★☆

감독 에이슬링 월쉬

출연 샐리 호킨스, 에단 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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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케팅 똥손이라 영화제에서 야외 상영작을 많이 본다. 좌석이 많아 현장에서도 표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외상영작은 영화제 측에서도 실험적인 영화보다 대중적인 영화를 주로 선정하기 때문에 선택 실패의 위험이 적다. 2년 전, 전주에서 만난 야외상영작 <내 사랑>은 봄밤과 무척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느릿하고 운치 있는 영화의 영화음악이 분위기를 더했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 혼자 사는 생선 장수 에버렛(에단 호크) 앞에 모드(샐리 호킨스)가 가정부로 나타나고 두 사람은 함께 지낸다. 소아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는 모드의 모든 행동은 느리다. 괴팍하고 무뚝뚝한 에버렛은 처음엔 그녀가 영 맘에 들지 않지만 모드의 그림으로 채워지는 따뜻한 집처럼 점차 모드에게 물들어간다. <내 사랑>은 실제 화가 모드 루이스의 생애를 모티프로 한 영화다. 샐리 호킨스의 사랑스러운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 2017년 제2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

★★★★☆

감독 문창용, 전진

출연 파드마 앙뚜, 우르간 릭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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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색다른 신생 영화제다. 자연과 액티비티, 미지의 국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 취향이 분명한 관객을 겨냥한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허구의 이야기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드라마틱한 실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이 이야기가 영화에 담기게 된 비하인드부터 흥미롭다. 문창용 감독은 의학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인도의 시골마을 의사 우르간을 취재하기로 한다. 취재 중 항상 우르간 옆을 맴돌던 순박하고 평범한 아이 앙뚜가 어느 날 린포체(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난 고승)로 지명받는 것을 보게 된다. 이후 노승 우르간은 아이를 모신다. 평범한 아이였다가 한순간 린포체가 된 아이는 제약 많고 엄격한 환경에 외롭기만 하다. 우르간은 그런 린포체 곁을 지키며 부모이자 스승, 친구가 되어준다. 문창용 감독은 이들의 관계에 매료되어 의학 다큐멘터리 대신 이들의 삶을 담기로 한다. 인도 라다크 지역과 티베트 시킴,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의 배경이 이들의 우정을 더욱 신비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러덜리스

- 2015년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야외상영 -

★★★★

감독 윌리암 H. 머시

출연 빌리 크루덥, 안톤 옐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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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주영화제의 야외상영장은 커다란 천막으로 돔을 만들어 비가 와도 끄떡없다. 그러나 2015년까지만 해도 천장 없는 야외에서 상영했다. 벌써 4년이 지난 지금, <러덜리스>의 내용보다 비가 내릴 듯 말 듯 한 날씨에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더 많이 난다. 개봉 당시 <비긴 어게인>과 <위플래쉬>를 잇는 음악영화라고 홍보됐지만 <러덜리스>는 두 영화들과 나란히 하기엔 여러모로 복잡한 영화다. 샘(빌리 크루덥)은 죽은 아들의 사건 때문에 잘 나가던 광고 기획 일을 버리고 요트에서 산다. 과거를 묻은 채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으나 결국엔 아들이 만든 음악을 꺼내 부르게 된다. 그의 음악을 듣고 쿠엔틴(안톤 옐친)이 함께 밴드를 하자고 제안하고 러덜리스 밴드를 꾸린다. 여기까지 읽으면 죽은 아들에 대한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하는 훈훈한 이야기일까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은 아들이 학교에서 6명의 학생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했던 인물이라면? 이때부터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살인범인 아들의 곡을 부르는 아버지의 복잡하고 절절한 심정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착잡해지고 무거워진다.


환타지아 2000

- 2018년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스페셜 포커스 - 디즈니 레전더리 -

★★★★

감독 제임스 알가, 개턴 브리찌, 폴 브리찌

출연 베트 미들러, 스티브 마틴, 이츠하크 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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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영화제가 준비한 ‘스타워즈 아카이브: 끝나지 않은 연대기’ 특별 섹션처럼 지난해에는 ‘디즈니 레전더리’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디즈니의 거의 모든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특별 섹션이 있었다. <환타지아 2000>은 독특한 형식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총 8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묶은 영화로 각 애니메이션은 하나의 클래식 음악을 테마로 한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5번’,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등 친숙한 클래식 곡이 디즈니의 환상세계와 어우러진다. 단편 사이 유명 영화인들이 다음 시퀀스와 곡에 대해 소개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이해를 돕는다. <환타지아 2000>은 디즈니가 <환타지아>(1940) 이후 60년 만에 만든 후속작이다. 1940년작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 2015년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

★★★★★

감독 에단 호크

출연 세이모어 번스타인, 에단 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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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에단 호크로 시작해 에단 호크로 끝나게 돼버렸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에단 호크가 감독으로 나선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어린 시절 6년 동안 배웠던 여러 피아노 선생님들이 생각나 더 특별한 느낌으로 남은 영화였다. 나는 유독 뭘 해도 배우는 게 느린 인간인데 어쩐 일인지 악보는 빨리 본다는 칭찬을 들었고 여러 선생님들에게 학습보다는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는 천재 피아니스트였지만 훌륭한 선생님이기도 하다. 영화는 어떻게 그가 음악을 대하고 제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지 꽤나 자세히 보여준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전성기 시절의 모습이 아닌 아닌 노년이자 스승이 된 피아니스트를 카메라에 담아 음악가의 인생에 대한 자세를 들어본다. 세이모어는 <위플래쉬>의 악착같이 독촉하는 플랫처(J. K. 시몬스) 교수와 비교하면 정반대에 위치할 타입이다. 푸근한 인상에 배려심 넘치는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절로 힐링 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씨네플레이 조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