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대세지만, 세계관 결합은 크로스오버로 시작됐다. 크로스오버는 다른 세계관의 캐릭터들이 한 작품에서 만나는 형식으로, 시네마틱 유니버스보다 이벤트성이 강하다. 영화는 물론이고, 만화, 드라마에서도 만날 수 있는 크로스오버. 그동안 공개된 크로스오버 중 독특했던 것들을 소개해본다.
총잡이, 칼잡이를 만나다
<장고/조로>는 서부극 영화의 주인공 장고와 의적 조로가 조우한 코믹스 시리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맷 바그너와 공동 집필한 작품이라 1966년 원작 영화 <장고>의 장고가 아닌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출한 2012년 <장고:분노의 추적자> 장고가 등장한다. <장고:분노의 추적자> 몇 년 후, 장고가 ‘조로’ 돈 디에고 데 라 베가의 경호원으로 고용되면서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노예 문제를 자각한다는 스토리다. 코믹스는 2015년에 7개의 이슈로 완결됐는데, 타란티노가 본인 마음에 쏙 들었는지 현재 시나리오 집필 중이라고 밝혔다. 그가 직접 연출할지, 제이미 폭스가 장고로 돌아올지 지금까지 결정된 건 하나도 없지만, 팬들은 제이미 폭스의 장고와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조로(사실 그도 2대 조로지만)가 만나는 거 아니냐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무서운 녀석들이 웃긴 녀석들을 만나면?
영화에서 크로스오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건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투명인간 등등이 몸담은 유니버설 몬스터즈 시리즈였다. 이들은 1943년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만나다>를 기점으로 종종 한 영화에서 만나곤 했는데, 그중 가장 참신한 발상은 <애보트와 코스텔로 2>(원제는 <애보트와 코스텔로, 프랑켄슈타인을 만나다>)다. 이 영화는 코믹 듀오 애보트와 코스텔로(“1루수가 누구야?”로 유명하다)가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늑대 인간이 있는 저택에 머물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았다. 애보트와 코스텔로, 유니버설 몬스터즈에 대한 대중들의 인기가 높았으니 코미디와 호러라는 독특한 크로스오버를 상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애보트와 코스텔로는 <애보트와 코스텔로 닥터 지킬과 미스터 하이드 만나다> 등 몇몇 크로스오버 영화를 더 찍었다.
인간 주제에 박쥐 행세 vs. 거북이 주제에 인간 흉내
DC 코믹스의 배트맨은 크로스오버 부자다. 가장 최근에 진행한 크로스오버 중 <닌자 거북이>와의 협동도 있다. 제목은 대결 구도처럼 지어졌지만, 여느 크로스오버가 그렇듯 사건이 전개되면서 서로 협력하는 구도가 나온다. 2018년에 코믹스로 완결된 후 2019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닌자 거북이의 대표 빌런 슈레더가 같은 닌자 계열인 라즈 알 굴과 합심하며 빌런 사이의 끈끈한 유대(?)가 형성되기도. 팬들 사이에선 닌자 거북이들에게 피자를 사주는 배트맨의 모습이 새삼 화제였다. 애니메이션은 정식 서비스되지 않았지만, 코믹스는 2019년 내 정식 출간을 발표했으니 궁금하다면 정발본을 기다려보자.
모든 쉐프는 요리 두건을 썼으며 그 중 치킨을 튀겨주는 자도 있었다
DC는 독특한 크로스오버가 많다. ‘샌더스 대령 멀티버스’도 어떤 의미에선 충격적이다. KFC의 창립자이자 마스코트 샌더스 대령은 DC 멀티버스 곳곳에 있다. 현실에서 샌더스 대령이 갖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어느 멀티버스에나 그가 있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그래도 닭이 된 ‘커널’(지구 51, C가 아닌 K로 시작하는 Kolonel)이나 악당 같은 ‘비자로 대령’(지구 29)은 실존 인물 캐릭터를 이렇게 만들어도 괜찮을까 싶다. 어쨌든 세상 어디에나 있는 샌더스 대령은 심지어 그린랜턴 군단처럼 ‘대령 군단’을 이루기도 한다. 실제로 그린랜턴, 플래시 등과 조우하는 이슈도 있으니 ‘쉐프히어로’라 불러도 좋겠다.
어디에나 있는 그의 전기톱
영화에서 태어난 캐릭터 중 애쉬만큼 바쁜 캐릭터도 없을 거다. 1981년 샘 레이미가 연출한 <이블 데드>의 주인공 애쉬는 영화 이상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인간이면서 언데드 군단에 대항하는 의지, 그 와중에도 쿨하면서 유쾌한 성격은 오리지널 시리즈(<이블 데드>, <이블 데드 2>, <이블 데드 3 - 암흑의 군단>) 완결 후에도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애쉬 역을 연기한 브루스 캠벨 역시 애쉬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표현했다. 그 결과 코믹스, 게임, TV 드라마 가릴 것 없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호러 영화의 패왕 제이슨과 프레디에 맞서고(코믹스 <프레디 vs. 제이슨 vs. 애쉬>), 뱀피렐라와 함께 썸인 듯 적인 듯 기묘한 관계를 맺었다(코믹스 <뱀피렐라/아미 오브 다크니스>). 가장 인상적인 크로스오버라면 <애쉬 세이브 오바마>. 2008년 발간된 이 크로스오버 코믹스는 제목처럼 애쉬가 어둠의 군단의 공격으로부터 버락 오바마를 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실존 인물을 썼는데 법적 문제는 없냐고? 그럴 리가. <애쉬 세이브 오바마>는 코믹스 팬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 전 인지도 상승을 위해 직접 진행한 이벤트였다. B급 영화 팬이라면 제일 반길 만한 크로스오버는 <아미 오브 다크니스 vs. 리애니메이터>. <이블 데드>와 <좀비오>(원제가 리애니메이터)의 만남이니 그 자체로 가슴 벅찬 팬도 있을 것이다.
"AND HIS NAME IS SCOOBY DOO!!!"
영미권 문화에선 결코 빠지지 않는 <스쿠비 두>. 1969년 첫 방송을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유쾌하게 그린 인기작답게 여러 작품과 크로스오버를 했지만 눈에 띄는 건 2014년 제작한 <스쿠비 두 레슬매니아 미스터리>. 레슬매니아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WWE와의 공식 크로스오버 작품이다. 존 시나, 트리플 H, AJ 리, 산티노 마렐라, 케인, 더 미즈 등 직접 목소리를 연기한 레슬러는 물론이고 빅쇼, 지미 하트, 서전트 슬로터, 신 카라 등 간단하게 모습을 보여주는 레슬러도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레슬러 총출동인 셈. 인기 많은 선수에게 치중한다는 평가도 있으나 좀처럼 볼 수 없는 스포츠 스타와 코미디 애니메이션의 크로스오버에 팬들도 만족감을 표했다.
혼자서는 배꼽을 구할 수 없다
크로스오버의 대가 DC코믹스라지만 이건 예상 못 했다. <DC 슈퍼 히어로즈 vs. 이글 테이론>은 DC 코믹스와 일본 애니메이션 <비밀결사 매발톱단>의 크로스오버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가 개봉하는 2017년에 공개됐는데, 포스터부터 범상치 않다. <비밀결사 매발톱단>은 특유의 정신 나간 개그 센스로 인기를 모은 초저예산 애니메이션이다. 그런 작품답게 DC 히어로와 매의 발톱단 멤버의 작화 퀄리티부터 웃음을 자아내고, 극장판에서 자주 써먹는 ‘예산 빵꾸’ 유머로 망가진 히어로를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시대를 풍미했던 검객들의 진검 승부
일본에서도 크로스오버가 진작 있었다? 그 주인공은 장님 사무라이 자토이치와 외팔이 검객 방강. 1962년부터 자토이치를 연기한 카츠 신타로와 1967년부터 방강을 연기한 왕우는 1971년 <자토이치 - 부셔라! 중국검>에서 만났다. 당시 한국은 일본 문화 수입을 금지했던 시절이라, 두 스타가 만난 작품치고는 인지도가 낮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동양 무협 영화 중에서도 단연 빼어난 크로스오버 영화라고 지금까지도 찬사를 받고 있다. 재밌게도 일본 사무라이와 홍콩 검객이 붙기 때문에 개봉 국가에 따라 최종 승자가 달랐다고 한다. 일본에선 자토이치가, 홍콩에선 방강이 이겼다고.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