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명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걸작 <이웃집 토토로>가 오랜만에 극장가에 걸렸다. 1988년 처음 공개된 <이웃집 토토로>가 안겨주는 노스탤지어는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빛난다. 재개봉을 기념하며 <이웃집 토토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한다.
1980년대 초 <이웃집 토토로>의 초기 기획안을 거절당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1987년 다시 한번 제작에 도전했다. 투자자들과 배급업자들은 현대 일본 배경에 두 소녀와 몬스터 사이의 우정을 그리는 이야기에 관객이 들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미야자키의 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천공의 성 라퓨타>(1986)가 시대/공간적 배경이 명확하지 않았던 반면, 1950년대 일본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이웃집 토토로>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여성 캐릭터도 없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훗날 지브리 스튜디오의 프로듀서가 활약하는) 스즈키 토시오는 제작위원 자격으로 흥행 실패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웃집 토토로>와 스튜디오의 또 다른 작품 <반딧불의 묘>(1988)를 동시개봉 시켰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개봉된 이 두 애니메이션을 두고 한 만화 평론가는 전쟁통의 잔인한 현실을 담은 <반딧불의 묘>가 <이웃집 토토로>의 봄날의 꿈결같은 이야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배급업자들의 우려대로 <이웃집 토토로>는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다. 지브리 스튜디오 사상 손에 꼽힐 만할 정도로 저조한 오프닝 성적이었다고. TV 방영되고 난 후 폭넓은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발음부터 귀여운 이름 '토토로'는 메이가 처음 불러준 것이다. 아직 발음이 서툰 네 살짜리 아이처럼, 잠에서 깨어난 메이는 아까 본 '트롤'을 토토로라 말한다. 사츠키는 그걸 바로 알아듣고 "그림책에 나오는 트롤 말이야?" 되묻는다. 토토로의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모르는 셈. 엄마, 사츠키, 메이가 한 이불을 덮고 트롤과 염소가 그려진 동화책을 읽는 모습이 엔딩 크레딧에서 나온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본래 7살 짜리 여자 아이 한 명만 <이웃집 토토로>의 주인공으로 설정하려 했다. 아마 그대로 진행됐다면, 토토로와의 신비로운 추억만큼이나 중요한 자매의 절절한 우애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10살의 사츠키보다는 어리고 4살의 메이보다는 더 커보이는 아이가 토토로 옆에 있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는데, 그게 아마 <이웃집 토토로>의 초기 콘셉트 이미지였던 것 같다. 옷차림이나 체격은 사츠키인데, 양갈래로 묶은 헤어 스타일은 메이 같다.
한 명에서 파생된 자매 캐릭터이기 때문일까. 둘의 이름을 뜯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츠키는 일본어에서 5월(皐月/さつき)과, 메이는 5월의 영어 May와 발음이 같다. 영화 속 계절도 신록이 뚜렷하고, 반팔 옷을 입고 다니는 5월처럼 보인다. 한편, 일본어에서 메이와 비슷한 발음의 단어는 '새싹'(芽), '밝은'(明)이 있고, 중국어에서는 '자두'(梅)와 '여동생'(妹)이 메이와 유사하게 들린다. 모두 메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낱말이다.
<이웃집 토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살짝 담겨져 있다. 바로 어머니의 존재다. 미야자키가 어릴 적 그의 어머니는 9년간 척추결핵을 앓았고, 오랜 세월 병원 신세를 지어야 만했다. 영화는 사츠키와 메이가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 근처로 이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매의 어머니 또한 오랫동안 결핵을 앓는 걸로 언급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소녀가 아닌 소년이 주인공이었다면 상당히 괴로웠을 거라고 밝힌 바 있다.
토토로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이웃집 토토로>가 뒤늦게 인기몰이 하고 지브리가 처음 내놓은 작품인 다카하타 이사오의 <추억은 방울방울>(1991)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브리 로고가 처음 쓰였다.
<이웃집 토토로>에는 사츠키/메이만이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사 온 날 다락방에서 마주하는 검댕이(마쿠로쿠로스케)들이 그 첫 예다. 할머니는 손발에 검댕을 묻힌 자매를 보며 "어릴 때 나도 봤는데 너희도 본 게로구나" 한다. 이 검댕이들은 14년 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에도 등장해, 난항에 빠진 치히로를 도와준다.
이토록 맑디맑은 <이웃집 토토로>도 미국에선 몇몇 장면이 삭제될 뻔했다. 사츠키와 메이, 그리고 아버지가 함께 목욕 하는 신이다. 성별이 다른 가족이 한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문화가 북미 대중에겐 낯설었기 때문일 터. 집기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자, 아버지는 하하하하하 웃으면 무서움이 달아날 거라고 한다. 세 사람이 깔깔대는 사이에 바람은 멎는다. 처음 이사 와서 다다미 방을 뛰어다니는 신 또한 삭제하길 원했다. 물론, 지브리는 편집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웃집 토토로>의 미국 더빙판은 두 번 나왔다. 1993년 20세기폭스 버전과 2005년 디즈니 버전이다. 미야자키는 1993년 더빙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20세기폭스의 판권이 끝나면서 디즈니는 다코타/엘르 패닝 자매에게 사츠키와 메이의 목소리를 맡겼다. 더빙 당시 다코타는 11살, 엘르는 7살이었다.
몇몇 팬들은 <이웃집 토토로>와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의 유사점을 지적했다. 메이가 하얗고 작은 토토로를 따라가다가 거대 토토로를 만나게 되는 과정은, 앨리스가 하얀 토끼를 따라서 원더랜드에 도착하는 걸 떠올리게 한다. <이웃집 토토로>의 또 다른 마스코트인 고양이 버스 역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큰 눈과 활짝 짓는 미소가 큼직큼직한 체셔 고양이와 꽤나 닮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고양이 버스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워낙 영향력이 큰 작품이기 때문일까. <이웃집 토토로>를 둘러싼 괴소문도 있었다. 1963년 5월 일본 사야마 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모티프가 됐다는 것이다. <이웃집 토토로>의 배경인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인데, 이 도시는 사야마와 바로 인접한 곳이다. 루머는, 사츠키가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 덕분에 실종된 메이를 찾고, 어머니가 있는 병원까지 가서 조용히 옥수수를 놓고 오는 일련의 과정이, 죽은 동생을 위해 죽음을 택한 언니의 이야기라는 것. 꽤나 쏠쏠하게 들리는 음모론이지만, 지브리는 2007년 이 루머를 전면 부인 했다. 자세히 보면 메이가 신은 샌들과 연못에 빠진 샌들은 다르다.
<이웃집 토토로>의 배경이 되는 사야마 구릉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실제 살았던 곳이다. 도쿄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도코로자와에 위치한 이 곳에서 미야자키는 산책하며 영화의 배경을 만드는 데에 지대한 영감을 얻었다. "만약 도코로자와에 살지 않았다면 <이웃집 토토로>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 현재 이 일대는 '토토로 숲'으로 불리며 많은 팬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픽사의 <토이스토리 3>(2010)에 나오는 수많은 인형들 가운데 토토로도 있다. 꽤 여러 장면 등장한다. 그밖에 수많은 애니메이션들이 <이웃집 토토로>의 특정 장면을 패러디 하거나, 영감을 얻어 캐릭터를 만들었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