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작품으로 7월 국내 스크린을 찾은 할리우드 배우를 소개한다. <라이온 킹>에선 심바(도널드 글로버)의 ‘하쿠나 만타타’ 멘토 품바의 목소리를 연기하고, <롱 샷>에선 미 최연소 대선 후보로 나선 첫사랑 샬롯(샤를리즈 테론)과 연애 전선 형성하는 백수 프레드를 연기한 배우, 세스 로건이다. 사실 세스 로건은 배우라는 틀 안에 한정 지을 수 없는 영화인이다. 코미디언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배우, 작가, 감독, 제작자, 더 나아가 얼마 전엔 마리화나 회사를 차리기도 한 세스 로건에 대한 사실들을 나열해봤다.


1. 13살 때부터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다.

10대 시절 코미디쇼 무대에 오른 세스 로건

폴 메카트니는 우리랑 같은 방에 있었어요. 1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죠. 방에 있는 내내 이 생각밖에 안 했어요. “만약 내가 달려가 그의 가랑이 사이를 발로 찬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될 거야”

Paul McCartney was in the room with us. There was a point where he was three feet away from me and all I kept thinking was, "If I run up and kick him in the crotch right now, I'll be the most famous man alive"

어떤 짓궂은 말을 던져도 밉지 않은 농담의 대가. 세스 로건의 말 재주 센스는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재능이었고, 운이 좋게도 그는 자신의 재능을 일찍 알아챘다. 그는 13살, 부모님의 권유로 레즈비언 바 로터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탠드 업 코미디쇼를 진행하며 아마추어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캠프 상담원, 바르미츠바(유대교에서 치르는 성인식, 세스 로건은 유대인이다), 가족 이야기 등 일상 소재를 나열하며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보다 한참 오래 산 인생 선배들의 웃음을 책임진 그는 무대 위에서 '코미디 이외의 어떤 것도 직업으로 삼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세스 로건은 16살이 되던 해,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아마추어 코미디 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하며 업계에 제 존재감을 알렸다.


2. <수퍼배드>의 각본도 10대 시절에 구성했다.

노란 몸의 ‘미니언즈’가 출연하는 <슈퍼배드>가 아니다. 그 이전에 B급 영화의 레전드 <수퍼배드>가 있었다. 엠마 스톤의 데뷔작이자, 할리우드 코미디 캐릭터 부자 배우 조나 힐, 마이클 세라, 크리스토퍼 민츠 프래지 주연의 B급 하이틴 너드(?) 무비. 세스 로건은 이 작품의 각본가로 활약하며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코미디 중심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가 25살이 되던 해 개봉한 <수퍼배드>는 그가 13살 무렵부터 각본 작업에 착수했던 영화다. 세스 로건은 중학생 시절 바르미츠바에서 미래의 인생 친구 에반 골드버그와 함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수퍼배드>의 각본을 쓰며 10대 시절을 보냈다. 극 중 주인공들의 이름이 세스(조나 힐), 에반(마이클 세라)였던 데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저예산 코미디 영화였던 <수퍼배드>는 2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평단,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다.


3. 데뷔작 <프릭스 앤 긱스>에 출연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6살의 나이로 코미디 대회에서 전국 2위를 거머쥔 세스 로건의 떡잎을 눈여겨본 자가 있었으니. <더 벤 스틸러 쇼>를 비롯해 다수의 작품에서 센스 넘치는 코미디 감각을 뽐낸 작가 겸 제작자, 주드 아패토우다. 세스 로건과 주드 아패토우의 첫 만남은 주드 아패토우가 총괄 제작, 각본, 연출을 도맡은 하이틴 드라마 <프릭스 앤 긱스>에서 이뤄졌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거주하던 세스 로건은 작품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날아갔고, 켄 밀러 역에 캐스팅된 그는 작품 출연을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세스 로건은 이런 결정에 대해 “공부를 계속해야 도움이 되는 직업이 아니라면, 고등학교는 아마 당신의 장래를 원하는 대로 이끌어주진 못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4. 주드 아패토우의 1PICK 신인 출신!

<프릭스 앤 긱스>에서 세스 로건의 즉흥 연기에 사로잡힌 주드 아패토우는 자신의 작품에 그를 프로듀서, 작가, 배우로 고용하기 시작한다. 스티브 카렐, 세스 로건, 마이클 세라, 저스틴 롱, 폴 러드 등이 뭉친 주드 아패토우 사단의 시작도 이 즈음. 세스 로건은 주드 아패토우의 영화 연출 데뷔작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를 시작으로 <사고친 후에> <수퍼배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퍼니 피플> TV 쇼 <언디클레어드> <앵커맨> 등 다양한 작품에서 그와 협업해왔다. 세스 로건은 주드 아패토우에 대해 “어떤 말로도 그의 훌륭함을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지금 노숙자가 아닌 건 주드 아패토우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5. 제임스 프랭코와 절친이다.

<프릭스 앤 긱스>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세스 로건은 데뷔작 <프릭스 앤 긱스>에서 인생 친구를 만난다. 당시 드라마의 주인공, 다니엘을 연기했던 제임스 프랭코다. <프릭스 앤 긱스> 이후 세스 로건은 주드 아패토우 밑에서 각본가, 제작자로 일하며 코미디 영화의 조연으로 배우 활동을 이었고, 제임스 프랭코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해리 오스본 역으로 할리우드 스타덤에 올랐으나 그 외 다른 출연작에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시기 즈음 두 사람의 협업 작품 <파인애플 익스프레스>가 개봉했다. 세스 로건이 각본과 제작, 주연을 맡았고, 제임스 프랭코가 주연으로 합류한 이 작품은 할리우드 B급 코미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명작으로 개봉 당시 대중과 평단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았다. 제임스 프랭코가 할리우드 스타 이미지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두 배우는 이후 <디스 이즈 디 앤드> <디 인터뷰> <소시지 파티> <디제스터 아티스트> 등을 함께하며 할리우드의 문제작을 여럿 탄생시켰다.


6. 제임스 프랭코는 세스 로건의 누드 초상화도 그렸다.

이 그림을 보면 두 사람이 얼마나 허물없는(!) 사이인지 알 수 있다. 연기로 만족하지 않는 세스 로건의 친구답게, 연출가, 촬영 감독, 사진작가 등으로 활약한 제임스 프랭코는 세스 로건의 누드 초상화를 그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실 제임스 프랭코가 그린 세스 로건의 초상화는 작가 크리스토퍼 슐츠의 아트북 <세스>(Seth)에 실린 그림을 패러디한 것에 가깝다. 알고 보면 두 배우는 누드와 연관이 깊다. 구글에 ‘seth rogen james franco naked’를 검색하면 모자이크 처리된 두 배우의 알몸 이미지가 무수히 쏟아진다는 TMI 정보를 전한다. 21일간 알몸으로 정글에서 살아남는 미션을 수행하는 리얼리티 쇼 <네이키드 앤 어프레이드>(Naked and Afraid)에 출연했을 적 사진이다.

<네이키드 앤 어프레이드>


7. 더 오래된 절친은 에반 골드버그다.

제임스 프랭코보다 더 오래된 세스 로건의 절친. 앞서 소개한 <수퍼배드>를 공동 창작한 에반 골드버그다. 13살 때부터 알고 지낸 두 사람은 현재까지도 할리우드의 유명 단짝 파트너로 지내며 여럿 작품을 만들어오고 있다. 세스 로건은 에반 골드버그와의 우정에 대해 언급하며 “연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친구”로 그를 소개했다. 이어 “과거 다른 도시에 살았을 때에도 우린 전화나 편지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한 책상, 하나의 컴퓨터 앞에 앉아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발전시킨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15cm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조셉 고든 레빗 주연의 <50/50>에서부터 주드 아패토우로부터 독립해 에반 골드버그와 포인트 그레이 픽쳐스를 설립한 세스 로건은 그와 함께 수 편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왔다. 여담으로 포인트 그레이 픽쳐스의 이름은 두 사람이 함께 졸업한 포인트 그레이 중학교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8. 절친들과 함께 북한의 경고를 받았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 제임스 프랭코는 여러 작품을 함께 해왔다. 그들의 메인이벤트 한 작품을 소개하라면, 단연 <디 인터뷰>를 꼽을 수밖에 없다.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가 공동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시카일라크 쇼 프로그램 진행자 데이브(제임스 프랭코)와 프로듀서 아론(세스 로건)가 평양에 가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두 사람은 시카일라크 쇼 애청자라는 김정은을 인터뷰하기 위해 평양에 갈 기회를 얻게 되고, 동시에 CIA에게 김정은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이 같은 스토리에 북한이 불처럼 화를 냈음은 물론이다. 북한은 <인터뷰> 상영을 금지하지 않으면 미국에 중대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했고, 세스 로건과 제임스 프랭코는 테러 경고를 받았다. 북한이 소니 픽쳐스의 네트워크가 해킹해 할리우드가 발칵 뒤집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소니 픽쳐스는 <디 인터뷰>의 개봉을 취소했고, 영화는 아이튠즈를 통해 공개됐다. 여담으로 <앤트맨과 와스프> <아쿠아맨> 등 대형 영화에 얼굴을 비추며 이름을 알린 랜들 박이 김정은을 연기했다.

<디 인터뷰>의 랜들 박


9. 노안이다.

과거엔 노안으로 유명했다. 성숙한 외모만큼, 어린 시절부터 그는 30대, 40대 배우들과 견주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륜의 생활 연기를 선보였다. 첨부한 스틸 이미지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속 칼을 연기한 세스 로건의 모습. 10살 이상 차이 나는 폴 러드, 20살 차이 나는 스티브 카렐과 함께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23살 시절의 세스 로건을 확인할 수 있다.


10. 히어로를 연기했다.

알고 보면 히어로를 연기하기도 했다. 1936년부터 1952년까지 이어진 동명의 라디오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그린 호넷>에서 허당 히어로 그린 호넷으로 변한 세스 로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린 호넷의 사이드킥 캐릭터 케이토는 주걸륜이 연기했다. 세스 로건이 주연뿐 아니라 각본과 제작도 맡았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필모그래피의 오류로 남은 작품이 됐다. 평단은 실망의 기색을 내비쳤고, 후속 제작을 묻는 질문에 세스 로건은 “이 영화 제작 과정, 촬영 현장은 악몽 같았다”고 밝혔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박스오피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프닝 스코어 1위를 기록했고, 제작비를 회수할만한 흥행 수익을 거뒀다.


11. <심슨 가족>에 게스트로 출연했고, 에피소드를 쓰기도 했다.

<심슨 가족>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9년에 방영된 에피소드 <Homer the Whopper>를 쓰고, 목소리 연기자로도 합류한 것. 이로써 그는 <심슨 가족>에 작가로 합류한 두 번째 게스트 배우가 됐다. 2014년 방영된 에피소드 <Steal This Episode>에선 본인, 세스 로건 역으로 출연해 목소리 연기를 펼쳤다.


12. 코미디 영화 외 다른 영화에도 출연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어색하다”며 배우라기보단 작가나 제작자, 감독으로 불리길 원했던 세스 로건. 알고 보면 코미디 장르 외 다른 작품에서의 연기력 역시 뛰어난 배우다. <도니 다코> <스티브 잡스> 등 코미디를 벗어난 장르에서 배우로 활약한 그를 만날 수 있는 작품도 여럿. 그중 그의 반전 매력이 제대로 드러난 작품은 미셸 윌리엄스 주연 <우리도 사랑일까>다. 그는 마고(미셸 윌리엄스)의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남편 루를 연기했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부부의 사이가 소원해진 후 등장하는 샤워 신은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특색이 없는 게 특징인 캐릭터 루를 입체적으로 구현하고, 대사 한마디에 무너진 속내를 담아내는 세스 로건의 두터운 연기 내공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


13. <이터널 선샤인> 출연했을 수도?

유명 배역 오디션에 꽤 많이 지원한 배우이기도 하다. 드라마 <더 오피스> 속 사회성 0% 캐릭터 드와이트 역의 오디션을 봤고,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국내 관객에게 가장 익숙한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일 것. 일라이저 우드가 연기한 패트릭 역의 오디션을 봤지만 미셸 공드리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세스 로건과 미셸 공드리 감독은 후에 <그린 호넷>으로 뭉치게 되는데, 결과는….


14. 마리화나 브랜드 '하우스플랜트'를 설립했다.

2018년 10월 17일, 캐나다에선 마리화나 흡연이 합법화됐다. 세스 로건은 에반 골드버그와 함께 모국에 마리화나 브랜드, ‘하우스플랜트’를 설립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5년 동안 준비해왔던 회사다. 마리화나 생산뿐만 아니라, 제품의 다양한 종류, 섭취 방법(?) 등 소비자 교육에 중점을 둔 브랜드라고.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