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피크닉>

‘이 사람, 쉬기는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배우가 있다. 한국 영화를 열심히 챙겨 본 관객이라면 배우 권해효의 얼굴을 해마다 최소 한두 번은 봤을 테니까. 권해효는 올해 <나의 특별한 형제>, <배심원들>에 이어 <한낮의 피크닉>이란 옴니버스 독립영화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내후년이면 배우 인생 30년을 맞이할 권해효에 대한 소소한 몇 가지 사실을 소개한다.


2010년대 최고의 다작왕

2018~2019년 권해효의 출연작(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해피투게더>, <국가부도의 날>, <배심원들>, <나의 특별한 형제>)

요즘 많이 쓰는 ‘소처럼 일한다’는 말은 권해효에게 딱 적합하다. 1990년 연극 <사천의 착한 여자>로 데뷔한 후, 1992년 이장호 감독의 <명자, 아끼꼬, 쏘냐>로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비췄다. 이후 수많은 ‘선배’ 역을 맡으면서 ‘선배 전문 배우’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지난 20여 년간 그가 출연한 영화, 드라마는 100편이 넘는다. 특히 2010년대에 들어선 상업영화, 독립영화, 단편영화 가릴 것 없이 열연을 펼치며 젊은 세대에게도 낯익은 얼굴이 되고 있다. 네이버 영화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18년에 촬영한 작품만 10편이다. 물론 단편이나 특별출연도 포함된 편수지만, 권해효란 배우가 아직도 뜨거운 연기 열정을 품고 있음을 단번에 보여준다.


딱 두 번의 악역 연기, “그런데 왜 이렇게 잘해?”

<사이비>(왼쪽), <왕이 된 남자>

권해효가 맡은 배역은 대체로 선하다. 때때로 무척 이기적이거나, 고압적인 배역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현실적이고 소시민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그가 처음 맡은 악역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다. 2013년 개봉한 이 작품은 신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는 목사와,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지만 마을에서 배척당하는 주정뱅이의 대립을 그린다. 권해효는 최경석 목사 역을 맡아 신자들을 꾀어내려는 다정함과 어떻게든 잇속을 챙기려는 이기심을 동시에 표현하며 극을 이끌었다. 최근 이 애니메이션을 각색한 드라마 <구해줘 2>에선 천호진이 해당 배역을 연기했다. 실사 작품으로 처음 맡은 악역은 올해 방영한 드라마 <왕이 된 남자>. 좌의정 신치수 역을 맡은 그는 권력을 거머쥐고자 어떤 일도 가리지 않는 권력형 인물상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호평받았다.


90년대를 강타한 의외의 유행어?

이름 때문에 유행어가 생긴 독특한 이력이 있다. 때는 1994년, ‘스낵면’ 광고에서 “나 권해효, 맛있는 것만 권해요”라는 멘트를 날렸던 것. 독특한 이름과 스낵면을 동시에 기억하게 만드는 희대의 멘트라 할 수 있다. 이 드립은 1998년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도 재탕됐는데, 처음 주인공을 만난 권해효가 “내 소개부터 할게. 나 84학번이야, 권해효”라고 말하자 이휘재가 “뭘 보자마자 권해요?”라고 반문한 것. 아마 지금 권해효가 데뷔했다면 팬들은 전부 ‘~해효’ 체를 만들어서 쓰지 않았을까.


조선학교 지원 비영리단체, 몽당연필 대표

연예뉴스에 전혀 관심 없어도 권해효가 익숙할 수 있다. 권해효는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소셜테이터(사회를 뜻하는 소셜과 연예인을 뜻하는 엔터테이너의 합성어) 중 한 명이다. 본인은 “SNS를 잘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셜테이터와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만큼 적극적으로 자신의 시각과 생각을 터놓는 배우도 몇 없다. 1인 시위, 집회 현장 참석 등 그의 사회적 활동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비영리단체 ‘몽당연필’의 대표란 사실은 놀랍다. 몽당연필은 재일 동포를 교육하는 일본에 위치한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단체이다. 조선학교는 한국의 역사, 언어, 문화 등을 가르치기 때문에 일본 본토에서 적당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

권해효는 2002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남측 청년 대표단으로 참석했을 때, 북측 대표단 조선학교 출신 청년을 만났다. 이후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일본에 방문했고, 그 과정에서 조선학교의 넉넉치 않은 여건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복구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소식에 몽당연필을 설립하게 됐다고. 오랜 기간 대표로 활동하면서 배우가 아닌 ‘몽당연필 대표’로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도 점차 늘고 있다.

2011년 몽당연필 블로그로 공개된 1인 시위 장면


블랙리스트?

SBS 뉴스 영상 캡처

사실 권해효는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사회에 목소리를 냈다. 이런 움직임이 죽 이어지다 보니 흔히 말하는 정치 성향이 뚜렷한 배우로 비쳤고, 결국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이 작성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이 새겨졌다. 2017년 해당 사실이 보도된 후 그는 “(출연 제안이 끊긴 건) 그냥 결국 내 실력의 문제로 생각하는 게 나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그런 통보를 받은 적 있다”고 언급했었다가 당시 적폐 세력을 관련해 수사 중이던 검찰 측에서 연락으로 알려줬다고 설명했다.


명품 배우의 차기작은 무엇?

<타짜: 원 아이드 잭> 촬영 종료 인증샷. 권해효는 가운데 보라색 티를 입은 권오광 감독 왼쪽에 있다.

현재 권해효가 촬영 중인 작품은 연상호 감독의 <반도>. 이 영화는 한반도가 좀비로 뒤덮힌 <부산행>과 세계관을 공유하며, 강동원, 이정현, 이레, 김민재, 구교환이 출연한다. 권해효는 좀비에 맞서 살아남은 생존자 무리의 연장자 김노인 역으로 발탁됐다. 이제 촬영에 들어갔으니 2020년은 돼야 개봉할 영화. 그전에 권해효를 만날 수 있는 영화는 다음과 같다. 올 추석 개봉 예정인 <타짜: 원 아이드 잭>, 그리고 아직 개봉 시기가 확정되지 않았으나 2018년 부산영화제의 화제작 <메기>, 장률 감독의 차기작 <후쿠오카>. 참, 지금 방영 중인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도 바로 대표 민홍주로 출연 중이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후쿠오카>(왼쪽), <메기> 포스터


2011년 인터뷰에서 권해효 본인이 뽑은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다음과 같다.

- <사랑을 믿어요> 권기창

- <은실이> 장낙천

- <사랑을 그대 품안에> 권해효(배우 이름을 그대로 썼다)

- <남자 셋 여자 셋> 카페 주인 권해효. 카페 밖을 나갈 일이 없어 개인적으로도 제일 편했던 역할이라고.

(왼쪽 위부터) <사랑을 믿어요>, <은실이>, <사랑을 그대 품안에>, <남자 셋 여자 셋>

/

<그후> 포스터(왼쪽), 부부로 출연한 조윤희와 권해효

<그후>(2017)는 <진짜사나이>(1996) 이후 21년 만의 첫 주연 영화다. 이 영화는 그의 부인이자 연극배우 조윤희가 스크린에 처음 데뷔한 영화기도 하다.

<진짜 사나이>

/

2001년부터 2009년에는 자체 영화 출연 공백기를 가졌다. 2010년대에는 드라마보다 영화 출연이 더 많아졌다.

/

2018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 진행자를 (2018년 기준) 15년째 맡고 있다. 그 전신인 한국독립단편영화제 때까지 포함하면 18년째. 2018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신인 배우 발굴을 위한 ‘60초 독백페스티벌’을 주도하며 페스티벌 상금을 후원했다.

/

(왼쪽 위부터) 윌렘 대포, 스티브 부세미, 클리프톤 콜린스 주니어, 권해효

그동안 스티브 부세미, 윌렘 대포 같은 강한 인상의 할리우드 배우 닮은 꼴로 거론되곤 했다. 요즘엔 클리프톤 콜린스 주니어가 가장 닮았다는 반응이다. <인어공주>의 세바스찬과 닮았다는 반응도 있다.

세바스찬을 닮았다고 주장한 팬이 만든 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