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5월 23∼29일) 국제경쟁 심사위원장을 맡아 한국을 찾았다. 지금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차례 방한했지만, 심사위원장 자격으로는 처음이다, 하지만 그 자리가 어색하지 않다. <카모메 식당>(2006) <안경>(2007) 등의 작품을 통해 일상의 평온과 자연의 순리를 전해준 소위 ‘슬로우 무비’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정작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 손사래 쳤지만 관객들은 그가 만든 공간과 삶에 여전히 큰 위로를 받는다. 이른 더위를 뚫고 숙소부터 인터뷰 장소까지 걸어왔다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에게 건네진 물은 항상 보던 생수병 대신 예쁜 잔에 담겨 있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무엇을 쓰고 먹을지 고민한 영화제 측의 세심함이 드러난 순간이다. 인간이 저지른 일로 자연이 고통받는 장면이 보기 힘겨워도 외면하지 말라는 당부와 영화의 주장을 무작정 따라가기보다는 영화를 보고 관객 스스로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길 바란다는 부탁을 담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이야기를 전한다.


- 어떻게 심사위원장을 맡게 되었나.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2017)를 수입한 엔케이컨텐츠 남기호 대표가 메일로 연락해 제안을 줬다. 좋은 분이 소개해 줘 좋은 마음으로 응하게 됐다.

-올해 경쟁 부문에 올라온 영화들의 경향은 어떤가.

=어제(5월 23일) 입국해 아직 몇 편밖에 보지 못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볼 예정이다. 환경영화제에 걸맞게 이 문제를 직시하는 작품이 많은 것 같다. 자연의 거대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있고, 몸 안에 플라스틱을 가득 삼키고 죽은 새처럼 무섭고 지켜보기 힘든 장면도 있었다. 인간이 저지른 일에 대해 후회와 죄책감을 들게 한 작품도 많았다. 이런 작품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외면하거나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제의 취지와 목적을 일깨우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심사할 예정인가.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영화예술 본연의 영상미를 잘 구현한 작품을 눈여겨보려 한다.

-현장 스태프의 처우 개선, 동물권의 보장 등 한국의 영화 현장은 많이 변하고 있다. 일본의 영화 현장도 변화의 모습이 있나.

=일본의 영화 현장은 오히려 더 열악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영화 예산도 많이 줄었다. 이런 경우 스태프의 급여가 줄어들거나 업무 시간이 늘어나는 것으로 직결된다. 하지만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다소 약한 것 같다. 한국영화는 정부 지원도 많다고 들었다. 그 점이 부럽다. 일본 저예산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8)는 300만엔으로 만들었는데, 무려 30억엔의 수익을 얻으며 크게 흥행했다. 이런 사례가 오히려 제작자들에게 저예산으로도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줘 제작환경에 더 악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영화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수년간 투쟁해왔고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일본은 어떤가.

=없다. 다들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 다음에 일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환경영화제가 꽤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주제를 가진 영화제가 있나.

=아마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제대로 된 영화제는 없는 것 같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방사능 문제 같은 심각한 환경문제가 일본 영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각하는데.

=나 또한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방사능 같은 것들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 영화 주제까지는 아니어도 이야기 속에 소재로 삼은 영화를 기획한 적이 있다. 다른 감독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지진, 방사능 이런 것을 주제로 삼는 것은 대부분 피하는 분위기다. 그런 주제로 영화를 만들면 정부에 반발하는 것처럼 보여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무주에 이어 이번 서울환경영화제에서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특별전을 개최한다 들었다. 한국인들이 특별히 당신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올 때마다 다들 나를 반기고 좋아해 줘서 놀라고 있다. 일본 사람들보다 더 좋아해 주는 것 같다. 왜 그런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만들 때 자국 관객뿐만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한국뿐만 아니라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에서도 내 영화를 좋아하고 반겨준다.

-예전 인터뷰에서 특정 주제나 목적을 두고 영화를 찍은 적은 없고, 좀 더 색다른 영화를 찍으려 노력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당신의 영화를 보고 위안을 찾는다고 말한다. 이런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카모메 식당> <안경> 이후 힐링 무비 같은 이미지가 내게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걸 깨기 위해 만든 영화가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다. 그런데 막상 개봉을 하고 보니 관객들은 이번에도 위안을 받았다고 하더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위안을 받았다면 그것도 좋은 거라 생각한다.

-영화 <안경>에서 타에코(코바야시 사토미)가 사쿠라(모타이 마사코)의 권유로 가져온 짐을 모두 버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와도 맥락이 유사한데. 시대를 앞서간 것 같다.

=미니멀 라이프를 동경한다(웃음). 그런데 내가 지금 만 7살 쌍둥이를 키우고 있다. 집안에 장난감을 비롯해 아이들과 관련한 물건들이 엄청나게 많다. 전부 버리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동안 만든 영화의 공간들이 정적이고, 여유가 있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도쿄는 늘 복잡하고 좁고 여유가 없다. 핀란드를 갔을 때 그곳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숲을 소중하게 여긴다든지, TV도 없는 섬에서 여름 내내 지낸다든지. 이런 것들이 영감을 준 것 같다.

-당신 영화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은데, 공간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영감을 얻어 각본을 쓰는 편인가 아니면 각본 집필을 먼저 끝내고 적합한 공간을 찾는 편인가.

=보통은 각본을 먼저 쓰고 거기에 맞는 로케 현장을 찾는데, <안경> 같은 경우는 요론섬에 가서 분위기를 먼저 확인하고 거기에 맞춰 각본을 완성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리락쿠마와 가오루 씨>의 각본을 썼다. 어느 인터뷰에서 리락쿠마가 뭔지도 모르지만 마음대로 만들어보라는 조건이 마음에 들어 응했다고 했는데, 작업하는 과정은 어땠나.

=원작에서는 가오루 씨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심지어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데 이 작품에서는 서로 대화하며 일상을 보낸다. 아무래도 어른들까지 재미있게 즐기려면 대사가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일상이라는 게 변화 없이 흘러가는 것 같아도 나중에 돌아보면 조금씩 변해있는 것처럼,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이 두 가지를 큰 테마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원래 작년 6월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엎어진 작품이 있다. 각본은 있으니 다시 제작사를 구해 진행하려 한다. 5월 말에 결정될 것 같고, 확정되면 10월쯤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어떤 영화인가.

=휴먼드라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주인공 아버지의 고독사를 다룬 이야기다.

-끝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들이 꼭 봤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특정 작품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복잡한 환경 문제를 설교하는 듯한 영화보다 관객 스스로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영화를 골라보셨으면 좋겠다.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