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내 초대박 흥행 순항

일본 극장가는 지금 축제 중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너의 이름은>이 지브리 스튜디오라는 거대한 장벽을 뛰어넘을 기세로 흥행 중이다. 9월 20일 기준, 개봉 4주차를 맞아 여전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너의 이름은>의 일본 내 누적 관객수는 690만명으로, 흥행 수익은 91억엔을 돌파했다.

어느 정도 규모의 흥행인가 하면, 만약 <너의 이름은>이 100억엔을 돌파하면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 이후 처음 100억엔을 돌파하게 된다. 즉,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첫 100억엔 돌파 애니메이션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독보적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스코어이면서 동시에 <너의 이름은> 열풍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숫자다.

*아직 국내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내부 사전 시사를 통해 작성한 프리뷰입니다. 때문에 스포일러가 될만한 부분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우선 소개하기 위한 글입니다.

그와 그녀는
연결되어 있다?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을 봤던 관객이라면 익숙한 '시공간을 초월해 연결된 두 남녀'의 테마로부터 시작된다.

'이토모리' 마을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는 동생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란다. 늘 도쿄 같은 도시에서 살길 바라지만 현실은 변변한 카페 하나 없는 시골 마을. 얼마 뒤면 1200년 만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혜성이 도착한다는 소식에 일본 전역이 들떠 있다. 그리고 이장 선거와 마을 축제 시즌과도 겹쳐서 미츠하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츠하는 이상한 꿈을 꾼다. 마치 자기가 도쿄에 사는 남학생의 하루를 보낸 것 같은 꿈이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어제 하루종일 행동이 이상했다는데 그녀는 정말 꿈이라도 꾼 것처럼 어제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고 있는 와중에 공책을 펴니 이런 말이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넌 누구니?"

영화는 시골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와 도쿄에 사는 남학생 타키의 일상을 교차해 보여주면서 두 사람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넌지시 보여준다. 고교생 타키 역시 이상한 꿈을 꾸고 일어나보면 어제의 기억이 없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어제의 일을 이야기해주면서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타키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레스토랑에서도 언제부턴가 자기가 하지 않은 행동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곤 한다. 그가 남몰래 흠모하고 있는 오쿠데라 선배도 자기를 좀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점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상을 살아보게 되는 꿈에 익숙해진 미츠하와 타키는 꿈에서 다른 내가 되어 하루를 보내는 동안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다. 얼굴에 낙서를 해놓는다든가, 휴대폰 일기장에 자신이 보낸 하루를 기록해놓는 식으로 말이다.

두 사람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누군가 남겨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그 기록을 발견할 때마다 경악한다. 마치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겼을 때 행동을 알게 될 때처럼 낯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거기서 두 사람은 점점 서로의 존재를 궁금해하고, 급기야는 서로를 찾아나서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누가 되어 있을까?
소년 소녀여,
세계를 구하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미 자신의 여러 단편과 장편 작업을 통해 보여줬던 두 남녀 사이의 엇갈린 운명이랄지, 시공을 초월한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이야기 등을 <너의 이름은>에 집약적으로 모아놓았다.

예를 들면 휴대폰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사람들이 연결되는 설정의 <별의 목소리>, 영원히 잠든 소녀를 구하기 위한 두 소년의 고군분투를 그린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만날 듯 만나지 못하는 애틋한 인연을 그리는 <초속 5센티미터> 같은 영화 속 아이디어와 설정이 이번 영화에 모두 담겨 있다.
아니, 그 이상의 다른 것이 담겨 있다고 말해야겠다. <너의 이름은>은 작은 환상이 빚어낸 사랑이야기에서 보다 확장되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미스터리로 뒤덮인 판타지의 세계로 두 주인공과 관객을 집어던진다.

<너의 이름은>은 2000년대 이후 일본 대중문화 전반에서 보여졌던, 평범한 소년 소녀가 눈앞에 놓인 소중한 것을 좇다가 결국 세계의 운명을 쥐고 흔들게 된다는 세계의 확장을 다루는 이른바 '세카이계' 작품세계의 집대성을 보는 듯하다.

독특한 구조의 재미,
자연과 도시의 아름다움,
그리고 희망

<너의 이름은>처럼 두 사람의 운명이 교차하며 여러 사건이 서로 다른 시공간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는 당연히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띄며 진행되는데, 그 미스터리한 사건을 펼쳐보이는 흡입력이 대단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즐겨쓰는 촘촘한 플롯의 구성의 재미를 이 영화에서도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도시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앵글을 통해 도쿄 시내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표현한다. 전작보다 더욱 풍성해진 클로즈업과 풀샷의 풍부한 앵글에 담긴 도심 풍경은 대부분 실제 배경 장소가 있는데, 이미 일본 내에서는 영화 개봉 뒤 해당 장소가 성지가 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도시와 시골의 특별할 것 없는 연결을 통해 지금 일본 사회가 처한 현실 문제와 직결시키는 작가적 야심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지금 일본은 어떤 사회적 불안감 위에서 살고 있는가. 지난 몇 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자연재해는 국민들에게 어떤 마음을 갖게 만들었는가.

<너의 이름은>은 한국의 세월호 사태가 그랬듯,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일본 국민들에게 안겨준 트라우마를 영화에 반영함으로써 그의 세계가 포용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더욱 견고하게 다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세계의 집약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그가 바라보고 있는 건 '희망'이다.


어디서 볼 수 있나

국내 관객들은 10월 6일 개막하는 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너의 이름은>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이미 시간표는 홈페이지에 나와 있으니, 29일 예매 오픈과 동시에 티켓을 사수해야 한다. 미처 부산영화제 티켓을 구매하지 못했다면, 10월 말 개최 예정인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도 상영 예정이니 그때를 기다려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국내 개봉은 내년 1월로 확정됐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