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4일.
배우 패트릭 스웨이지가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가볍고 화려한 춤사위와
짙은 얼굴에 묻어나는 순수함이
돋보이던 배우였기에
그의 이른 죽음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깝게 기억됩니다.
고된 항암치료 중에도
촬영장을 떠나지 않고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던 그였지만,
그래도 오늘은
패트릭 스웨이지가
화려하고 건강하던 순간들만
기억해보고자 합니다.
패트릭 스웨이지는
1952년 8월 18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태어났습니다.
안무가인 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는 학창시절
아이스스케이팅, 발레,
풋볼, 연기 등 다방면에
소질을 보였습니다.
21살 뉴욕으로 온 그는
정식으로 발레 교육을 받습니다.
에이스 존슨
/
<스케이트타운>
(Skatetown U.S.A., 1979)
패트릭 스웨이지의 첫 영화입니다.
롤러디스코의 붐에 맞춰 제작됐죠.
잘 나가는 댄서 에이스로 출연해
장기인 춤 솜씨를 선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나 배우나
큰 주목은 받지 못했습니다.
대럴 커티스
/
<아웃사이더>
(The Outsiders, 1983)
70년대,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같은 걸작들을
내놓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1983년 소품 같은 성장영화
<아웃사이더>를 내놓습니다.
패트릭 스웨이지는
훗날 대스타로 성장하는
맷 딜런, 톰 크루즈, 다이안 레인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춘 이 영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제 존재를 알리기 시작합니다.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의
방황을 그린 영화에서 그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는
맏형 대럴 역을 맡았습니다.
패트릭 스웨이지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듬직한 형'은
<아웃사이더>부터 비롯된 셈이죠.
어리 메인
/
<남과 북>
(North and South, 1985)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기까지
남부와 북부의 가치관과 경제 상황이
두드러지는 <남과 북>에서
스웨이지는 남부 농장주의 후계자
어리 메인 역을 맡았습니다.
그는 육군 사관학교에서
북부에서 온 조지 헤저드(제임스 리드)와
우정을 쌓습니다.
두 사람이 각자 남과 북을
상징한다고 본다면,
남부와 북부의
갈등이 깊어진 시대 배경과
어리와 조지의 질긴 우정은
분명 아이러니입니다.
두 사람은 멕시코 전쟁에 참전하고,
어리는 그 전쟁에서 다리를 잃게 됩니다.
남북전쟁 하루 전
어리는 북부를 탈출하고,
훗날 두 친구는 다시 만나
전후의 삶을 재건합니다.
미니시리즈 <남과 북>은
미국의 대하역사물이라 할 만한
장대한 이야기를 그립니다.
우리나라에도 방영된 바 있어
비교적 국내에 인지도가 큰 작품이죠.
그래서 한때 한국에서는
패트릭 스웨이지를
그냥 '어리 메인'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자니 캐슬
/
<더티 댄싱>
(Dirty Dancing, 1986)
더 설명이 필요할까요?
패트릭 스웨이지의 출세작이자 대표작
<더티 댄싱>입니다.
춤과 음악을 통해
고난을 헤쳐가는
두 연인의 사랑을 그린 영화죠.
스웨이지가 연기한 자니 캐슬은
멀끔한 외모의 댄스 교사입니다.
가족과 여행 온 베이비(제니퍼 그레이)는
숲속 산장에서 벌어진
댄스 파티를 발견하고,
거기서 자니와 파트너 페니(신시아 로즈)의
춤에 매료되고 말죠.
페니가 수술 때문에 자리를 비우고,
춤엔 영 잼병인 베이비가
자니의 파트너를 대신합니다.
그 다음은.... 다 아시겠죠?
연습을 거듭하는 사이,
자니와 베이비는 사랑에 빠집니다.
주변의 오해와 방해로
두 사람은 잠시 헤어지지만,
파티에서 다시 만나
그동안 금기시되어 온
더티댄싱을 춥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성공이었습니다.
600만 달러로 제작돼
전 세계 2억1천만 달러의
거대한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한국에서의 흥행도 대단해
종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팬들의 열렬한 요청에 의해
3주간 앵콜 상영까지
이뤄졌다고 합니다.
2007년 재개봉 당시에도
적은 상영관 수에도 불구하고
15만 명이 추억을 되살렸죠.
스웨이지는 자서전에서
<더티 댄싱>에 대해서
"청소년 서머 컴프에
상영되기에 딱 맞을 정도로,
솜털이 보송한 영화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샘 웨트
/
<사랑과 영혼>
(Ghost, 1990)
네,
패트릭 스웨이지의
또 다른 대표작
<사랑과 영혼>입니다.
영화의 상징이라 할 만한
저 위 이미지만 보더라도
노래 'Unchained Melody'가
흐르는 것만 같죠.
(<고스트>가 아닌!)
<사랑과 영혼>이 기록한
한국에서의 흥행은
<더티 댄싱>의 그것보다 더 대단했습니다.
당시 전국 350만 관객을 동원했죠.
1991년 당시 단일 상영관 체제를
고려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수준인 셈.
이 작품의 히트 덕분에
이전엔 재개봉관이나 소규모 상영관에서
상영되던 직배영화를
대규모 극장들이 서로 틀겠다고
경쟁을 벌이는 역전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연인 몰리(데미 무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샘은 어느날 괴한의 습격으로
몰리 곁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영혼이 되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몰리 역시 위험에 빠질 거라고
느낀 샘은 자신을 알아보는
점성술사 오다메(우피 골드버그)를 만나
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떠나며 나누는 대화.
"I love you, Molly.
I've always loved you."
"Ditto."
스웨이지는 <사랑과 영혼>의
시나리오를 읽고 제리 주커 감독에게
자신이 역할을 맡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남성적이고 동적인
기존 그의 이미지 때문에
스웨이지가 과연
섬세하디 섬세한 샘을
연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수많은 대중들이 보았듯,
아주 성공적인 캐스팅이었습니다.
보디
/
<폭풍 속으로>
(Point Break, 1991)
임의로 바꾼 한국어 제목은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폭풍 속으로'는 왠지
서핑 용어인 'Point Break'보다
더 영화의 원제처럼 느껴집니다.
<폭풍 속으로>는
스웨이지가 연기한
영화의 주인공 보디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은행강도인 서핑 무리를
수사하러 캘리포니아 해변에 온
신입 FBI요원 자니(키아누 리브스)는
거기서 만난 테일러(로리 페티)와
사랑에 빠지고,
보디의 무리를 알게 됩니다.
자니는 그들이 은행강도 범인이라는
증거를 발견하지만,
자니의 정체를 안 보디는
테일러를 납치해 그에게
강도에 협력하기를 종용하죠.
하지만 작전은 실패하고
자니는 보디를 추격해 체포합니다.
보살이라는 뜻의
'보디사트바'에서 따온
그 이름처럼,
보디는 자유로운 가치관과
카리스마를 갖춘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아주 평범하게 성장해온
자니의 흥미를 이끌어내죠.
“우리는 돈 때문에
은행을 터는 게 아니야.
이건 시스템과의 싸움이라구.
이 X같은 자본주의사회에도
시스템을 비웃고 파괴하려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줘야 해!”
사실 보디는 나쁜 놈입니다.
하지만 그가 범죄를 저지르고
내뱉는 궤변은 사람들을 압도합니다.
이런 매력 때문에
그가 멀쩡히 강도라는 걸 알아도
자니는 결국 그의 길을
따르게 됩니다.
세상의 속박에 따르기보단
음지에서 자신의 뜻을 키워가는
'건강한' 인물을 연기해 온
패트릭 스웨이지의 이미지가
없었다면 이 무모하고 한심한
이야기는 성립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맥스 로
/
<시티 오브 조이>
(City of Joy, 1992)
<폭풍 속으로>의 보디가
사이비 성인이라면,
<시티 오브 조이>의 맥스는
진짜 성인이라고 부를 만한
바다같은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된 맥스는
생사의 운명 앞에서
자신이 한낱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에 자괴에 빠집니다.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어린 환자를 결국 살려내지 못한
이후로 그 무력함은 커져만 가죠.
그는 의사로서 모든 걸 잊기 위해
인도 캘커타로 도망쳐 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그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옵니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던
맥스는 결국 진료 봉사활동을
도우면서 지금껏 알지 못했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특히 고난과 역경의 삶을
꿎꿎하게 버텨나가는
캘커타의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의 가치를 찾습니다.
<시티 오브 조이>의 맥스는
패트릭 스웨이지가 보여준
가장 뛰어난 연기로 손꼽힙니다.
대표작 <더티 댄싱>과 <사랑과 영혼>
에서 보여준 건강함과 젠틀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인물이죠.
애초부터 굳건한 성품이 아닌,
삶의 가치를 철저히 고민하고
스스로를 찾기 위해 방황하다가,
끝내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 해답을 찾아나가는
맥스의 맑은 웃음은,
스크린에 새겨진 패트릭 스웨이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