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꼭 이루고픈 소원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감독들은 소원이자, 필생의 숙원인 영화가 있었다. 마침내 그 작품을 완성시킨 감독도 있고, 끝내 만들지 못해 포기한 감독도 있다.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완성작부터 현재 제작 중인 것까지,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의 드림 프로젝트 7편을 모았다.


테리 길리엄의 <돈키호테>

1989~2018

테리 길리엄(왼쪽),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5월 23일 개봉한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테리 길리엄이 무려 30년 가까이 마음에 품었던 작품이다.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영화화하려고 했으나 홍수, 주연배우의 건강 악화,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는 등 여러 번 엎어졌다. 그럼에도 테리 길리엄 감독은 꿋꿋이 영화를 준비했고, 최초 구상한 것과는 다르지만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완성했다.

테리 길리엄은 원작 <돈키호테>처럼 중세 배경의 이야기를 그리려 했으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쓰면서 현대를 배경으로 바꿨다. 그렇게 돈키호테 단편 영화를 찍은 CF 감독이 돈키호테 배우를 만난다는 이야기로 변경했다. 장 로슈포르와 조니 뎁 콤비를 애초에 캐스팅했다가 존 허트와 잭 오코넬 콤비로, 그리고 마침내 조나단 프라이스와 아담 드라이버 콤비가 발탁됐다. <돈키호테를 죽은 사나이>는 과거와 달리 홍수도 나지 않았고, 주연배우가 아프지도 않았으며 투자도 원만하게 진행됐다. 테리 길리엄은 결국 자신의 숙원사업을 완성했다.


제임스 카메론의 <총몽>

2005~2019

제임스 카메론(왼쪽), <알리타: 배틀 엔젤>

흥행의 마법사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공공연하게 “<총몽>을 영화화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심지어는 <아바타>조차 “<총몽>을 만들기엔 현재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만든 영화였으니 그가 꿈꾼 비주얼이 무엇이었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제임스 카메론은 2000년대 초부터 <총몽> 원작자 키시로 유키로를 만나왔고, 영화 판권을 구매했다.

<알리타: 배틀 엔젤>의 버전. 왼쪽부터 원작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하나 <아바타>의 대성공은 시리즈화로 이어졌고, <총몽> 실사화는 영영 미뤄지는 듯했다. 그 찰나에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초고를 넘겨받았고, 그의 각색본을 본 제임스 카메론도 그를 감독으로 발탁해 실사화에 착수했다. 촬영을 끝내고도 1년 넘게 후반작업을 진행한 후 2019년 2월에 개봉했다.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많은 돈이 들어가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은 상황. 과연 제임스 카메론의 열정이 후속작까지 이어질지 지켜봐야겠다.


스탠리 큐브릭의 <나폴레옹>

1970년대~?

스탠리 큐브릭(왼쪽),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스탠리 큐브릭의 나폴레옹 사랑은 1970년대에 시작됐다. 1968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완성한 스탠리 큐브릭은 차기작으로 ‘나폴레옹 연대기’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영화를 준비할 때처럼) 나폴레옹에 관한 도서를 독파하고 당시 사회상을 담은 일러스트나 의상 디자인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제작사를 통해 나폴레옹 영화에 투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스탠리 큐브릭의 <나폴레옹>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당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대작 <워털루>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대규모 시대극은 위험 그 자체였고, (모르긴 몰라도) 투자자들에게 큐브릭의 완벽주의적 장기 작업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결국 스탠리 큐브릭은 안소니 버제스의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 영화화를 결정지었다. <시계태엽 오렌지> 이후 비슷한 시대 배경의 <배리 린든>을 제작하면서 그나마 나폴레옹에 대한 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배리 린든>

스탠리 큐브릭은 1999년 세상을 떠났다. 2009년 스탠리 큐브릭이 <나폴레옹>을 준비하면서 모은 자료, 시나리오, 사진 등을 모은 서적이 출간됐다. 제목은 <스탠리 큐브릭의 나폴레옹: 영원히 만들지 않은 걸작>이다. 2013년, 큐브릭의 친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그의 시나리오를 각색한 <나폴레옹> 미니시리즈 제작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조차 지금까지 제작되지 않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나폴레옹: 영원히 만들지 않은 걸작>(왼쪽), <나폴레옹>을 위한 장소 조사 필름.


기예르모 델 토로의 <광기의 산맥에서>

2006~?

기예르모 델 토로(왼쪽), <광기의 산맥에서> 컨셉아트

기예르모 델 토로는 괴수와 요정이 등장하는 판타지 영화에서 최고의 감각을 보여주는 감독이다. 예전부터 뒤틀린 판타지를 좋아했고, 그런 류의 작품을 만드는 그는 하워드 필립 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 <광기의 산맥에서>를 영화화하려고 했다. 시나리오 초고가 나온 건 2006년. <헬보이>를 마친 그는 워너브러더스와 함께 <광기의 산맥에서>를 제작하려 했지만, 이내 취소됐다. 훗날 델 토로는 제작사에서 “예산 문제와 더불어 러브 스토리나 해피엔딩이 아닌 영화라는 점에서 난색을 표했다”고 밝혔다. 다행히도, <광기의 산맥에서>가 취소된 델 토로 감독은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연출해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2010년, <광기의 산맥에서>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기예르모 델 토로 연출, 제임스 카메론 제작, 톰 크루즈 주연.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라인업이었다. 하지만 <광기의 산맥에서>를 R등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델 토로와 PG-13을 목표로 만들자는 유니버설의 의견 차로 영화는 점점 미뤄졌다. 설상가상, 기예르모 델 토로는 201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유사한 영화가 먼저 나왔다’고 느꼈고,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했다.

<프로메테우스>

<광기의 산맥에서> 컨셉아트. 두 작품 모두 고대 지적 생명체와 코스믹 호러 장르라 느낌이 비슷하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는 마니아 팬덤은 두터워도, 흥행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광기의 산맥에서>도 1억 달러 이상이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다행히도 델 토로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을 통해 건재한 연출력을 증명하며 <광기의 산맥에서> 제작에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9년 집필을 했거나, 집필 중인 작품에 <광기의 산맥에서>가 있다고 밝혔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메갈로폴리스>

1980년대~진행 중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왼쪽), <메갈로폴리스> 컨셉 아트

<대부> 시리즈라는 어마어마한 걸작을 남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요즘 그의 이름을 들으면 마땅히 생각나는 영화가 있는가? 사실 없다. 1997년 <레인메이커> 이후 연출한 <유스 위드아웃 유스>, <테트로>, <트윅스트>는 아예 한국에 개봉하지도 못했다. 현재 그는 포도 농장을 운영하며 자신의 와인 브랜드를 운영하는 경영자로 지내고 있다. 그런데 그가 올해, 여러 작업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예고했다. 특히 1980년대에 꿈꿨던 프로젝트 <메갈로폴리스> 제작은 이례적이었다.

<메갈로폴리스> 컨셉 아트

<메갈로폴리스>는 미래의 뉴욕을 배경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건축가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메갈로폴리스>를 1980년대에 집필했고, 2001년에 간단한 테스트 촬영을 실시했다. 괜찮은 결과를 얻었는지 영화 제작에 착수하려는 찰나, 9·11 테러 사건이 터졌다. 코폴라는 이런 대사건을 겪은 뉴욕시를 배경으로 영화 촬영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제작을 중단했다. 그리고 2019년 초에 <메갈로폴리스>의 제작 재개를 발표했다. “<메트로폴리스>와 소설 <파운틴헤드>의 교차점”이라는 코폴라의 설명은 영화가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게 한다. 코폴라는 주드 로를 주인공으로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지만 확정되지 않았다.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를 재편집해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컷>을 공개할 예정이다.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

2007~2019 (예정)

마틴 스콜세지(왼쪽), <아이리시맨>

<아이리시맨>을 수식할 말은 너무 많다. 마틴 스콜세지의 25번째 장편 영화,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 니로의 25년 만의 협업, 마틴 스콜세지와 알 파치노의 첫 협업,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네 번째 주연작, 조 페시의 9년 만의 복귀작 등등…. 이 모든 걸 성사시킨 건 2007년부터 이 영화를 꿈꿨던 마틴 스콜세지와 그를 믿고 약 1억 7000만 달러가량을 투자한 넷플릭스다.

찰스 브랜튼의 논픽션 <아이 허드 유 페인트 하우시스>(I Heard You Paint Houses)를 원작으로 한 <아이리시맨>은 갱스터 프랭크 시런이 자신의 범죄를 고백한 내용을 다룬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 등 노년 배우들이 과거와 현재를 모두 연기하고, 어리게 보이게 만드는 디에이징 기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비슷한 기법이다. 스콜세지의 비전이 방대했기 때문에 2007년 프로젝트를 발표한 이후에도 쉽게 <아이리시맨>은 제작에 착수하지 못했다. 그러다 STX 엔터테인먼트가 전 세계 배급권을, 넷플릭스가 독점 콘텐츠로 계약하면서 급물살을 타 2017년에 촬영을 시작했다. <아이리시맨>은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에 있으며 2019년 가을에 공개될 예정이다.


드니 빌뇌브의 <듄>

1980년대~2020 (예정)

드니 빌뇌브 감독(왼쪽), <듄> 백과사전 표지

과연 새로운 SF 거장이 탄생하게 될까? 드니 빌뇌브가 <듄> 연출을 맡는다고 발표했을 때, 팬덤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2016년 <컨택트>, 2017년 <블레이드 러너 2049>로 SF 걸작을 선보인 드니 빌뇌브는 <본드 25>, <클레오파트라> 연출 제안을 거절하고 <듄>을 선택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12살에 읽은 <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알콘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가 차기작에 대해 물어봤을 때 <듄>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가 준비한 <듄>의 아트워크

데이비드 린치의 <듄>

2000년에 방영된 <듄> 미니시리즈

<듄>은 프랭크 허버트의 대하 SF 소설로 사막 행성 아라키스의 특수 물질 멜랑지(스파이스)를 둘러싼 아트레이드 가문과 하코넨 가문, 우주 제국을 그린다. 과거 알렉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연출하려다 데이비드 린치가 이어받아 완성한 동명의 영화가 있다. 다만 데이비드 린치가 “내 영화가 아니다”라고 천명할 만큼 사건 사고가 많았고 원작과 상당히 달라 팬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렸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은 촬영 진행 중이며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조쉬 브롤린, 스텔란 스텔스가드, 데이브 바티스타, 제이슨 모모아, 오스카 아이작, 젠다야, 하비에르 바르뎀, 샬롯 램플링 등이 출연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