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빗 워>는 8월 15일(목) 올레 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극장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전 세계 영화제가 주목한 색다른 전쟁 영화

<프라이빗 워>는 전쟁의 민낯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신념 하나로 곳곳의 내전을 취재했던 전쟁 특파원, 마리 콜빈(로자먼드 파이크)의 생애를 조명한 영화다. 자살폭탄 테러와 암살, 납치와 인간 방패까지, 온갖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전쟁터. 종군기자 마리 콜빈은 위험을 무릅쓰고 스리랑카 내전을 취재하던 도중 수류탄 파편에 왼쪽 눈을 잃는다. 극심한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기자로서 제 소임을 다 하기 위해 다시 전쟁 한복판에 들어선다.

<프라이빗 워>는 끔찍한 현장에서도 죽지 않는 인간애를 조명하며 관객의 마음을 울리거나, 전쟁터의 참상을 비주얼적으로 실감 나게 구현해 호평을 얻는 보통의 전쟁 영화와 결을 달리한다. 전설로 남은 전쟁 특파원, 마리 콜빈의 업적을 정리한 영웅담스러운 전기 영화도 아니다. 혼란, 파괴, 죽음으로 가득한 전쟁터를 기사로 옮겨 적는 마리 콜빈을 정직하고 담담하게 비춰낸 연출만으로 누구 하나 내일을 보장받을 수 없는 전쟁의 비극을 관객에게 깊이감 있게 전달한다. 토론토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전 세계 유수 영화제들이 이 영화에 주목한 이유다.


<프라이빗 워>의 주인공, 마리 콜빈은 누구?

“<선데이 타임스>에서 위성 통신비를 가장 많이 쓴 기자”

먼저 로자먼드 파이크가 연기한 실존 인물, 마리 콜빈에 대해 알아보자.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에 깊은 관심이 없던 관객이라면, 마리 콜빈의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마리 콜빈은 동료들에게 ‘취재진의 어머니’라 불릴 정도로 믿음직한 언론인이었으며, 시그니처와도 같은 검은색 안대 착용으로 ‘애꾸눈 기자’라고도 불렸던 전쟁 특파원의 아이콘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그녀의 별명은 ‘<선데이 타임스>에서 위성 통신비를 가장 많이 쓴 기자’다.

마리 콜빈은 1986년부터 전쟁 특파원 일을 시작했다. 수류탄 파편에 맞아 한쪽 눈을 잃는 사고를 당했던 2001년의 스리랑카, 팔루자 민간인 학살 사건을 보도한 2003년의 이라크를 비롯해 그녀는 26년간 다양한 분쟁지역을 찾아 폭격 소리에 묻힌 전쟁터 속 민간인들의 비명을 전 세계인에게 전하는 데 힘썼다. 독재로 유명했던 리비아의 전 총리, 무아마르 카다피와 여러 차례 인터뷰를 나눴고, 다른 이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초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와의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왼쪽부터) 제이미 도넌이 연기한 폴 콘로이, 로자먼드 파이크가 연기한 마리 콜빈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대중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전쟁터 한가운데로 뛰어들길 마다하지 않았던 마리 콜빈은 시리아 분쟁 지역 취재 중 목숨을 잃었다. 그녀가 생을 마감한 곳은 2012년 시리아 정부군의 민간인 공격이 극심했던 지역 홈스. 당시 그녀는 <CNN>을 통해 “모든 주택이 공격당했고 내가 숨어있는 건물 맨 위층도 완전히 파괴됐다”고 보도하며 현지의 긴박한 상황을 전했고, 다음 날 시리아 정부군이 쏜 로켓포 11발을 피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그녀의 사망 소식에 마리 콜빈의 고국인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애도와 함께 시리아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녀가 사망한 후 7년 뒤, 미 연방지법원은 “당시 시리아 정부군이 위성 전화 신호를 통해 기자들을 추적했고, 그들이 일하고 있던 홈스의 임시 미디어 센터를 의도적으로 겨냥해 집중 포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쟁 영화, 전기 영화, 언론 영화, <프라이빗 워>가 특별한 이유

전쟁 영화, 전기 영화, 언론 영화의 성격을 고루 갖춘 <프라이빗 워>는 각각의 장르가 지닌 클리셰는 영리하게 피해가고, 그 장르만이 지닐 수 있는 장점은 모두 살려낸다. 배경음 하나 없이 공포에 떨고 있는 민간인들을 담아내며 다큐멘터리와 같은 사실감을 전하거나, 핸드헬드 촬영과 과감한 클로즈업 숏을 사용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인물들의 위축된 심리를 강조하는 등, <프라이빗 워>는 다양한 연출 방식을 통해 전쟁 현장을 묘사하며 마리 콜빈이 써 내려갔던 기사와 같은 생생함을 전한다.

이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라이빗 워>는 전쟁터에서 특종을 보도하고 그로 인해 국제적 명성을 얻은 마리 콜빈의 업적을 조명하기보다, 그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이후 홀로 남은 그녀의 내면을 살피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늘 담배와 마티니를 찾던 극 중 마리 콜빈의 모습은 실제 마리 콜빈의 습관에서 따온 것. 폭격 소리 가득한 전쟁터와 한없이 평화로운 런던의 일상을 오가는 마리 콜빈은 전쟁에서 겪은 참혹한 순간들을 잊지 못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 불안함과 두려움, 사명감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마리 콜빈의 모습은 그를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그 가운데 언론 영화로서의 가치도 놓치지 않는다. 폭격의 위협에 노출된 수많은 난민들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그녀는 조금의 갈등도 없이 제 안전을 포기한다. 부당하게 외면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자신의 목숨을 건 그녀의 모습은 이 시대 언론의 역할에 대한 시사점을 남긴다.


(왼쪽부터) 매튜 헤인먼, 로자먼드 파이크

가장 재능있고 흥미로운 영화 제작자, 매튜 헤인먼

놀랍게도 <프라이빗 워>는 매튜 헤인먼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2006년 단편 다큐멘터리 <오버커밍 더 스톰>(Overcoming the Storm)을 통해 감독의 길로 들어선 매튜 헤인먼은 줄곧 다큐멘터리의 제작과 연출을 맡아왔다. <프라이빗 워>가 다큐멘터리와 같은 리얼함을 뽐내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2012년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된 <이스케이프 파이어: 미국 의료계를 구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 영화계의 주목을 얻기 시작한 그는 선댄스영화제로부터 “오늘 날 가장 재능 있고 흥미로운 영화 제작자 중 한 명”이란 평을 얻었고,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됐다. 다음 작품 <카르텔 랜드>로는 제68회 미국감독조합상의 다큐멘터리부문 감독상을 수상했고,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다큐멘터리 부문의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프라이빗 워>가 거둔 성적 역시 화려하다. 제43회 토론토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제71회 미국감독조합상,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등 다양한 영화제, 시상식에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


<나를 찾아줘>

<나를 찾아줘>와 맞먹는 로자먼드 파이크의 인생 캐릭터

<나를 찾아줘>를 관람한 이들이라면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로자먼드 파이크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잊을 수 없을 터. 도무지 속을 가늠할 수 없는 얼굴로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데 성공한 그녀는 이후 <리턴 투 센더> <오직 사랑뿐> <몬태나> <엔테베 작전> 등 제 주관이 뚜렷한 여성 캐릭터를 연기한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프라이빗 워>의 마리 콜빈 역시 그 연장선에 선 캐릭터다. 몇 마디의 대사와 표정만으로 마리 콜빈의 강직한 카리스마를 구현해내는 데 성공한 그녀는 마리 콜빈으로 변신하기 위해 목소리도 허스키하게 바꾸고 촬영에 임했다. 전쟁터와 일상을 오가며 시시각각 뒤바뀌는 마리 콜빈의 미세한 감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 로자먼드 파이크의 얼굴을 보다 보면 그녀의 연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터. 입체적인 연기로 실존 인물을 완벽하게 구현한 로자먼드 파이크는 <프라이빗 워>를 통해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여우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레이 씨라고요? 제이미 도넌의 반전 연기

<프라이빗 워>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의 리치 가이, 크리스찬 그레이 역으로 이름을 알린 제이미 도넌의 반전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마리 콜빈과 전쟁의 실체를 밝혔던 사진 기자, 폴 콘로이를 연기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보여준 아침 막장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이미지는 잠시 잊어도 좋을 것. 트라우마 앞에서 무너지는 마리 콜빈에게 의지할 어깨를 내어주는 동료, 폴 콘로이는 극 중 가장 믿음직하고 든든한 캐릭터다. 실제 폴 콘로이는 마리 콜빈의 생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마리 콜빈이 숨을 거뒀던 시리아 홈스 정부군 폭격 당시 그녀와 함께 있었던 폴 콘로이는 부상을 당했으나 기적적으로 시리아에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