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를 아시나요? 에바라는 말은 세대별로 다른 뜻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만약 당신이 30~40대 남성이라면? 아마도 에반게리온의 준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되고 있다. 이카리 신지와 동년배였던 당시 팬들은 지금 아버지가 됐거나 삼촌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그들은 이 애니메이션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어째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X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해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대신 2000년 전후로 제작된 재패니메이션 몇 편을 소개한다.
신세기 GPX 사이버포뮬러
인정하긴 싫지만 재패니메이션의 영향력은 정말 세다. 1995년 KBS에서 <신세기 GPX 사이버포뮬러>(이하 <사이버포뮬러>)를 <영광의 레이서>라는 제목으로 방영했다. 이후 1998년 SBS에서도 볼 수 있었다. 윤도현이 오프닝 노래를 불렀다. 부스트 모드로 진입할 때 머신의 변화를 보여주는 몽타주 신은 언제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렇게 잠깐이나마 <사이버포뮬러>를 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자동차와 자동차 경주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적어도 기자의 경우에는 그렇다. F1 그랑프리 경기를 챙겨보기도 하고 2020년 5월 잠실주경기장 일대에서 열리는 순수 전기차 레이싱인 포뮬러-E 경기를 참관하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포뮬러-E 머신은 <사이버포뮬러>에 등장하는 아스라다와 꽤 비슷하게 생겼다.
카우보이 비밥
<카우보이 비밥>은 음악이 압권이다. 칸노 요코라는 작곡가는 국내에서도 유명해졌다. 국내 예능 프로그램 방송에서도 <카우보이 비밥>의 음악을 자주 사용했다. 음악만 좋다고 좋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하드보일드 서부극이자 일본 탐정 드라마식의 추리물이자, 사이버펑크 분위기 SF장르의 하이브리드 버전인 <카우보이 비밥>은 누아르적인 분위기가 일품이며 액션 활극의 재미가 쏠쏠했다. 미래 사회에 대한 불안도 잘 표현된 작품이다. <카우보이 비밥>은 지금 넷플릭스에서 실사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존 조가 스파이크 역을 맡았다. 팬들은 키아누 리브스를 원했지만 성사되진 않았다. <카우보이 비밥>의 팬이라면 일단 우려부터 표해야겠다.
그 남자! 그 여자!
<그 남자! 그 여자!>는 츠다 마사미의 순정만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가 원작이다. 사춘기 10대의 순수한 시절을 그린 청춘물이다. 단행본 9권까지를 그 여자 편, 이후 21권까지를 그 남자 편으로 구분하는 이채로운 구성을 갖고 있다. 애니메이션 <그 남자! 그 여자!>는 일본 현지에서 총 26화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방영됐다. 국내에서는 2000년 투니버스에서 2001년 KBS에서 <비밀일기>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적이 있다. 15세 이상 시청 관람이 특이한 점이었다. <그 남자! 그 여자!>를 이 리스트에 넣은 이유가 있다. 안노 히데아키가 감독이기 때문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그 감독이다. <그 남자! 그 여자!> 히데아키 감독의 실험적인 연출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바람의 검심
<바람의 검심>은 1990년대 중후반 고등학생들의 야간자율학습 베스트셀러였다. 그렇기에 사실 애니메이션보다는 만화책으로 더 익숙한 사람이 많을 듯하다. 총 95화에 달하는 TV애니메이션은 왜색이 짙어 국내에서 방영되기 힘들었다. 2003년에서야 케이블 채널 애니원TV에서 방영됐다. <바람의 검심>은 TV판 애니메이션과 더블어 DVD 등으로 출시되는 OVA(Original Video Animation)도 크게 인기를 얻었다. 1999년 <바람의 검심 추억편>, 2001년 <바람의 검심 성상편>이 제작됐다. <바람의 검심>은 실사 영화로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2013년 국내 개봉한 영화 <바람의 검심>, 2015년 개봉작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편> 등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즈망가 대왕
<아즈망가 대왕>은 이 포스트의 출발지인 <신세기 에반게리온>과는 괴리가 느껴지는 애니메이션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공격을 중2병 소년이 조종하는 로봇이 막는 애니메이션과 여고생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4컷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사이의 간극은 클 수밖에 없다. 한 가지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인기가 많았다는 것. 2002년 투니버스에 <아즈망가 대왕>이 방영됐다. 현지화에 많은 신경을 쓴 애니메이션으로 기억된다. 특히 오사카에서 전학을 온 캐릭터 카스가 아유무(이름이 생각 안 나서 검색했음)가 부산 사투리를 쓰는 부산댁이라는 별명의 맹순정으로 변화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즈망가 대왕>의 인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발전과 함께 했다고 알려져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시작해 <아즈망가대왕>으로 끝나는 다소 컨셉이 이상한 포스트가 되고 말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열광했던 세대라면 위에 소개한 애니메이션들은 기억하지 않을까 싶은 바람이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