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보다 나은 둘. 쿵짝이 잘 맞아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는 콤비에게 붙는 필수 수식어다. 여기 소개할 콤비들도 그렇다. 이 사람 하면 저 사람이 떠오르고,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어떤 조합보다 듬직했다. 하지만 이렇게 든든한 콤비에게도 영원이란 건 없나 보다. 한때 영화계 최고의 콤비였지만 이제는 함께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진 콤비들을 소개한다.
사이먼 페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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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프로스트
젊은 관객 중엔 이 콤비로 영국 영화에 입덕한 이도 있을 것이다.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는 한 식당에서 만났다. 닉 프로스트는 그 식당의 요리사 겸 웨이터 겸 바텐더였다. 두 사람은 룸메이트까지 할 정도로 급격하게 친해졌다. 그즈음 사이먼 페그는 제시카 하인즈와 함께 <스페이스드>라는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닉 프로스트를 위해 마이크 와트라는 새로운 캐릭터까지 집어넣었다. 여기에 미니시리즈 <어사일럼>에서 사이먼 페그와 함께 한 에드가 라이트 감독까지 <스페이스드> 연출로 합세했다. <스페이스드>는 영국 코미디 영화의 한 페이지를 쓴 세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세 사람은 단편을 제작하면서 서로의 케미스트리를 재확인했다. 그래서 곧바로 장편 영화에 착수한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 좀비 영화의 클리셰를 영리하게 이용한 코미디 영화는 세 사람의 이름을 영국 밖까지도 알렸다. 세 사람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처럼 호러, 스릴러적 성격의 영화에 코미디를 뒤섞은 <뜨거운 녀석들>(2007), <지구가 끝장 나는 날>(2013)를 내놓으며 이른바 ‘코르네토 삼부작’을 완성시켰다.
영국 벗어나니 얼굴 보기 힘드네
너무도 바빠진 두 사람+한 감독
<지구가 끝장 나는 날>은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공동 주연을 한 영화가 됐다. 두 사람이 싸우기라도 한 걸까? 그럴 리가. 두 사람은 <지구가 끝장 나는 날> 이후로도 틈틈이 서로의 작품에 얼굴을 비추거나 목소리를 빌려주는 등 도움을 주었다. 두 사람이 만나기 힘든 건 정말 바빠서다. 사이먼 페그는 할리우드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스타 트렉>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주요 캐릭터를 맡았다.
닉 프로스트 역시 할리우드에 진출하긴 했으나 상대적으로 영국의 TV 쇼나 드라마, 영화에 좀 더 얼굴을 자주 비추고 있다. 두 사람과 절친인 에드가 라이트도 마블 프로젝트에 투입됐다가 <베이비 드라이버>를 연출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독점 콘텐츠 <트루스 시커스>라는 드라마로 돌아올 예정이다. <스페이스드> 이후 처음으로 드라마 공동 주연인 셈. 하지만 아직 사전 제작 중이며 촬영도 시작하지 않았으니 당분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주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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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맹달
2004년, 주성치의 <쿵푸허슬>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더 화려해진 주성치의 영화에 환호하거나 어딘가 빈 것 같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후자 같은 반응을 보였다면 아마도 오맹달의 부재를 눈치챘을 것이다. 주성치와 오맹달. 10살이나 차이 나는 두 사람은 오맹달이 몇 년간 엑스트라 인생을 전전하는 주성치를 도와주면서 친해졌다. 당시 주성치는 배우보다는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로 더 알려졌을 만큼 배우로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주성치가 <벽력선봉>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주연급 배우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타래자강호>와 <개세호협>이란 드라마에서도 주연을 맡았는데, 이 드라마에서 오맹달과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이 기세를 타고 그대로 스타급 배우로 급상승한 주성치는 자신이 주도권을 잡는 현장이라면 예외 없이 오맹달을 자신의 파트너로 선택했다. <도성>을 시작으로 <정고전가>, <도학위룡>, <서유기> 2부작, <식신>, <희극지왕>에 이어 2001년 <소림축구>까지. 두 사람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절친한 벗이자 스승과 제자, 최고의 호흡을 보여주는 콤비로 홍콩을 넘어 전 세계인들을 사로잡았다.
내가 너 때문에 주연도 깠는데ㅠㅠ
주성치의 배우 은퇴+둘 간의 불화
<쿵푸허슬>에선 오맹달을 찾을 수 없었다. <쿵푸 허슬>은 액션배우를 꿈꾼 주성치가 무협에 대한 애정을 한아름 담은, 그러면서도 코믹한 감각도 쏟아부은, 주성치의 알파와 오메가가 담긴 영화였다. 그런데 오맹달이 없다니. 모두가 의아해했다. 주성치의 영화라면 오맹달이 출연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팬들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의 불화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훗날 오맹달이 언급하길, 원래 <쿵푸허슬>에서 배역을 맡기로 돼있어서 드라마 제의를 거절했으나 정작 촬영 전에 다른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다행이라면 오맹달이 직접 주성치와 화해했다고 밝혔다는 거지만, 안타까운 건 두 사람의 만남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란 사실이다. 주성치는 2008년 <CJ7 - 장강7호>를 마지막으로 어떤 영화에도 얼굴을 비추고 있지 않다. <미인어>, <신희극지왕> 등 감독으로는 활동하고 있지만, 배우로서는 애니메이션 <장강 7호 : 내친구 마법요정>의 목소리 출연이 마지막이다. 최근 오맹달과 작품을 같이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오맹달은 건강 문제로 휴식기를 갖고 있다. 주성치 본인도 <쿵푸 허슬 2>를 찍어도 연출에 전념할 것이라고 못 박는 등 배우 활동은 완전히 접었음을 암시했다. 그러니 스크린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더 이상 만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톰 행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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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 라이언
젊은 관객들이라면 놀랄 만한 조합일 것이다.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라니. 어쩌면 멕 라이언을 몰라서 “누구요?”라고 되묻는 관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멕 라이언은 1990년대 ‘로맨스 퀸’으로 1990년대 로맨스 명작을 훑어보면 그가 출연한 영화가 적어도 세 편 이상은 언급될 정도다. 최근까지 거론되는 작품이라면 빌리 크리스탈과 출연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그 외에도 <프렌치 키스>, <시티 오브 엔젤> 등도 유명하다.
미국의 국민 배우 톰 행크스도 멕 라이언과 세 작품에서 만난 바 있다. 첫 작품은 <볼케이노>. 1997년 재난 영화 말고, 1990년에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여기서 톰 행크스는 불치병에 걸린 김에 화산을 잠재울 제물을 자처한 조 역으로, 멕 라이언은 조의 직장 동료 디디와 재벌 그래즈모어의 딸 안젤리카, 안젤리카의 이복동생 패트리샤로 1인 3역을 맡았다. 두 번째 만남은 그 유명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추억을 얼떨결에 라디오에서 밝힌 샘과 그의 사연을 듣고 시애틀로 향하게 된 애니의 사랑 이야기는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은 1998년 <유브 갓 메일>. 인터넷 메일을 주고받은 펜팔이 알고보니 동네 서점 주인과 대형 서점 체인 사장으로 밝혀지면서 현실적인 문제와 사랑이 변화하는 광정을 담았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연출한 노아 에프론은 다시 한 번 두 배우를 통해 당시에 떠오르는 인터넷 연애만의 달달함을 한껏 내세웠다. 동네 상권이 침해받는 현실적인 문제 제기도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의 케미스트리로 좀 더 편안하게 전달됐다.
한 명은 명배우, 한 명은 하락세
연기력 인지도 차이+세월의 흐름
두 배우를 다시 스크린에서 만나기 힘든 이유? 간단하다. 톰 행크스는 점점 더 상한가가 높아진 반면, 멕 라이언은 2000년대부터 하락세였다. 멕 라이언의 로맨스 퀸이란 명칭은 명예로운 호칭이자 그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였다. 멕 라이언 본인도 <인 더 컷> 같은 작품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 반면 톰 행크스는 <캐스트 어웨이>, <로드 투 퍼디션>,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 장르폭이나 연기력 모두 입증해내며 이름값을 더 높여나가는 추세였다. 결국 두 사람의 활동 반경은 완전히 엇갈렸다. 그래도 멕 라이언이 직접 연출, 주연을 맡은 <이타카>에는 톰 행크스가 출연해 둘의 사이가 나쁘거나 틀어진 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멕 라이언은 이 <이타카> 이후 잠정적 은퇴 상태라 현실적으로 두 배우의 재회는 더욱 가망이 없다. 이제 두 사람이 로맨스 영화를 찍기에도 나이가 있고.
조니 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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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본햄 카터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는 어딘가 닮았다. 멀끔하게 하면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지만 조금만 달리 보면 어딘가 퀭한 구석이 있다. 거기다 둘 다 분장이 필요한 배역도 전혀 꺼리지 않았으니 팀 버튼 감독에게 두 사람은 최고의 파트너였다. 조니 뎁은 팀 버튼과 1990년 <가위손> 이후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과 페르소나’였고, 헬레나 본햄 카터는 2001년 <혹성탈출>에서 팀 버튼과 사랑에 빠져 사실혼 관계까지 맺었다. 팀 버튼이 조니 뎁을 영화의 얼굴로 내세웠다면, 헬레나 본햄 카터는 그의 영화 속 중추와 같았다. <혹성탈출> 이후 <다크 섀도우>까지, 헬레나 본햄 카터는 팀 버튼 연출작 7편 연속 출연이란 대기록을 세웠으니까(조니 뎁도 연속 출연으로는 이 기록을 못 깼다).
사실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가 진득하게 연기 호흡을 주고받은 공동 주연 작품은 몇 편 없다. <유령 신부>,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리즈, <다크 섀도우> 정도다. 그럼에도 두 배우가 워낙 연기도 잘하고, 캐릭터의 맛깔나는 지점을 정확하게 살려내 역대급 호흡을 보여주면서 인상적인 존재감을 남긴 배우 콤비가 기억되고 있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았다…
팀 버튼과 헬레나의 이혼+중심인 팀 버튼의 부진
두 사람의 마지막 조우는 <거울나라의 앨리스>. 2016년 영화로 벌써 3년 전이다. 아주 오래전은 아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적어도 2년마다 공동 주연 영화를 발표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두 사람의 차기작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두 사람의 다리 역할을 한 팀 버튼의 부진이 큰 역할을 하는 듯하다. 두 사람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던 팀 버튼 감독은 <다크 섀도우>를 시작으로 작품들이 썩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흥행만큼이나 작품성도 팀 버튼만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 팀 버튼과 헬레나 본햄 카터는 2014년 결별했다.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두 사람이었기에 이별 소식은 뒤늦게 보도됐다.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닐 뿐, 여전히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전했지만 어쨌든 팀 버튼의 영화에서 헬레나 본햄 카터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조니 뎁 또한 엠버 허드와의 이혼 소송, 주변 사람들이 사생활을 폭로하는 등 난처한 상황을 <신비한 동물 사전> 시리즈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타개하는 중이다.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를 모두 캐스팅하는 용감한 감독이 등장하지 않는 한, 당분간은 둘의 만남은 추억에만 남을 것 같다.
벤 스틸러
&
오웬 윌슨
한국 대중들에겐 조금 낯설지만, 벤 스틸러와 오웬 윌슨은 무려 11편에 함께 출연한 절친 중 절친 콤비다. 1996년 <케이블 가이>를 시작으로 <퍼머넌트 미드나잇>, <미트 페어런츠> 삼부작, <로얄 테넌바움>, <쥬랜더>, <스타스키와 허치>, <박물관이 살아있다> 삼부작, <쥬랜더 리턴즈>까지. 이들은 단지 출연을 자주 한 것이 아니라 ‘프랫 팩‘(Frat Pack)이라는 코미디 배우 그룹의 일원이다. 프랫 팩은 벤 스틸러, 윌 패럴, 빈스 본, 잭 블랙 등이 몸담은 친목 단체 겸 코미디 영화 선봉장 모임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벤 스틸러와 오웬 윌슨은 많은 작품에서 같이 얼굴을 비췄는데, 코미디 영화뿐만 아니라 <로얄 테넌바움>이나 <미트 페어런츠> 삼부작처럼 정극에 가까운 연기도 깔끔하게 소화한 바 있다.
나는 이제 연출이 좋아
연출, 제작을 위한 벤 스틸러의 잠정적 배우 은퇴
그런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함께 한 건 2016년 <쥬랜더 리턴즈>. 이후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있다. 두 사람의 재회가 뜸해진 건 대충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벤 스틸러의 연출, 제작 욕심. 벤 스틸러는 1994년 <청춘 스케치>를 시작으로 꾸준히 장편영화를 연출해왔다. 그러다 2013년 연출과 주연으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만들었을 때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연출만 하고 있는 내 모습을 확신한다”. 그렇게 말하고 2017년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 이후 배우 벤 스틸러로는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결국 벤 스틸러가 다시금 영화 연기로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한 오웬 윌슨이 아무리 열심히 활동해도 두 사람이 배우로 만날 확률은 현저하게 낮다. 두 사람의 능청스러운 연기 호흡이 그리워질 때, 그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돌아오길 바라보자.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