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언급해 영화계의 근로 환경이 이목이 집중됐다. 표준근로계약은 임금 수준과 근로시간 등을 보장하는 문서로, 야근처럼 근로 시간을 초과한 업무나 임금 미지불로 인한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또한 4대 보험이 포함돼 사고도 보상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상업 영화의 본고장, 할리우드는 어떻게 근무하고 얼마나 받을까.
할리우드의 노동 환경을 보려면 할리우드의 기본 토대를 알아야 한다. 할리우드는 영화사 초창기부터 영화를 ‘상품’으로 여기고 가장 먼저 산업화한 곳이다. 1920년대부터 이른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산업 시스템을 일찌감치 마련했다. ‘할리우드 시스템’은 시대마다 변화했지만, 핵심은 어느 시대건 동일하다. 하나의 스튜디오(제작사)에서 각 분야의 전문 스태프를 고용해 영화를 제작하고 스튜디오 소유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 지금은 제작사가 배급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됐지만, 그 이외의 제작 시스템은 여전히 골자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할리우드는 예전부터 제작사, 제작자의 입김이 강하다. 모 영화에서 촬영본을 반도 못 썼다더라, 제작자가 감독이나 배우를 짤랐다더라 같은 비하인드스토리는 이런 점에서 연유된다. 그래서 할리우드 스태프들은 1920년대부터 분야별 조합이 설립하기 시작했고, 조합의 힘으로 지금과 같이 스태프와 제작사 간의 균형을 맞춰왔다. 감독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 시스템은 감독의 비전보다 흥행성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대중의 통념과 달리 할리우드 감독들 중에도 최종 결정권을 갖진 사람은 몇 없다. 흥행에 성공한 감독들이 차기작에 제작자로도 참여하는 이유가 보통 최종 결정권 확보를 위한 것이다.
할리우드는 북미 지역을 넘어 전 세계를 겨냥한 작품을 제작한다. 이런 영화들,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는 보통 1억 달러 이상, 즉 최소 1100억 원을 투자한 영화를 의미한다. (블록버스터는 1억 달러 수익을 남긴 작품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앞으로 소개할 연봉은 근 80여 년간 자리 잡은 할리우드의 제작, 수익 구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염두에 두자.
주연 배우
배우의 출연료는 그간 촬영한 영화의 흥행 성적, 출연하는 작품 규모 등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격차가 큰 편이다. 뉴스로 나올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이 버는 톱스타와 비교하면 더 그렇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무려 5천만 달러(약 593억여 원)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것>에 나오는 주연 배우들은 평균 7만 달러(약 9천만 원) 정도를 받았다. 경력이 짧은 어린 배우들이라고는 하나 배우 조합 ‘SAG-AFTRA’의 규정을 기반으로 책정됐으니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보면 되겠다.
제작자
‘~~ 제작진’ ‘~~ 사단’은 대개 제작자 중심으로 스태프가 비슷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물론 그보다 더 사소한 공통점에도 남용되지만). 제작자는 한정된 예산을 운용하는 업무를 맡고 영화 전반에 관여한다. 예를 들어 특정 장면을 찍지 말라고 예산을 빼거나 더 잘 찍으라고 예산을 더 줄 수 있다. 그래서 감독보다 제작자의 이름을 미는 경우도 잦다. 보통 스튜디오의 작품을 처음 맡게 된 제작자는 25만 달러(약 2억 9000만 원)를 받는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제작자는 평균 75만 달러(약 8억 9천만 원)를 받고, 이름을 올린 작품이 흥행한다면 최고 200만 달러(23억 7천만 원)도 가능하다. 2017년 최대 흥행작 중 하나인 <미녀와 야수>의 데이비드 호버먼과 토드 리버만이 2백만 달러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현재 마블 영화의 선봉장으로 유명해진 케빈 파이기는 한 해에 2500만 달러(약 296억 원)를 벌고 있다고.
감독
감독은 작품의 수장이란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그렇게 많이 벌지 않는다. 할리우드는 감독 조합이 있어서 칼같이 감독으로서의 경력만 인정해준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를 연출한 사이먼 킨버그는 제작자나 각본가로 오해 활동했으나, 이번이 연출 데뷔작이기 때문에 새내기 감독들처럼 50만 달러(약 6억 원)를 받았다고(위에 언급했듯 베테랑 제작자는 평균 75만 달러). 또 작품 규모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베테랑 감독 리들리 스콧은 1억 달러 규모의 <에일리언: 커버넌트>에서 1천만 (약 118억 원) 받았지만, 그보다 규모가 절반가량인 <올 더 머니>에서 3백만 달러(약 35억 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현재까지 최고 계약금을 달성한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 <덩케르크> 연출로 2천만 달러(약 237억 원)에 흥행에 따른 러닝개런티도 따로 받았다.
붐 오퍼레이터
흔히 ’붐맨’이라 불리는 붐 오퍼레이터는 유성 영화가 도래한 이후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ADR이 보편적인 할리우드라도 현장의 사운드가 있어야 사운드 작업을 할 수 있으니 마찬가지다. 현장에만 투입되는 스태프라서 한 해에 많은 작품을 소화할 수 있으며 작품 규모에 따라 시간 단위로 계약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시간당 50달러가량(약 6만 원)을 받으며 활동 경력이 길수록 시간 수당이 올라간다. 40년 경력의 붐 오퍼레이터라면 한 해 12만 달러(약 1억 4천만 원)를 벌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조합의 규정에 따른 것이다.
키그립
키그립은 그립팀의 수장이다. 그립팀은 크레인, 돌리 등 촬영 중 쓰이는 카메라 장비를 관리, 설치, 운용하는 팀이다. 키그립은 시간당 최소 26달러(약 3만 원)를 받는다. 저예산 영화 현장이 아니면 평균 36달러가량(약 4만 원)을 받을 수 있고, 1년 중 40주를 일하면 5만 9천 달러(약 7천만 원)를 벌 수 있다. 붐 오퍼레이터와 마찬가지로 현장 경력이 길면 그에 맞게 대우해주기 때문에 해마다 13만 달러(약 1억 5천만 원)는 가뿐히 벌 수 있다.
카메라 오퍼레이터
촬영감독이 아니다. 보통 촬영감독은 DP(Director of Photography)나 시네마토그래퍼(Cinematographer)라고 부른다. 카메라 오퍼레이터는 붐 오퍼레이터처럼 카메라를 조정하는 사람이다. 즉 촬영감독이 지정한 대로 카메라를 위치시키는 등 사전 준비와 카메라의 움직임을 담당한다. 키그립과 마찬가지로 시간당 최소 26달러(약 3만 원)를 보장받는다. 한 해에 평균 6만 달러에서 9만 달러 정도(약 7천만 원에서 1억 원)를 벌 수 있고, 베테랑이라면 최대 15만 달러(약 1억 8천만 원)도 가능하다.
시나리오 작가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집필 방법은 다양하다. 작가 한 명이 집필하는 시나리오보다 공동 집필 시나리오도 많은 편이고, ‘라이터스 룸‘이라고 작가를 단체로 고용하는 블록버스터 영화 시나리오 방식도 있다. 미국 작가 조합에 따르면 창작 시나리오면 최소 7만 2600 달러(약 9천만 원)를, 원작이 있는 각색물은 6만 3500만 달러(약 7천 5백만 원)를 보장해준다. 좀 더 상업적인 영화의 시나리오를 맡게 된다면 편당 85만 달러(약 10억 원) 정도까지 급상승한다. 여기에 <소셜 네트워크>와 <머니볼>, 드라마 <뉴스룸>을 집필한 아론 소킨처럼 히트작을 여러 번 쓴 작가라면 300만 달러(약 36억 원)까지 가능하다. 인정받은 시나리오 작가들은 제작을 앞둔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고치는 ‘시나리오 닥터’ 작업도 겸하는데, 보통 50만 달러(약 6억 원)를 받는다고 한다.
스튜디오 치프
그럼 한 회사를 책임지는 제작사의 수장은 얼마나 받을까. 대기업을 모기업을 둔 독립영화 계열 회사의 회장은 약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우리가 익히 들어본 제작사의 회장이라면 약 500만 달러(약 60억 원)가량을 받는다. 이것도 기본급만 측정한 것이다. 회사에서 주는 지분이나 보너스 등을 포함하면 1500만 달러(약 180억 원)까지 올라가니 영화 한두 편 망했다고 우리가 걱정해줄 필요는 없다. 최근 월트 디즈니의 손녀 애비게일 디즈니가 밝힌 바에 따르면 현 디즈니 회장 밥 아이거는 2018년 연봉으로 6560만 달러(약 778억 원)를 받았다고 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