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까지 다 보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보통은 영화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영화의 기분 나쁜 분위기에 압도되어 엔딩 후에도 멍하니 앉아있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기이하고 불쾌한 소재에 ‘기가 빨리고’, 예상치 못한 불편한 결말을 경험하는 영화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금부터 소개할 영화들은 한동안 그런 기분 나쁜 후유증에 시달리게 할 것이다.


<로우>

로우

Raw, 2017

칸과 토론토영화제를 충격에 빠뜨렸던 영화. <로우>는 지난 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은 화제작이다. 가족 전체가 채식주의자인 주인공 저스틴(가렌스 마릴러)이 수의학과에 진학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설레는 대학 생활은 온데간데없고, 동물의 피를 뒤집어쓰거나 강제로 토끼의 콩팥을 먹는 등 가혹한 신고식을 받아야 한다. 주인공은 이런 과정에서 육식과, 더 나아가서 식인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깨닫는다.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한 영화답게 잔인한 묘사가 많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게다가 새로운 환경에 떨어진 저스틴이 적응하면서 겪는 불안,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고어한 장면과 함께 주인공의 불안한 정서를 간접체험하고 나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다.


<더 헌트>

더 헌트

The Hunt, 2012

<더 헌트>는 사이다를 찾게 하는 ‘고구마 영화’의 대표작으로 불린다. 평범한 생활을 하던 주인공 루카스(매즈 미켈슨)는 어린아이의 치명적인 거짓말 하나로 아동 성범죄자로 낙인찍힌다. 범죄자 취급도 서러운데 온 마을 사람들이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관객은 확실한 검증 없이 추측만으로 번져가는 마녀사냥을 보며 루카스에 대한 연민과, 풀리지 않는 오해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선동당하는 영화 속 마을 사람들에게 욕을 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같은 상황이라면 선동당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남기는 여운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박화영>

박화영

Park Hwa-young, 2017

담배를 피며 거친 욕설을 쏟아내고, 감기약과 소주를 함께 들이켜는 소녀. 가출팸 친구들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가출청소년 박화영(김가희)이다. 화영에게 의지하는 듯 하지만 무시하는 친구들과 화영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무리의 우두머리 영재(이재균). 이런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엄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굴욕적인 일까지 마다 않는 화영의 모습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그 배경이 되는 술, 담배, 범죄와 성행위가 일상인 가출청소년의 세계는 너무 리얼해서 보기 힘들 정도이다. 불쾌한 영화라고 치부하기엔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눈을 돌리고 싶은 영화 속 세계는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 엔딩 후에도 박화영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변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영화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송곳니>

송곳니

Dogtooth, 2009

<송곳니>는 독특한 설정으로 주목 받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전작이다. 영화에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부모님과 살아가는 세 명의 아이가 등장한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뿐이다.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기 위해서는 송곳니가 빠져야 한다. 감독은 독재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았다. 이는 고립된 아이들이 부모에게 받는 기이한 교육방식으로 표현된다. 고양이가 위험한 맹수라고 가르치거나, 비디오를 본 죄로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저택만의 규칙은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란티모스 감독은 단순히 기이한 장면만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저택 안에서의 사건들은 독재에 순응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Earnestland, 2014

이상한 나라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앨리스처럼 주인공 수남(이정현)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공장에서 만난 남편은 식물인간이 되고, 병원비와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악착같이 일하지만 빚은 늘어만 간다. 마지막 희망인 재개발 유권 다툼에서도 수난을 겪던 주인공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 영화의 후반부는 잔혹한 살인 장면을 연달아 보여주지만 불쾌함보다는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오히려 불쾌함을 느끼는 부분은 수남의 성실이 현실에 의해 철저히 배신당하는 앞부분이다. 감독은 그런 현실을 판타지 같은 연출로 표현해냈다. 잔혹한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면 관객이 견디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씨네플레이 정은수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