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칸영화제의 개막이 성큼 다가왔다. 5월 14일부터 25일까지, 전 세계 영화인의 기대를 한 아름 받고 있는 거장의 신작들이 차례로 공개될 예정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선 두 편의 한국 영화를 만날 수 있다. 황금종려상을 두고 경합을 벌일 경쟁 부문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름을 올렸고, 마동석 주연의 <악인전>은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두 영화를 비롯해 칸영화제는 매년 다양한 한국 영화들을 초청해왔다. 칸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국내에선 아쉬운 흥행 성적을 기록했던 한국 영화를 한자리에 모았다. 아래 소개할 영화들은 5월 11일(토)부터 5월 17일(금)까지 네이버 시리즈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
버닝 (다운로드)
제71회 칸영화제(2018) 경쟁부문 초청, 국제비평가협회상·벌칸상 수상
감독 이창동 출연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
해미(전종서)가 실종된다. 종수(유아인)는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미스터리한 남자 벤(스티븐 연)이 자꾸 눈에 밟힌다.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이상한 취미를 지닌 벤이 해미를 납치한 것 같다고 의심하는 종수.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다.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환상인지,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버닝>은 이창동 감독이 바라본 젊은 세대의 이면을 담는다. 무력하고 공허한 삶에서 비롯된 실체 없는 분노, 그로부터 비롯된 기묘한 아우라가 극에 뭉근한 긴장을 더한다. 믿음직한 연기를 펼치는 유아인과 미묘한 표정의 변화만으로도 극을 순식간에 장악하는 존재감을 뽐낸 스티븐 연, 날 것의 연기로 작품 특유의 무드를 형성한 전종서까지, 무엇 하나 구체적이지 않은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배우들의 힘이 빛난다.
클레어의 카메라 (다운로드)
제70회 칸영화제(2017) 특별상영 부문 초청
감독 홍상수 출연 이자벨 위페르, 김민희, 장미희, 정진영
만희(김민희)는 칸영화제 출장 중 부정직하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그녀를 자른 양혜(장미희)는 감독 완수(정진영)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이들을 카메라에 담는 클레어(이자벨 위페르)가 있다. 우연히 완수와 만난 클레어는 그와 예술, 사진을 찍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혜는 클레어의 카메라를 구경하다 이전에 보지 못한 만희의 낯선 모습을 발견한다.
클레어는 사진을 찍는 순간,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미묘하게 달라진다고 말한다. 순간순간의 다름을 포착해낼 줄 아는 클레어, 그리고 홍상수의 여느 영화에서처럼 모순된 대사(와 술잔)를 나열하며 온몸으로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인물들의 간극이 영화에 재미를 더한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2016년 칸영화제 기간에 현지에서 촬영됐다. 배우로 참여한 몇 스탭의 연기가 때론 어색하고 칸의 소음이 그대로 담긴 사운드 역시 매끄럽지 않지만, 그 투박함이 영화의 배경이 된 칸의 활력을 더 생생히 전달한다.
무뢰한 (다운로드)
제68회 칸영화제(2015)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
감독 오승욱 출연 전도연, 김남길, 박성웅
정재곤(김남길)은 범인을 잡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사다. 사람을 죽이고 잠적한 박준길(박성웅)을 잡기 위해, 그는 신분을 위장해 박준길의 연인인 김혜경(전도연)에게 접근한다. 가진 것이라곤 빚뿐인 데다 온갖 무뢰한들의 협박이 일상인 혜경은 어느 것에도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재곤은 살기 위해 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혜경에게서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흔들리지만 쉽게 제 진심을 내비치지 않는다.
살인자, 술집 마담, 잠입 수사를 하다 사랑에 빠진 형사. 전형적인 소재로 똘똘 뭉친 <무뢰한>이 관객을 휘어잡을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연기 덕이다. 믿음과 의심 사이, 미묘한 표정 변화, 절제된 제스처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이들의 감정은 수백 마디의 대사보다 더 많은 말을 전하는 힘을 지녔다. 요동치는 진심을 빙 둘러 가야만 하는 이들의 애처로움은 관객에게 눅진한 여운을 남긴다.
돼지의 왕 (다운로드)
제65회 칸영화제(2012) 감독주간 부문 초청
감독 연상호 목소리 출연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박희본, 김꽃비
중학교 동창 종석(양익준)과 경민(오정세)이 오랜만에 만난다. 경민은 회사가 부도난 상태고, 종석은 대필 작가로 근근이 먹고사는 신세다. 이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 이들의 학창 시절은 지금의 처지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힘 있는 자들의 발밑에서, 그들이 행하는 온갖 폭력에 노출되어있던 어린 종석과 경민. 이들의 앞에 구세주 같은 친구, 철(김혜나)이 나타난다. 앞뒤 안 가리고 제 심기를 건드리는 이에게 주먹부터 날리고 보는 철은 “악이 되고, 괴물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종석과 경민은 철을 왕처럼 따른다.
2016년 <부산행>으로 제69회 칸영화제에 초청된 연상호 감독. 그 이전에 <돼지의 왕>이 있었다. 애니메이션이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봤다간 당혹하기 십상이다. <돼지의 왕>은 비슷한 소재를 다룬 <파수꾼> <말죽거리 잔혹사> 등의 실사영화를 압도하는 잔혹함을 선사한다. “놀고먹어도 잘 사는 놈들은 애완견 같은 놈들이야. 그놈들 먹이가 되는 우리는 돼지들이고.”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대물림되는 가난을 피할 수 없고, 돼지로 비유되는 이들은 애완견으로 비유되는 이들의 먹이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냉혹하게 담아낸 <돼지의 왕>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장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쥐 (다운로드)
제62회 칸영화제(2009) 경쟁부문 초청, 심사위원상 수상
감독 박찬욱 출연 송강호, 김옥빈, 김해숙, 신하균
신부 상현(송강호)은 비밀리에 백신 개발 실험에 참여했다가 피를 잘못 수혈받고 뱀파이어가 된다. 피를 원하는 육체적 욕구와 살인을 원치 않는 신앙심의 충돌 사이에서 고민하던 상현. 어느 날 우연히 어릴 적 친구 강우(신하균)와 그의 아내 태주(김옥빈)을 만난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태주의 묘한 매력에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느낀다.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왔던 태주 역시 상현을 만나고 억눌렸던 욕망을 표출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점점 대담해지고, 태주는 상현에게 남편 강우를 죽이자고 제안한다.
일본식 가옥 안에 들어선 한복 집에서 트로트를 틀어놓고 보드카를 마시며 마작을 즐기는 인물들. 영화 속 한 장면의 묘사만으로도 <박쥐>의 매력이 충분히 설명된다. 모순되는 요소를 한 데 모아놓고 그를 계속해 충돌시키는 <박쥐>는 ‘기존의 장르를 뒤틀고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미지를 뛰어넘어 새로운 뱀파이어 캐릭터를 창조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압권. 그중에서도 김옥빈이 탄생시킨 태주는 독보적인 강렬함을 자랑한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