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와 배우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수 출신 배우인 임시완, 도경수 등이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연기를 병행하는 가수들을 색안경 끼고 보는 시선도 많이 줄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그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올해 영화제에서 소개된 국내 독립영화 중에 유독 가수 출신 배우들이 눈에 띄었다. 올해 영화로 전주를 찾은 이들을 모아 소개한다.
혜리
<뎀프시롤>(가제)
<뎀프시롤>은 단편 <뎀프시롤: 참회록>이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뒤 장편 버전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다. e다수의 작품에서 비중에 상관없이 인상 깊은 캐릭터를 보여준 엄태구와 아이돌 출신 배우 혜리가 주연을 맡았다. 혜리는 새로 들어온 신입관원 민지 역을 맡아 실패한 복서 병구(엄태구)가 자신만의 복싱 스타일인 '판소리 복싱'을 완성할 수 있게끔 서포터 하는 캐릭터를 맡았다.
혜리는 아이돌 그룹 걸스데이로 데뷔했다. 걸스데이는 올해 멤버들이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돼 뿔뿔이 흩어지며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았다. 그룹 내에서 연기 활동을 병행했던 혜리와 민아는 앞으로 배우 활동에 조금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혜리는 아이돌 출신이지만 오히려 연기자로서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응답하라 1988>에서 털털하고 명랑 쾌활한 덕선 역을 맡아 캐릭터와 배우의 경계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를 보여주었다. 단번에 깜짝 라이징 스타로 등극한 이후 행보는 조금 아쉽다. 드라마 <딴따라>와 <투깝스>, 영화 <물괴>에 출연했지만 아쉬운 흥행 성적표를 받아야했다.
정제원
<굿바이 썸머>
노란빛이 감도는 스틸컷, 아련한 제목, 교복 입은 주인공들의 모습이 언뜻 일본, 대만의 학원물을 떠오르게 한다. <굿바이 썸머>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고등학교 3학년 현재(정제원)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청춘물이다. 최근 <SKY 캐슬>로 주목받은 김보라와 함께 출연했다. 영화제에도 같이 방문했다. 정제원과 김보라는 최근 tvN에서 방영 중인 <그녀의 사생활>에서 아이돌 가수와 그를 쫓아다나니는 사생팬 역할로 함께 출연하고 있다.
<쇼 미 더 머니> 시즌 4, 5편에 출연해 래퍼로 먼저 데뷔한 정제원은 아이돌 같은 비주얼로 인기를 끌었다. <굿바이 썸머>가 스크린 데뷔작이지만 그 이전 몇몇 TV드라마에서 조연 캐릭터를 맡아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화유기>에서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방물장수 손자 역으로 데뷔했고 tvN 단막극 <문집>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에서 여주인공이 덕질하는 아이돌 가수로 출연하고 있으며, tvN에서 방영 예정인 <아스달 연대기>에서 장동건 아역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아이유
<아무도 없는 곳>
넷플릭스 영화 <페르소나> '밤을 걷다' 편을 함께 작업했던 김종관 감독과 아이유가 다음 작품에서도 만났다. <아무도 없는 곳>은 출간을 앞둔 소설가 창석(연우진)이 여러 사람을 만나며 겪는 마음의 변화를 그린 영화다. 아이유는 그에게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묘령의 여인 미영 역을 맡았다. 아쉽게도 아이유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는 참석하지 않았다.
음악과 연기를 병행하는 연예인들의 경우 어느 한쪽으로 성과가 쏠리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유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는 느낌이다. 2011년 드라마 <드림하이>로 본격적으로 연기에 뛰어든 그녀는 50부작 긴 호흡의 주말극 <최고다 이순신>의 주연을 맡았으며 이후 <예쁜 남자>, <프로듀사>,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나의 아저씨>까지 꾸준히 연기 활동을 했다. 물론 시청률이 낮은 작품도 있고 그녀의 캐릭터가 눈에 띄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의 아저씨>를 기점으로 배우로서 보다 좋은 평가를 받게 됐다. 차기작은 다시 드라마다.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여진구와 호흡을 맞춘다.
소이
<리바운드>
소이는 단편 <리바운드>의 제작, 각본, 주연을 맡으며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리바운드>는 레드벨벳 '빨간맛', 태연 'FINE' 등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성창원 감독의 작품이다. 연락이 안 되던 남자친구와 드디어 연락이 닿았지만 더 이상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친구의 말에 혼란스러워지는 여자의 마음을 그린 영화다.
그녀를 90년대 데뷔한 걸그룹 '티티마' 멤버로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디밴드 라즈베리필드의 보컬로 기억하고 있는가.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세대가 나뉠 수 있겠다. 가수 이전에 VJ로 먼저 연예계에 입문한 소이는 티티마로 데뷔하기 전 SES 멤버가 될 뻔했다. 바다, 슈, 유진과 함께 연습생 준비를 하다 대학 입시 준비를 위해 포기했다고. 2002년 티티마 해체 이후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로 연기 데뷔했다. 이후 다양한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했으며 단편 영화 작업과 라즈베리필드 밴드 활동을 병행했다. 최근엔 <프랑스 영화처럼>, <폭력의 씨앗> 같은 주목 받은 독립영화들에 출연했다.
씨네플레이 조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