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이즈 백> 촬영 현장. 피터 헤지스(왼쪽), 루카스 헤지스

5월 9일, <벤 이즈 백>이 개봉했다. <어바웃 어 보이> 연출로 유명한 피터 헤지스 감독이 <티모시 그린의 이상한 삶> 이후 6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신작이자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할리우드 블루칩에 입성한 루카스 헤지스가 줄리아 로버츠와 호흡을 맞췄다. 읽다가 미묘한 점을 찾았는가? 맞다. 피터 헤지스와 루카스 헤지스는 부자 관계다. 아버지가 연출하고, 아들이 (심지어 극중 아들 역할로) 주연한 영화였다. 아빠와 함께 호흡을 맞춘 아들, 딸은 또 누가 있을까.

※ 인명 표기는 네이버 영화 DB를 기준으로 하나, 표기법이 다른 경우 대중적으로 사용된 인명을 기준으로 함.


[ 가족 출연의 안 좋은 예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소피아 코폴라

<대부 3> 촬영장의 소피아 코폴라(왼쪽),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 3>의 소피아 코폴라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대부 2> 이후 16년 만에 <대부 3>를 연출하는데, 마이클 콜리오네(알 파치노)의 딸 매리 역으로 자신의 친딸 소피아 코폴라를 출연시켰다. 결과는? 최악의 조연, 최악의 미스 캐스팅 등의 예로 거론되고 있다. 관객들 또한 “소피아 코폴라만 아니었으면 호평받았을 것”이란 평가를 내릴 정도. 소피아 코폴라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연기 대신 이론 공부를 선택했고, 1998년 <처녀 자살 소동>로 감독 데뷔했다. 그리고 <사랑도 통역이 될까요?>, <썸웨어>, <매혹당한 사람들> 등 빼어난 연출력으로 성공적인 필모그래피를 쌓는 중이다.

사실 <대부 2>에서도 소피아 코폴라는 엑스트라로 출연했었다.


[ 거장 아빠의 영화를 거절했던 딸 ]

존 휴스턴 & 안젤리카 휴스턴

<사랑과 죽음의 행보> 촬영장의 존 휴스턴(왼쪽), 안젤리카 휴스턴

<말타의 매>, <아스팔트 정글> 등 미국 누아르 장르의 한 획을 그은 존 휴스턴. 그의 딸 안젤리카 휴스턴은 존 휴스턴이 연출할 중세 멜로드라마 <사랑과 죽음의 행보> 클라우디아 역으로 제안을 받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속물’인 내겐 너무 달달해서 끌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렇지만 고민 끝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존 휴스턴의 필모그래피에서 그저 그런 작품이긴 했다. 이 작품에도 두 부녀는 <프리찌스 오너>에서 함께 작업했는데, 안젤리카 휴스턴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에 성공한다.

<프리찌스 오너> 주역들. (왼쪽부터) 잭 니콜슨, 캐슬린 터너, 존 휴스턴, 안젤리카 휴스턴


[ 늦둥이 사랑 영원해 ]

클린트 이스트우드 & 프란체스카 이스트우드

<트루 크라임> 촬영장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프란체스카 이스트 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환갑이 넘고 얻은 딸 프란체스카 이스트우드. 늘그막에 얻은 딸아이가 얼마나 예뻤겠는가. 그래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트루 크라임>에 프란체스카를 출연시켰다. 그것도 자신이 연기한 스티브 에버렛의 딸 케이트 에버렛으로. 비중이 큰 역은 아니지만, 촬영장에서도 어린 딸을 안고 웃었을 대배우를 생각하면 귀엽게 느껴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후 2014년 <저지 보이즈>에서도 웨이트리스 역으로 프란체스카를 출연시켰다. 프란체스카는 <무법자와 천사들>, <살인 예술가> 등에서 주연을 맡았고 현재 <웨이크업>, <어 바이올렌트 세퍼레이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저지 보이즈>(왼쪽), <살인 예술가> 프리미어 현장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프란체스카


[ 덕후 아빠는 딸바보가 되었다 ]

케빈 스미스 & 할리 퀸 스미스

(왼쪽부터) 릴리 로즈 뎁, 케빈 스미스, 할리 퀸 스미스

케빈 스미스는 덕후 감성 넘치는 감독 중 하나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자신의 딸 이름을 ‘할리 퀸 스미스’라고 지었다. 우리가 아는 그 할리 퀸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아무튼 그는 딸아이의 어린 시절을 <제이 앤 사일런트 밥>에 출연시켜 전 세계에 공개했다. 극중 제이와 사일런트 밥의 아기 버전이 등장하는데, 이중 사일런트 밥 아기 버전이 할리 퀸 스미스다. 사일런트 밥은 케빈 스미스가 직접 연기한 캐릭터니, 나름 적절한 캐스팅 같기도 하다.

<제이 앤 사일런트 밥> 할리 퀸 스미스(오른쪽)

케빈 스미스가 연출한 <슈퍼걸> 에피소드의 할리 퀸 스미스(오른쪽)

<터스크>에서도 할리 퀸 스미스(왼쪽)와 릴리 로즈 뎁은 점원으로 출연했다.

케빈 스미스는 <저지걸>, <점원들 2>, <터스크> 등 자신의 작품에 꾸준히 할리 퀸을 출연시켰다. 심지어 딱 한 번 연출을 맡은 드라마 <슈퍼걸> ‘슈퍼걸 리브스’에도 이지 윌리엄스 역으로 할리퀸을 캐스팅했다. 케빈 스미스의 딸 사랑 정점은 <요가 호저스>. 이 작품은 할리 퀸 스미스와 릴리 로즈 뎁이 주연을 맡았다. 성이 익숙하지 않은가. 릴리 로즈 뎁은 조니 뎁의 딸이다. 조니 뎁도 <요가 호저스>에 직접 출연하며 케빈 스미스와 함께 딸 바보임을 인증했다.

(왼쪽부터) 할리 퀸 스미스, 조니 뎁, 릴리 로즈 뎁


[ 조기 교육으로 엘리트 양성 ]

론 하워드 &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아폴로 13> 촬영장의 하워드 가족.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론 하워드, 셰릴 하워드,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페이지 하워드, 리드 하워드, 조셀린 하워드)

엘리트 조기 교육이었을까. 론 하워드 감독과 그의 딸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영화 작업을 함께 한 건 꽤 옛날 일이다. 1989년 <우리 아빠 야호>, 1995년 <아폴로 13>, 2000년 <그린치>, 2001년 <뷰티풀 마인드>. 이 네 작품은 론 하워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출연했다. 물론 크레딧에 이름이 없을 정도로 단역이었다.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빌리지>, <북 오브 러브>로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한 후엔, 두 사람은 한 작품도 함께 하지 않았다. 공식 석상에 함께 다닐 만큼 돈독한 사이지만 아무래도 공동 작업은 한참 후가 될 것 같다. 참, 론 하워드는 아역 배우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고 감독이 된 케이스다. 브라이스도 최근 단편과 드라마 연출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아빠 야호>


[ 아빠 작품 출연하다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

리차드 링클레이터 & 로렐라이 링클레이터

로렐라이 링클레이터(왼쪽), 리차드 링클레이터

알고보니 육아일기?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는 실제로 12년에 거쳐 완성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딸 사만다 역할을 맡은 배우는 로렐라이 링클레이터. 리차드 감독의 친딸이다. 이 영화를 기획하던 즈음, 로렐라이는 엄청난 재간둥이였다. 거실을 뛰어다니며 춤추고 노래하는 게 일상이었고, 아빠 영화에 출연시켜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래서 사만다 역을 맡겼는데, 4년쯤 지나자 작품에 대한 흥미를 잃었는지 자신의 배역을 죽여서 하차시켜달라고 말했단다. 리차드는 <보이후드>에 그런 내용을 담고 싶지 않았고, 대신 사만다의 분량을 점차 줄이는 걸로 타협 봤다. 로렐라이는 연기에 흥미가 없는 건 아닌지, 지금도 여러 영화와 상업 영화에서 활동 중이다.

<보이후드>


[ 걸크러시 배우를 탄생, 한 작품이면 충분 ]

어니 라이블리 & 블레이크 라이블리

어니 라이블리(왼쪽), 블레이크 라이블리

여긴 좀 독특한 경우다. 어니 라이블리는 1980년대부터 TV드라마, 코미디 영화에서 꾸준히 활동 중인 배우다. 그는 1998년 뮤지컬 영화 <샌드맨>을 연출했는데, 이 영화에서 이빨요정 트릭시 역으로 딸 블레이크 라이블리를 출연시켰다. 영화는 썩 흥행하지도, 호평 받지도 못했다. 이 영화 촬영이 블레이크의 마음 속 연기 열정에 불을 지폈는지 알 수 없지만, 블레이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청바지 돌려입기> 브리짓 역으로 본격적인 배우 활동에 들어갔다. 어니 라이블리는 <청바지 돌려입기>에서 브리짓의 아빠 역으로 출연해 10대 관객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샌드맨> 출연 당시 블레이크 라이블리


[ 가족 단위 출연? 그래도… 진행 시켜! ]

주드 아패토우 & 아이리스 아패토우 & 모드 아패토우

<디스 이즈 40> (왼쪽부터) 아이리스 아패토우, 모드 아패토우, 폴 러드, 레슬리 만

<사고친 후에>

주드 아패토우는 자신의 영화로 가족 자랑 다 한 감독이다. 2007년 <사고친 후에>, 2009년 <퍼니 피들>, 2012년 <디스 이즈 40> 모두 자신의 아내 레슬리 만과 두 딸 모드 아패토우, 아이리스 아패토우를 출연시켰다. 세 작품 모두 주드 아패토우가 각본, 제작, 연출을 한 영화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모드 아패토우는 <하우스 오브 투모로우>, <어쌔시네이션 네이션> 등으로, 아이리스 아패토우는 <소세지 파티>(!), 드라마 <러브>로 배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레슬리 만이야 원래 잘 나가는 배우였으니 넘어가자.


[ 연기 시켜봤던 내 아들이 알고보니 연출 천재?! ]

이반 라이트맨-제이슨 라이트맨

제이슨 라이트먼과 이반 라이트먼

닮은 꼴이란 말은 이반 라이트맨과 제이슨 라이트맨 부자에게 딱 맞는 말이다. 이반 라이트맨은 <고스트 버스터즈>, <트윈스>, <데이브> 등 코미디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헤비 메탈>, <애니멀 하우스의 악동들>, <유치원에 간 사나이> 등을 제작한 명프로듀서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 제이슨 라이트맨은 아버지의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2>, <데이브>, <파더스 데이>에 출연했다.

<고스트 버스터즈 2>(왼쪽), <유치원에 간 사나이>

그렇지만 애초에 배우 생각이 없었는지 자신의 단편 외에는 배우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주노>, <인 디 에어>, <툴리> 등을 연출해 명감독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아빠 이반도 제이슨의 작품에 제작자로 참여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라이트맨 부자는 현재 <고스트 버스터즈>의 신작 <고스트버스터즈 2020(가제)>를 준비하고 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