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배우들의 앙상블이 빛나는 영화다.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내느라 주요 캐릭터만 여덟인 이 작품을 본 후 관객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기생충>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대부분 같은 배우를 떠올렸을 거라 믿는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부터 <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의 작품엔 늘 신스틸러 캐릭터가 있었고, 그들은 주연만큼 강렬한 활약을 선보여왔다. 기상천외한 개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봉준호 월드의 신스틸러들을 한자리에 모아봤다. 봉준호 감독이 이들을 어떻게 발굴해냈는지에 대한 간단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덧붙인다.


김뢰하 <플란다스의 개> 부랑자 최 모 씨 역

<플란다스의 개>에서 김뢰하가 연기한 부랑자 최 모 씨는 옥상에서 개를 잡아먹으려 한다. 그 순간을 포착한 현남(배두나)은 그에게서 극적으로 개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 속 부랑자 최 모 씨의 존재감이 압권이다. 아파트의 옥탑과 지하실에 아무도 모르는 저만의 공간을 꾸려놓고 살았던 인물. 예상치 못한 순간 나타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을 만들며 극의 분위기를 뒤틀어버리는 최 모 씨의 아우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오랜 시간 경력을 쌓은 김뢰하의 연기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알고 보면 김뢰하는 봉준호 감독과 가장 오랜 인연을 자랑하는 배우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 단편 <지리멸렬>, 곧이어 작업한 단편 <백색인>에 모두 출연했다.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 된 연극 <날 보러 와요>를 봉준호 감독에게 소개한 것도 김뢰하. <기생충>의 시작 단계를 함께한 배우이기도 하다. 김뢰하에게 “연극 연출을 해 볼 생각이 없냐”며 제안을 받은 봉준호 감독. 연극 각본을 구상하던 봉준호 감독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집과 박 사장(이선균)의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고.


박노식 <살인의 추억> 백광호 역

‘백광호’라는 본인의 배역명보단 “향숙이 예뻤다”란 명대사에서 따온 ‘향숙이’란 배역명으로 더 유명해진 배우. 박노식은 <살인의 추억>에서 살인사건의 첫 번째 용의자로 지목된 백광호를 연기했다. 어눌한 말투와 불안정한 시선으로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극의 긴장감을 더한 그는 <살인의 추억> 이후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알고 보면 백광호는 영화 촬영이 시작되고 한 달이 흐른 후에도 적당한 배우를 찾지 못해 캐스팅에 난관을 겪던 캐릭터였다. 박노식은 동대문시장에서 구입한 80년대 체육복과 고무신을 신고 오디션에 참가했고, 그 ‘디테일’ 덕분에 백광호 역에 캐스팅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속 박노식의 활약은 <괴물>에서도 이어진다. 현서(고아성)를 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뭉친 희봉(변희봉) 가족의 지갑을 탈탈 털어내는 흥신소 직원을 연기했다.


윤제문 <괴물> 노숙자 역

윤제문은 횟수로만 따지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다. 봉준호 감독이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건 그가 공연한 연극 <청춘예찬>을 보고서부터.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 이후 작업한 단편 <싱크&라이즈>의 주인공으로 그를 캐스팅했다. 한강 매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을 담은 단편 <싱크&라이즈>는 영화 <괴물>의 초석이 되었던 영화. 그 인연으로 윤제문 역시 <괴물>에 출연할 수 있었다. <괴물>에서 그는 남일(박해일)이 괴물과 벌이는 사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노숙자를 연기했다. 남일을 찰지게 때리는(!) 모습에서부터, 화염병을 제조하는 모습, 무심하게 코를 후비는 모습까지. 짧은 분량임에도 독보적 개성을 자랑한 윤제문은 <괴물>을 통해 충무로에 더 확연히 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송새벽 <마더> 세팍타크로 형사 역

<마더> 속 송새벽의 배역명은 ‘세팍타크로 형사’다. 세팍타크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구기 스포츠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더>에서 세팍타크로 형사가 세팍타크로를 사용하는 건 단순히 도준(원빈)을 위협하기 위해서다. 세팍타크로 운운하던 형사는 도준의 입에 물린 사과를 발로 쳐낸 후 한 템포 느린 말투(송새벽 특유의!)로 “사과- 상당히- 많거든-?”이라 말하며 도준을 위협한다. 어수룩한 태도로 폭력 예고를 날리는 그의 모습은 어처구니없는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선사한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요즘 애들은 <CSI> 이런 거 봐서 되게 샤프해요”란 대사를 날리며 극의 흐름을 코미디로 비틀던 송새벽 역시 연극 무대 위에서 활약하다 봉준호 감독의 눈에 든 케이스다. 봉준호 감독은 그가 공연한 연극 <해무>를 보고 단번에 그의 캐스팅을 결심했다.


최우식 <옥자> 김군 역

<기생충>에서 온 세상 짐을 다 짊어진 얼굴로 등장해 작품의 여운을 배로 늘린 최우식이 봉준호 월드에 입성한 건 <옥자>를 통해서다. <옥자>에서 그는 “1종 면허는 있지만 4대 보험은 없는” 미란도 코퍼레이션 한국지사의 트럭 운전사 김군을 연기했다. 회사 직원 문도(윤제문)의 시시껄렁한 질문에 매번 시니컬한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세상만사 무심한 인물인 줄 알았으나…!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상기된 얼굴로 “미란도 회사는 X됐다(They Fu** Not me They Fu**)”란 대사를 날리던 그의 모습에 빵 터진 관객이 필자만은 아닐 터다. <옥자>를 함께하며 최우식의 얼굴에서 “젊은 세대의 얼굴”을 발견한 봉준호 감독은 최우식을 <기생충>의 중심, 기우로 캐스팅했다.


※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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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생충> 문광 역

<기생충>의 명장면 중 하나는 인터폰 신이다. "지하실에 두고 간 물건을 찾으러 왔다"며 문을 열어달라 청하는 문광은 부자연스럽게 눈을 끔뻑이는 모습만으로도 온 관객을 압도한다. 둥글둥글한 인상, 원만한 첫인상을 지녔지만 알고 보면 제 밥그릇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날 선 예민함을 내내 지니고 사는 인물. 문광은 자신이 누구보다 남궁현자 선생님이 지은 대저택의 '예술적 터치'를 잘 알고 있다 자부하고, 때때로 안주인 놀이를 즐기며 대저택의 또 다른 주인 같은 인상을 풍긴다. 이정은은 짧은 등장 장면마다 캐릭터의 특성을 하나씩 내비치며 문광을 관객 앞에 입체적으로 펼쳐내는 데 성공한다. 등장만으로도 극을 뒤틀어버리는 힘을 지닌 데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박명훈 <기생충> 근세 역

도대체 그의 공식 스틸컷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는 걸까. 근세의 등장은 관객에게 강력한 펀치 한 방을 날린 듯한 얼얼함을 선사한다. 대만 카스텔라 사업에 실패하고 지하실 생활에 만족하며 본능적인 욕구만 채우며 살아가는 근세. 봉준호 감독은 박명훈만이 형성할 수 있는 기이한 분위기를 이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박명훈이 출연한 영화 <재꽃> 오디오 코멘터리에서 “박명훈 배우는 세계 최고의 술 취한 연기를 하시는 분이다. 외모 자체로 뿜어내는 독특한 뉘앙스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