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 킹>

25년 만에 애니메이션에서 실사로, <라이온 킹>이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돌아왔다. 물론 실사라곤 하나 CGI(컴퓨터 그래픽, Computer-generated imagery)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CGI는 어느새 실사를 대처할 만큼 발전했다. 그런데 혹시 이 CGI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드는지 알고 있는가. CGI는 실사와 달리 특별한 과정을 하나 더 거쳐야 하는데, 바로 렌더링이다. 렌더링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걸리는 작업인지 간략하게 소개해본다.

렌더링이란?

대외적으로 쓰는 '렌더링'은 예상 완성도를 뜻한다. '모 기업의 스마트폰 렌더링' 같은 글을 한 번쯤 봤을 것이다. 여기서 렌더링은 이미 완성된 '결과물'을 이른다. 이 글에서 설명할 렌더링은 이 결과물을 내기 위한 과정을 의미한다.예를 들어 원을 그려보자. 백지에 그냥 동그라미를 그리면 되지만, 이걸 입체적으로 그려야 한다면 원의 어디가 밝고 어두운지, 표면은 얼마나 매끈하거나 거친지 계산하며 그려야 한다. 하물며 이게 움직인다면 무게에 맞춰 움직이는 속도도 다를 것이다. 렌더링은 이처럼 모델(물체) 위의 질감(텍스쳐), 조명(라이트닝), 효과(이펙트)를 계산하고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하는 과정이다.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렌더링은 모든 작업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시행하는 끝판왕인 셈인다.

기본적인 모델 위에

텍스쳐가 입혀지고

조명이 더해진다


렌더링을 위한 농장, 렌더 팜

개인 영상 작업을 간단하게 해본 사람이라면 텍스트나 몇몇 이미지를 삽입하고, 파일로 추출하기 전 렌더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렌더링은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할 수 있다. 영화는 스케일이 다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4K 해상도로 작업한다. 그럼 CG 역시 해상도에 걸맞은 사이즈로 디자인되고, 그만큼 큰 해상도에서도 실사처럼 보이게 디테일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데이터 용량이 커지고 렌더링을 처리해야 할 양도 많아진다.

웨타 스튜디오의 렌더 팜

그래서 CG 작업하는 스튜디오는 렌더링을 끊임없이 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렌더 팜’(Render Farm)이란 개념이 탄생했다. 렌더 팜은 렌더링 작업을 하는 시스템을 이른다. 수많은 고사양 컴퓨터를 하나의 서버로 구축해 동시에 렌더링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렌더링 작업에 특화된 서버실이라 할 수 있다. 이 렌더 팜 시스템은 렌더링 작업에 드는 시간을 천문학적으로 줄였고, 그 결과 CGI 애니메이션과 CGI를 활용한 실사 영화들에 날개를 달아 줬다.

보통 렌더링 시간은 단일 CPU 기준으로 표기된다. 렌더 팜 시스템을 이용하면 얼마나 단축되는지, 얼마만큼 걸리는지는 언급하지 않는 편. 공개된 렌더링 시간을 보면, 얼마나 단축되는지 단번에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바타

영화 관련 기술을 얘기하면 항상 거론되는 그 감독, 제임스 카메론. 제임스 카메론의 최신작(!) <아바타>는 렌더링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공개된 영화다. <아바타>를 작업한 웨타(WETA)의 데이터 센터는 32개의 컴퓨터가 4줄로 채워진 서버 랙이 34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 시스템은 도합 4만 개의 프로세서와 104 테라바이트 메모리가 사용됐다. 초당 7 기가바이트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고. 이게 10년 전이다. 그 당시 전 세계 슈퍼컴퓨터 중 200위 안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것인지, <아바타>에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 투입됐는지 알 수 있다. <아바타>의 상영본은 166분인데, 최종 원본은 분당 17.28기가바이트에 달했다. 만일 단일 시스템으로 <아바타>를 렌더했다면 1초당 1200시간은 걸렸을 것이란다.


몬스터 주식회사 & 몬스터 대학교

<몬스터 주식회사>

<몬스터 대학교>

픽사의 작품 중 가장 제작하기 까다로웠다는 ‘몬스터’ 시리즈. 왜냐하면 설리반의 털 때문이다. <몬스터 주식회사> 제작 당시 설리반의 캐릭터는 10만 개의 털이 하나하나 구현됐다. 이걸 렌더링 한다면 한 프레임당 일주일은 걸렸을 거라고(참고로 영화는 1초에 24프레임이다). 12년이 지나고 제작된 속편 <몬스터 대학교>도 비슷했다. 하드웨어의 사양이 올라간 만큼 CGI 디테일도 상승해서 한 프레임당 29시간이 필요했다. 픽사 스튜디오는 CGI 애니메이션 제작사답게 일찌감치 렌더 팜 시스템을 구축해뒀고, 두 영화 모두 무사히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픽사 내부 직원의 인터뷰를 인용하면 이렇다. “2만 4000천 개의 프로세서가 장착된, 2000대로 구성된 슈퍼컴퓨터가 있다. 이건 전 세계의 최고급 슈퍼컴퓨터 25대 중 하나다” 만일 이 렌더 팜이 없었다면, 우리는 픽사 스튜디오의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 몇 년이나 기다려야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비티

애니메이션, 판타지적인 작품을 살펴봤으니 현실적인 CG 묘사가 압도적인 <그래비티>를 소개한다. <그래비티>는 첫 가편집에서 “CG가 너무 화려해서 수정했”을 정도로 CGI 효과가 많이 들어갔다. 촬영 현장을 보면 배우 외엔 정말 모든 게 CG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세트조차 소박하다. 프레임스토어(Framstore)이란 다소 낯선 시각효과 회사가 <그래비티>의 CGI를 담당했다. <그래비티>로 시각효과 상을 받은 프레임스토어의 팀 웨버는 “<그래비티>를 싱글 코어 컴퓨터로 렌더링했다면 이집트 문명이 시작한 기원전 5천 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1프레임당 적어도 1000시간을 걸렸을 거란 의미다.


트랜스포머 3

<트랜스포머> 드릴러

역대급 블록버스터로 시작했으나 지겹다는 혹평을 받으며 퇴장한 <트랜스포머> 시리즈. 그래도 CGI를 통한 볼거리만큼은 끝까지 확실했다. <트랜스포머 3>는 그중 가장 비주얼리스트들을 골치 아프게 했다. 시카고를 박살내는 드릴러 때문. 크기도 엄청 크고, 그 곡선형 디자인 때문에 아티스트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들어갔다 한다. 주인공격인 옵티머스 프라임이 10108개 파츠로 만들어졌는데, 드릴러는 70051개 파츠로 구성됐다고. 거기다 거대한 허드슨 타워를 관통하고, 부수고, 뭉개는 등 등장하는 장면마다 다양한 파괴 액션 때문에 작업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후문이다. 드릴러가 빌딩 외벽을 타면서 빌딩 유리창에 반사되는 장면은 한 프레임당 288시간이 필요했다. 또 <트랜스포머 3>는 3D 상영을 위해 매 프레임마다 두 이미지를 렌더링해야 했다. (3D 영화는 왼쪽 눈, 오른쪽 눈에 필요한 이미지를 겹친 후 편광안경으로 각각의 눈이 적합한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시각효과를 담당한 ILM은 <트랜스포머 3> 전체 렌더링 시간은 20만 시간이 넘으며, 하루 종일 해도 22년이 걸린다고 추정했다. 실제로 ILM은 <트랜스포머 3>의 최종본을 렌더링 할 때, 모든 렌더 팜을 해당 작업에 투입했다고 한다.


코코

이런 CGI 렌더링 시간은 고정적인 값이 아니다. 아티스트들의 실력, 렌더링 프로그램 등 CGI 전반의 결과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코코>는 아티스트들의 실력이 렌더링 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적합한 사례다. 픽사 스튜디오는 창립 이래 ‘렌더맨’이란 자체 개발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라이트스피드’라는 문제 해결팀을 운용하면서 애니메이션 팀에게 렌더맨의 문제점을 수렴하고 이를 개발팀과 함께 보완해나가고 있다. <코코>는 망자의 도시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조명 시스템이 필요했는데, 문제는 렌더맨 구버전에서 구현할 수 없었다. 라이트스피드 팀과 렌더맨 개발팀은 이 문제점을 반영해 렌더맨을 업데이트했는데, 처음엔 한 프레임당 1000 시간이 필요했단다. 그러나 6개월 정도 문제를 붙잡고 렌더맨을 수정해가면서, 1000시간에서 450시간, 450시간에서 125시간, 최종적으로 한 프레임당 50시간까지 단축시켰다. 픽사 애니메이션의 창의력 외에도 정말 귀한 요소들이 녹아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