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영화같은 실화
충격적인 실화다. 제대로 이 충격을 설명하기도 어렵다. 앙골로 가족 7남매가 21세기 뉴욕 한복판에서 태어나 겪은 사연이 너무 영화같아서 말이 안된다.
간단히 자초지종부터 설명해야겠다. 아버지 오스카와 엄마 수잔 사이에 모두 7남매의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뉴욕의 한 아파트에 모여 살면서 단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바깥 출입은 오직 아버지만 했으며 엄마와 아이들은 무려 14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감금 생활을 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떻게 9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그것도 21세기에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채로 도심 한복판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하다 못해 이 많은 아이들의 법적 문제를 위한 행정적인 처리도 해야 하고, 교육 기관 역시 가족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가는 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다큐멘터리 <더 울프팩>은 이들 7남매가 어떻게 14년 동안 집 밖을 나서지 못했는지, 어떻게 방안에서만 14년을 살아왔는지 그 과정을 차근차근 짚어본다.
세상을 영화로 배우다
이들 7남매가 뉴욕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바깥 출입을 14년 동안 하지 못했던 첫 번째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다. 가족을 하나의 부족이자 공동체로 만들고 싶었던 개인적인 왜곡된 가족관이 이 사태를 만든 것인데 그 자세한 뒷 이야기는 영화에서 다뤄지므로 생략하겠다.
아이들의 교육은 엄마가 담당했다. 홈스쿨을 하면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때문에 이 가족은 먹고 살면서 교육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7남매에게 바깥 출입 대신 영화 보는 걸 허락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영화를 보면서 창문 바깥 세상의 궁금증을 달래왔던 것.
뭐 영화 보는 게 어쩌다 재미삼아 한 번 보고 마는 수준이겠지,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게 14년 동안 감금생활을 하면서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싶지만, 천만의 말씀. 이들 7남매는 14년 동안 영화사에 남은 걸작들을 거의 전부 섭렵해버린다. 대략 수천 편의 영화를 말이다. 영화 역사를 이 아이들이 다 훑어버린 셈이다.
아이들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을 영화로 배웠다고 한다. 웃기게도 뉴욕에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뉴욕을, 이 아이들은 <좋은 친구들>을 통해서 본다. 갱스터 영화를 좋아하고, 특히 타란티노 영화에 열광해서 그의 영화를 달달 외우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이나 장난감, 피규어처럼 그들에겐 이 영화가 장난감이었던 셈이다.
7남매는 단순히 영화 보기를 넘어 이제는 대사를 받아적고 대본집을 만들어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을 직접 재연하면서 놀기 시작한다. 배우들의 모습을 따라하고 표정을 따라하고 대사를 따라하다가 자연스럽게 옷을 따라 만들고 총을 따라 만들면서 코스튬 제작에 뛰어들게 된다.
전문적인 수준은 못되지만 이 아이들은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아낸 온갖 잡동사니로 그럴듯하게 만들어 놀았다.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나중에 경찰이 집에 찾아와서는 이 아이들이 만든 모형총을 보며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세상의 온갖 총이란 총은 다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타란티노 & 로버트 드 니로
이들 7남매는 (14년 동안 군만두만 먹은 게 아니라) 수천 편의 영화를 보면서 분명히 취향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생겼을 것이다. 바로 이 남매의 영화 취향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그들이 가장 열광했던 영화가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다.
어쩌면 그들이 타란티노 영화에 빠져드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타란티노의 영화 자체가 고전 영화를 섭렵한 다음, 그 앎의 즐거움을 영화적으로 재창조해내는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들이니까.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유희로써 즐기던 7남매에게는 타란티노의 세계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가 아니었을까.
또 이들 7남매에 얽힌 재미있는 사연 중 하나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세상에 알려진 뒤에 이들의 사연을 접한 abc 방송에서 7남매와 로버트 드 니로의 만남을 주선했던 것.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를 따라하면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 친구들에게는 인생 선물과도 같은 순간이었다고 한다. 영화로 세상을 보고 영화배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던 이들에게 진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순간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순간의 감동을 담아내고 있는 게 바로 이 다큐멘터리의 미덕이라 하겠다. <더 울프팩>에는 7남매가 난생 처음으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이 담겨 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아이들
이들 7남매가 처음으로 세상을 접하게 되는 사연과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사연 모두 정말 말도 안 되는 영화같은 스토리다.
2010년 어느 날, 평소 소품을 주로 담당해서 만들던 아이, 무쿤다가 문득 그날따라 왠지 집 밖엘 나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바깥에 장보러 나간 틈을 타서 문을 열고 집을 나선다. 그대로 나가면 아버지한테 들킬까봐 평소 집에서 만들어 쓰던 가면을 쓰고 나간다. 그런데 하필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 가면이었던 게 화근이었다. 은행과 상점에 그 가면을 쓰고 들어가자, 난리가 났다. 경찰과 병원에서 출동해서 결국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가 풀려난 소동 덕분에 이들 앙골로 가족 7남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더 울프팩>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크리스탈 모셀 감독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6명의 이상한 사내들이 똑같은 정장을 입고 똑같이 머리를 기른 채로 자기 옆을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본능적으로 저 사람들에게 사연이 있겠다 싶어 다가가 말을 건 인연으로 크리스탈은 이들의 다큐멘터리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무쿤다의 충격적인 외출 반항 이후 마음이 맞은 6명의 형제들이 옷을 맞춰 입고 뉴욕 나들이를 나온 그 첫 순간, 영화제작자가 다가와 말을 건 것이다. 이보다 더 영화같은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
이 다큐멘터리에는 7남매가 처음으로 뉴욕 바깥을 나서면서 처음으로 산을 올라가고 처음으로 극장을 가고 처음으로 바다를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바깥 세상을 바라본 그들의 첫 소감은 이렇다. "우와 이거 3D같아!"
특히 이들 7남매가 태어나 처음으로 극장에 가는 광경은 정말 감동적이다. 그들이 평생을 바쳐 따라하고 즐겼던 영화를 처음으로 극장에서 보게 되는 순간이라니. 그들은 가족의 해체와 결합에 관해 고민하는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영화 <파이터>를 처음으로 보게 된다. 그들은 영화를 보고 나와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매일 연기했던 그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나오는 영화를 우리가 봤어!."
<더 울프팩>이란 제목은 이들 7남매의 모습이 야생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 같은 늑대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어서 지은 제목이라고 한다. 이들이 야생을 영화로만 배우다가 진짜 야생을 만나게 되는 순간은 정말 올해의 순간이라 꼽을만하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들 7남매는 다큐멘터리를 찍은 이후 영화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더 많은 대외 활동을 하게 됐다. 세계 온갖 영화제도 다니고 직접 여행도 다니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길렀던 머리도 자르고 현대인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중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건 이 아이들이 사람을 만나면 제일 처음 물어보는 게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이었던 것.
평생 영화를 세상을 보는 창으로 삼아왔던 아이들에게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는 사람들과 처음 소통하기 위한 접근법이다. 마치 악수 같은 것.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가슴 찡한 말이었다.
막상 이들의 사연을 접하고 나면, 너무 영화같아서 마냥 웃기만 할 것 같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버지와의 관계, 가족의 존재 가치 등을 되짚어볼 수 있는 순간을, 이들 앙골로 7남매가 살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 한 편으로 감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7남매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뻗어나길지를 함께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