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파업전야>가 정식 개봉했다. <파업전야>는 창작집단 장산곶매가 1990년 제작한 영화로, 회사의 횡포에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다는 내용을 다뤘다. 당시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파업전야>는 검열을 피해 암암리에 상영됐고, 경찰이 들이닥쳐 상영을 막는 등 사건사고 속에서도 30만 명(비공식 기록)을 달성했다. 이런 영화가 30년 만에 정식으로 개봉한 건 영화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반면 <파업전야>와 달리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아직도 극장에서 만날 수 없는 영화가 있다. 원본 필름이 없기 때문이다. 기념비적인 성취에도 원본 유실로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만추>
천재 감독의 최고작
1960년대를 풍미한 이만희 감독. 그는 당시 영화계 시스템에 맞춰 한 해에 여러 영화를 제작하면서 현대적 영화 문법을 적용시켜 ‘천재 감독’이란 별명을 달았다. 특히 이만희는 폭넓은 연출력으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 같은 전쟁 영화, <휴일> 같은 멜로를 접목한 드라마, <쇠사슬을 끊어라> 같은 한국식 웨스턴 등 장르적으로 손색없는 작품을 선보여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더했다.
그런 이만희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빼어나기로 소문난, 그래서 가장 궁금한 작품은 바로 <만추>. <만추>는 특별 휴가를 나온 모범수 여성과 범죄자인 남성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다룬 멜로로, 이만희 감독의 페르소나인 문정숙과 신성일이 주연을 맡았다.<만추>는 영화사가들을 통해 “이만희 감독의 최고작”, “새로운 한국 영화의 지평을 여는 획기적인 수확”이라고 언급되지만, 안타깝게도 원본이 유실돼 ‘그림의 떡’ 같은 영화로 남아있다.
이만희 감독이 1966년에 공개한 <만추>는 감성적인 스토리와 연출로 당대 영화인들을 매료했다. 1972년 일본 사이토 고이치 감독이 <약속>으로, 1975년 김기영 감독이 <육체의 약속>으로 리메이크했다. 1981년, 김수용 감독이 동명의 제목을 사용해 리메이크했고, 이를 감명 깊게 본 김태용 감독이 2010년 다시 한 번 리메이크했다. 원본 유실은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이후 많은 영화인들을 통해 재해석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 이만희의 작품 중 “지나치게 우울하다”는 이유로 개봉 금지된 <휴일>, 이만희식 멜로의 정점이라 일컫는 <귀로>는 새로 복원돼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아리랑>
시대정신으로 살았던 나운규의 대표작
시대 상황과 예술을 결부해야 한다, 만다는 논쟁은 저마다 다른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가 태동한 1910년대는 일제강점기였다. 시대와 예술이 결코 별개의 것일 수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한국 영화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작품이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3.1 운동의 충격으로 미쳐버린 영진을 주인공으로 당시 한국인들이 겪은 시대상을 그려냈다.
나운규는 <아리랑>의 연출, 각본, 주연을 모두 도맡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정신질환에 걸린 영진을 빗대 한국 사회가 일제의 침략으로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망가졌음을 표명했다. 또 극중 다양한 상징 장면을 사용, 시대상과 당시 사회에 몸담은 이들의 마음을 투영했다. <아리랑>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당시 관객들이 영화의 결말에 나오는 아리랑을 다 같이 불렀다는 일화를 남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본 필름의 행방이 묘연해져 지금은 어떤 작품인지 당시 기록만 가지고 짐작할 뿐이다. 일본의 한 수집가가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한때 돌았으나 거짓으로 판명됐다.
<의리적 구토>
최초의 한국 영화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이 사실상 다큐멘터리에 가깝듯,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도 연극에 가깝다. <의리적 구토>는 계모 때문의 가문의 명예와 전재산이 날아갈 위기에 처한 송산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서 ‘구토’는 우리가 아는 그것이 아니라 복수를 뜻하는 일본식 단어이다. <의리적 구토>를 지칭하는 단어는 ‘연쇄극’. 일종의 키노드라마처럼 무대에서 하는 연극 중간에 따로 촬영해둔 영상을 상영하는 형식의 극이었다.
연쇄극이란 형식 때문에 <의리적 구토>를 최초의 한국 영화로 할 수 있는가, 이 점은 학계에서 여러 차례 논의돼었다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인 제작자, 연출자, 배우가 주도한 작품은 이 영상이 처음이기 때문에 최초의 한국 영화라는 영예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1966년부터 이 영화 개봉일 10월 27일이 ‘영화의 날’로 지정됐다. 원본 필름은 물론이고 원작 희곡 등도 남아있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국경>·<월하의 맹서>
한국 최초의 극영화
영화, 했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최초의 극 형식 영화는 무엇일까? 보통 1923년 개봉한 <월하의 맹서>를 최초의 극영화로 소개한다. 이 영화는 민중극단의 이월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최초의 극 형식 영화이자, 최초의 여성 배우 주연 영화로 기록됐다. 다만 제작비를 조선총독부에서 지원했다는 점은 한국에서 제작한 최초의 극영화라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반면 조희문 평론가는 1992년, 논문을 통해 <국경>이 최초의 극 영화라고 밝혔다. <국경>은 <의리적 구토>를 연출한 김도산과 신극좌 극단이 제작한 작품으로, 단 하루만 상영되고 금지처분을 받았다. <국경>이 1923년 1월 11일 단 하루라도 실제 상영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 영화가 최초의 극영화임은 틀림없다. 또한 <월하의 맹서>와 달리, <국경>은 한국 자본으로 제작한 영화라 의의에도 더 적합하다. 다만 <월하의 맹서>든, <국경>이든 원본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아 볼 수 없다는 건 똑같다.
반면 유실된 줄 알았던 필름을 발견해 복원한 영화들도 많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록을 가진 영화 세 편을 소개해본다.
<청춘의 십자로>
팔순잔치 해드려야 할 최고령 영화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최고령 영화는 1935년 영화 <청춘의 십자로>다. 안종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농촌에서 서울로 온 영복의 이야기를 다룬다. 원본 필름이 2008년에야 비로소 복원돼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첫 공개 당시 영상자료원에서 심혈을 기울인 걸로 유명한데, 무성 영화라 변사와 배경 음악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태용 감독의 연출 하에 조희봉이 변사를 맡고, 박천휘 작곡가, 변희석 음악감독, 유에스더 등이 참여한 상영회가 열렸다. 참고로 <청춘의 십자로> 복원 전 가장 오래된 영화는 1936년작 <미몽>이었다.
<이국정원>
가장 오래된 컬러 영화, 그리고 최초의 합작 영화
2013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을 마친 <이국정원>은 다양한 기록을 가진 영화다. <이국정원>은 1957년 제작된 영화로, 한국의 유명 작곡가가 홍콩의 미녀 가수와 사랑에 빠지는 멜로드라마다. 당시 한국연예주식회사와 홍콩 쇼브라더스가 합작한, 해방 이후 최초의 한국-홍콩 합작 영화라고 한다. 또한 현존하는 한국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컬러 영화다. 이 영화 발굴 직전까진 1961년 <성춘향>이 가장 오래된 컬러 영화였다. 원본 필름에도 사운드가 소실돼 공연을 결합시킨 ‘라이브 쇼’로 상영됐었다.
<오발탄>
한국형 리얼리즘 영화의 대명사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이범선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을 영화화했다. 명작 단편이 유현목 감독의 빼어난 연출력을 만나 한국 영화사에 손꼽히는 명작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이 명작 역시 2014년에야 온전한 판본이 공개됐다. 그 이전까진 영어 자막이 덧씌워진 해외 영화제 출품용 판본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 판본을 바탕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에 착수해 자막 제거, 필름 상태 복원, 입자감 복원 등 최대한 원본을 살려냈다. <오발탄>은 이후 블루레이, DVD로 출시됐고,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에 공개됐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