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34>는 6월 6일(목) 올레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긴 말이 필요할까요? 이 영화는 2018년 러시아에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제치고 그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것도 전쟁 영화와 사뭇 어울리지 않는 연말에 개봉해서요. 도대체 이 <T-34>라는 영화가 얼마나 재밌길래 ‘어벤져스’까지 이길 수 있었던 걸까요?
러시아군의 우수한 전차장 이부슈킨은 최전방에 투입된 첫날, 탱크 한 대로 독일 기갑부대를 막아서는 공을 세운다. 하지만 결국 붙잡혀 포로가 되고, 3년 동안의 탈출 시도로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그와 맞붙었던 독일 장교 예거는 이부슈킨을 협박해 독일군이 탈취한 러시아 탱크 T-34를 운용토록 한다. 이부슈킨은 예거의 협박에 못 이기는 척하며 T-34로 수용소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채워진 전쟁 판타지
2차 세계대전도 한때는 영웅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영화에서 장교나 장군, 혹은 길이 남을 활약을 남긴 병사들을 주인공으로 그렸었죠.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충격적인 오프닝 이후, 그리고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참전 용사 조명 이후 전쟁은 결코 판타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풍토가 잦아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T-34>가 보여주는 액션은 그동안 할리우드가 기피한 전쟁 액션의 로망을 선사합니다.
<T-34>는 전쟁을 묘사하는 독특한 시선을 고수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들은 현실적으로, 그러나 그것들이 만드는 액션은 독창적으로 표현하죠.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마을은 영화를 위해 세워졌습니다. 포탄이 날아다니고 탱크들이 진격하는 와중에 다 부서지는 공간임에도 영화는 관객들의 피부에 와닿는 아날로그 감성을 고집한 거죠. 그뿐만 아니라 영화의 제목을 차지한 T-34 탱크를 비롯해 복원 과정을 거친 실제 탱크들의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불릿 타임’? 이 영화는 ‘포탄 타임’!
그럼 독창적이란 말은 무엇일까요? <T-34>는 대규모 기갑전이 아닌 1 대 다수의 기갑전을 그리고 있는데, 그래서 포탄 한 발 한 발이 무척 중요한 전투가 계속됩니다. 1초의 결단이 타격 당하느냐, 타격하느냐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T-34>의 전투 장면은 포탄이 날아가는 궤도를 초고속으로 표현하는데요, 이 장면들은 <매트릭스>나 <원티드>의 ‘불릿 타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그 총알이 포탄이기 때문에 더 무지막지한 타격감과 긴장감을 자아내죠.
또 영화 속 세 차례의 액션 시퀀스를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그리는 영특함이 돋보입니다. 초반부 마을 전투는 탱크 부대원, 그리고 보병의 시선으로 그려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예측불가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요. 이후 독일 수용소를 탈출하려는 장면에선 훈련장을 관망할 수 있는 지휘관의 시선이 더해집니다. 영화 후반부 추격전에서는 그보다 더 넓은 시야를 조망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유려하게 빛나고요.
<T-34>는 이런 방식으로 비슷한 조건의 전투를 매번 다르게 그립니다. 단순히 환경을 바꾸고, 목적을 바꾸는 등 설정적인 측면만 교체하는 게 아닌, 시각적인 표현 방식을 확장시켜 관객들에게 색다른 쾌감을 안겨주는 거죠. 물론 그 와중에도 인물들의 빛나는 기지와 ‘포탄 타임’의 매력이 여전히 빛나는 전투 양상을 유지합니다.
내 나라 아닌 타국의 ‘국뽕’이 주는 재미
혹자는 “제목이나 내용이나, 러시아 국뽕 영화 아냐?” 말할 겁니다. 맞습니다. 러시아에서 ‘조국을 구한 전차’라고 불리는 T-34가 소재인 만큼 극중 소련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장면들도 있죠. 보통 영화에 국뽕이 많으면 단점이라고 하지만, <T-34>는 다릅니다. 사실 우리가 러시아식 국뽕에 취할 일도 없을뿐더러, 그 방식이 꽤 신선하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장면은 ‘백조의 호수’입니다. 극 중 T-34를 수리한 이부슈킨 탱크원들은 시험 기동을 해보는데요, 이때 러시의 대표 음악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백수의 호수’가 흘러나옵니다. 전설적인 러시아 음악가와 전시 당시 최고 소련 탱크 T-34가 함께 하는 이 장면은 누가 봐도 국뽕이지만, 한 발짝 멀찍이서 보는 관객 입장에선 클래식과 탱크의 이색적인 랑데부라는 재치 있는 볼거리가 일품입니다.
이 장면 외에도 러시아 자국 관객들을 의식한 장면들은 종종 나오지만, 자긍심 고취와 동시에 전쟁의 비애를 자극하기 때문에 과하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전쟁이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에게도 와닿을 수 있는 비극이니까요. 초반부 진격하는 탱크가 학교를 뭉개버리는 장면처럼요. <T-34> 또한 오락영화로서 추구하는 속도감을 놓지 않고요.
딱 좋은 러시아 흥행 배우들의 얼굴
러시아 영화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T-34>의 주역들은 얼굴이 익숙할 텐데요. 주인공 이부슈킨을 연기한 알렉산더 페트로브는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티켓파워가 강한 배우 중 한 명입니다. 2017년 <어트랙션> 아르툠, 2018년 <아이스> 사샤로 출연작이 줄곧 흥행하면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아냐 역의 이리나 스타르셴바움 역시 최근 화제를 모았던 <레토>의 나타샤 역으로 한국 관객들을 만난 적 있습니다. 두 사람은 <어트랙션> 이후 <T-34>로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췄는데요, 실제로도 연인 관계라서 남다른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니까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