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살겠다, 갈아보자
때는 16세기 초 일본, 크고 작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전국시대를 살고 있는 농부들은 먹고 살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토지세와 강제 노동, 전쟁과 가뭄, 거기다 이젠 도적떼의 노략질까지 버텨내야 하는 농민들은 살다 살다 도저히 안되겠어 대책 회의를 연다.
마을 사람들은 가을에 추수철을 맞아 쳐들어오겠다는 도적떼들을 두고 사무라이를 고용해 맞서 싸우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사무라이를 고용할 것인가? 마을은 가난하다. 마을의 최고령 어른이 낸 해결책은 배고픈 사무라이를 섭외할 것. 과연 가능할까? 이 영화는 바로 이런 농민들의 문제의식, 삶의 두려움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마을 농민들 앞에 캄베이라는 경험 많은 노장 사무라이가 나타난다. 그는 사리사욕이 없고 지혜로워서 시장통의 사건을 하나 해결하는데 그로 인해 어중이떠중이들이 그의 곁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성화다. 캄베이는 이를 전부 거절하는데 이상하게 군중 속의 딱 봐도 무뢰한 같은 젊은이(위 사진 왼쪽)를 계속 눈여겨본다. 그런데 방랑자 기쿠지요는 하는 짓이 무뢰한 맞다. 소심한데 나서고는 싶어 하고, 용기가 없다가도 어떨 땐 넘치고. 좀 오락가락하는 인물이다.
7인의 멤버 모으기
가끔 <도둑들> 같은 케이퍼 무비나 <어벤져스> 류의 여러 히어로가 함께 등장해 힘을 모으는 영화를 볼 때면 거사에 참여할 멤버를 모으는 과정이 영화 내에 반드시 포함된다.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의 경우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이 과정을 묘사하곤 하는데, <7인의 사무라이>야말로 대표적인 사례다. 이 영화는 전체 200여 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중 후반 결투 장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별다른 드라마 없이 캐릭터의 합만으로 영화를 이끌어가게 된다.
언뜻 봐서는 당최 구분하기 어려운 몰골을 한 가난한 사무라이들이지만 표정만큼은 카메라에 생생하게 드러나 인물 각자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수비는 공격보다 어렵다"고 여기는 현명한 노장 사무라이 캄베이라도 적은 비용으로 사무라이를 고용하기가 쉽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제공할 대가는 기껏해야 하루 세끼 식량 정도이기 때문이다. 옆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사무라이로 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가난한 마을과 가난한 무사들을 동시에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캄베이는 농민들에게 "당신들 식량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믿음직한 어른의 모습을 보인다.
캄베이가 불러 모으는 사무라이들은 이미 캄베이와 연을 맺은 뒤 신뢰를 얻은 사람도 있고,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위의 두 장면에 등장하는 무사들의 면면은 너무 낯이 익다. 그렇다. 이 영화의 리메이크작인 <황야의 7인>과 <매그니피센트7>에 각각 모티브가 된 캐릭터를 유사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왼쪽 장면은 장작 패는 마동석 풍의 괴력남을 (잡아들일 도적떼가 40명이라는 규모로) 설득하는 장면, 오른쪽 장면은 내기 칼싸움으로 상대가 열받아서 진검 승부를 펼치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단칼에 베어버리는 카리스마 칼잡이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캄베이는 이 광경을 보고 칼잡이에게 마을지킴이에 합류하자고 제안하게 된다. 리메이크작의 어떤 캐릭터(칼잡이)가 이 영화에서 출발되었는지를, 이미 <매그니피센트7>을 본 관객들은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게 모인 7명의 사무라이, 즉 캄베이를 포함한 카타야마 고로베, 시치로지, 하야시다 헤이하치, 오카모토 가츠시로, 기쿠지요는 드디어 마을로 향한다. (마을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키쿠지요의 괴상한 행동들은 이후 결투 장면에서 보여줄 그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더욱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될 예정이니, 충분히 웃고 넘어가자.)
농민들은 두렵다
하지만 농민들은 두렵다. 생전 처음 보는 사무라이들이 마을을 찾아와 자기들을 지켜주겠노라 호언장담하는 모습도 못 미덥고, 그들이 건장한 남자들이라는 건 더 무섭다. 왜냐하면 농민들에게는 애지중지 키우는 딸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농민들은 길 가던 사무라이를 공격해 갑옷과 옷가지 등을 빼앗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있었으니, 좋은 일을 해보겠다고 마을을 찾은 7명의 남자들이 처음 느낄 당혹감은 꽤 컸으리라. (이런 정서는 첫 번째 리메이크작 <황야의 7인>에서 그대로 살려냈다.)
그래도 어쩌겠나. 농민은 약자다. 사무라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본인의 인생에서 그들은 지켜줘야 할 상대인 것이다. 기쿠지요는 분노한다. "왜 농민들이 이렇게 우리를 못 믿고 겉도는 줄 아느냐"고. "맨날 밥 먹듯이 농민들을 못살게 굴면서 노략질이나 하고 부녀자 겁탈을 일삼는 게, 결국 전부 사무라이들 짓이었지 않냐"고. "그럼 농민들은 살기 위해서 더 숨어버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매사에 바보같이 행동하는 기쿠지요이지만 그에겐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이 있다.
평화로울 때가
가장 위험할 때야
영화 시작 후 이쯤 되면 슬슬 지루해질 때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영화의 경우, 지금이면 끝났어야 할 러닝타임이니까. 영화 시작한 지 거의 두 시간쯤 지나서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간다. 7명의 사무라이들은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설득해가면서 훈련을 시키고 마을 장벽을 세워서 전투에 대비한다. 일종의 요새를 만드는 작업을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몰두한다. 어느새 가을 추수 시기가 다가오면서 도적떼들이 찾아올 시기가 되자 농민들과 사무라이들은 초조해한다.
거장들의 스승이 만든
동양의 서부극
20세기 초반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있었다면 일본에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명 거장의 스승이라 불리던 감독들이다.
특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잉마르 베르히만 같은 예술 감독부터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해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지, 그다음 세대로 브라이언 싱어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거장 감독들이 주저 없이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있다.
이미 구로사와 감독은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왔지만 특히 몇 편의 영화들은 해외에서 리메이크되어 다른 감독의 손에서 재창조되기도 했다. 그만큼 원작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요짐보>, <라쇼몽>이 대표적인 리메이크작이다. <7인의 사무라이>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감독이 어렸을 때부터 존 포드 감독 등의 서부극을 좋아해 영향받은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데, 재미있는 것은 <7인의 사무라이> 이후의 서부극을 만드는 감독들은 또 존 포드뿐만 아니라 구로사와 감독의 이 영화에서 강한 영향을 받기도 했다.
<7인의 사무라이>에는 단순히 액션 활극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일본의 세계대전 패망 이후 무너져내리던 전통 가치에 대한 감독의 생각도 담고 있다. 영화 속 봉건 제도의 폐습 안에서 결국 몰락하던 사무라이 계급을 보여주는 방식이 그러하다.
또한 영화는 노년의 주인공 옆에 끝까지 젊은 주인공을 함께 두는데, 그것은 감독 특유의 인장이라 할 수 있는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방편으로 해석된다. 덧붙여, 강렬한 스타일리스트 감독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액션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사무라이 활극으로서의
진짜 액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수많은 장르 영화에 매진했지만 역시 사무라이가 주인공인 사극 대표작이 많다. 그 중에서도 <7인의 사무라이>는 대표적인 사무라이 활극이다. 드라마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검을 휘두르고 피가 튀는 등의 사무라이 전투가 극의 전면에 부각된다.
특히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한 시간여에 달하는 마지막 결투 장면이다. 한 시간 동안 싸우느라 클라이맥스가 어디인지조차 헷갈린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생해서 찍었을 것 같은 장면이 있는데, 후반부 장대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이 등장하는 아래 사진 속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이 주목할 것은 바로 액션 장면의 역동적인 촬영!
당시 구로사와 감독은 파격적으로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돌려 촬영하는 기법을 사용했다고 전한다. 영화 촬영 시에는 사람이 맞거나 말이 다치는 장면을 찍을 때 실제와 흡사하게 찍느라 사고가 허다했다고 하는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실제 스탭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긴 건 농민들뿐이야
지독한 전투가 끝난 뒤 마을을 떠나기 직전, 캄베이가 모내기에 열중하는 농민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린 저 대사는 <7인의 사무라이> 전체를 설명해주면서 동시에 가장 가슴을 울리는 명대사다. 사무라이들은 마을 사람들을 도적떼로부터 구해줬지만 그들은 결국 칼 앞에 스러져갈 운명임을 직감한다. 그런데 좀 분위기가 묘하긴 하다. 사무라이 인생을 비관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떠돌이 방랑객으로서 혹은 무사 정신을 지닌 사나이로서의 삶을 애써 위로하는 느낌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많은 영화 연구가들은 전투 끝에 노년의 사무라이와 젊은 사무라이를 함께 생존시킨 감독의 의도에 휴머니티를 부여한다. 이는 감독이 세상의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갖고 있는 마음을 복합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읽어봐도 무방할 것이다. <7인의 사무라이>는 7명의 사무라이들이 마을을 지키고 홀연히 사라지듯, 세상을 이롭게 할 것들이 얼마나 (대가 없이도) 지켜낼 가치가 있는지를 공들여 설득하고 있는 영화다. 또한 영화를 본 다음 그것을 다짐하게 만드는 영화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