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딘을 모르는 사람 있나요? 아마도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단역 출연을 제외하고 고작 3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불멸’의 아이콘이 된 제임스 딘을 다시 떠올려 보는 이유는 오늘(9월30일)이 그의 기일이기 때문입니다. 1955년 9월30일 오후 5시25분께 제임스 딘은 자신의 차,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습니다. <자이언트>(1956)의 촬영을 마친 지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24살이었습니다.
할리우드의 반항아
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반세기가 흘렀지만 여전히 ‘반항아’ 이미지를 떠올릴 땐 제임스 딘이 첫번째입니다. 제목부터 반항적인 <이유 없는 반항>(1995)에 출연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임스 딘이 연기한 짐 스타크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젊은이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클라크 게이블 같은 배우들의 다음 세대라고 할 수 있겠죠. 평화롭고 풍요로운 1950년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습니다. 한국전쟁이 있긴 했지만 2차 세계 대전에 비하면 영향력은 적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시대의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바라보고 질문하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잭 케루악, 앨런 긴스버그 등으로 대표되는 비트 제너레이션이 이즈음 생겨났습니다. 담배를 물고 인상을 찌푸린 표정의 제임스 딘은 그런 젊은이를 연기하기에 완벽한 배우였습니다. 짐 스타크는 제임스 딘(애칭으로 지미, 짐 등으로 불렸습니다)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입니다. 여담이지만 제임스 딘이 자주 눈살을 찌푸리고 곁눈질을 했던 건 시력이 나빠서였다고 합니다.
진짜 반항아의 운명
제임스 딘 생전에 공개된 유일한 영화인 엘리아 카잔 감독의 <에덴의 동쪽>(1955년 4월10일 개봉) 역시 반항아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당시 할리우드에 가장 잘나가던 카잔 감독은 무명에 가까운 제임스 딘을 주연으로 캐스팅했습니다. 그가 직접 키워낸 스타 말론 브랜도를 잇는 배우로 제임스 딘을 점찍은 겁니다. 그런데 극 중 아버지 역을 맡았던 배우 레이먼드 매시가 제임스 딘을 싫어했습니다. 그는 메소드 연기를 보이는 제임스 딘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제임스 딘은 조금 건방진 행동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카잔 감독은 이를 좋은 기회로 여겼습니다. 영화 속 인물 관계와 거의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에덴의 동쪽>은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현대판 ‘카인과 아벨’이라고 합니다. 제임스 딘이 연기한 둘째 아들 칼은 아버지의 눈밖에 난 ‘카인’이죠. 실제로 제임스 딘은 9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여동생 집에 제임스 딘을 맡기고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습니다. 종전 후에 재혼한 아버지는 제임스 딘을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버림받은 셈입니다. 그러니까 제임스 딘은 진정한 반항아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이 진지한 배우의 명언들
제임스 딘의 반항아 이미지 덕분에 간혹 그가 버릇 없고 그저 건방진 배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진지한 태도를 지닌 배우였습니다. 그가 남긴 명언들에서 유추해보면 말입니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명언은 이겁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 Live as if you'll die today.
세기의 청춘 스타다운 명언입니다. 그만큼 제임스 딘은 연기에 집중하고 노력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연기에 대해 더 직접적인 명언들도 있습니다.
“배우가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장면을 연기하는 것은 연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시사항을 따르는 것이다. 외적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When an actor plays a scene exactly the way a director orders, it isn't acting. It's following instructions. Anyone with the physical qualifications can do that.
연기에 있어서 제임스 딘은 결코 ‘반항아’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진지한 말을 남겼을 줄이야. 자신만의 ‘진짜’ 연기를 더 많이 선보이지 못하고 그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에게 유일한 위대함은 죽지 않는 것이다.”
The only greatness for man is immortality.
참 아이러니한 명언입니다. 인간의 그 위대함을 얘기한 저 말은 정작 제임스 딘 본인에게는 적용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이밖에도 제임스 딘은 많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더 많은 제임스 딘의 명언이 있지만 이 정도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직 할 얘기가 더 많으니까요. 그가 남긴 명언이 궁금하신 분은 네이버에 ‘제임스 딘 명언’을 검색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제임스 딘은 <에덴의 동쪽>(1955)을 촬영할 당시 폴 뉴먼에게 이탈리아인 배우 피어 안젤리를 소개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습니다. 행복하게 결혼까지 하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피어 안젤리의 어머니가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한 겁니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이탈리아인인 피어 안젤리의 어머니는 제임스 딘의 복장부터 자동차 레이스 취미, 늦은 밤까지 하는 데이트 등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제임스 딘은 카톨릭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한국전쟁 참전을 피하기 위해 제임스 딘이 동성애를 했다는 루머도 있습니다. 결국 피어 안젤리는 이탈리아인 가수 빅 데몬과 급작스레 결혼했습니다. 제임스 딘은 결혼식장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가 엔진 굉음을 내며 자신의 분노를 표했습니다. 빅 데몬과 이후한 뒤에 진행된 피어 안젤리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나의 사랑은 오직 제임스 딘 하나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이콘의 탄생
아마도 제임스 딘의 영화를 본 사람보다는 그의 사진만 본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마릴린 먼로를 떠올리면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한 장면보다 지하철 송풍구 바람에 치마가 펄럭이는 사진 한 장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임스 딘의 사진은 어떻게 남았을까요. 이와 관련해서 참고해서 볼 만한 영화가 있습니다. 지난해에 개봉한 <라이프>입니다. 무명 사진작가 데니스(로버트 패틴슨)와 아직 스타가 되기 전의 제임스 딘(데인 드한)이 만나 즉흥적인 여행을 하고 이때 촬영된 사진이 <라이프>지에 실렸습니다. 그때의 사진이 지금까지 제임스 딘의 이미지로 남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라이프>에선 스타 제임스 딘이 아닌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조카와 책을 읽거나 술에 취해 잠든 모습 같은 평범한 일상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물론 제임스 딘이 출연한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스트 제임스 딘
제임스 딘과 같은 아이콘은 이름 앞에 ‘포스트’, ‘제2의’ 같은 수식어 붙은 다른 배우들을 만들어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배우는 리버 피닉스입니다. 리버 피닉스 역시 23살 나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요절한 비운의 스타입니다. 생전에 리버 피닉스는 제임스 딘과 비교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리버 피닉스의 얼굴에서 제임스 딘의 얼굴을 발견하는 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제임스 프랭코도 포스트 제임스 딘의 후보에 포함시켜도 될 것 같습니다. 제임스 프랭코는 2001년 TV영화 <제임스 딘>에서 제임스 딘을 연기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꽤 비슷해 보입니다. <라이프>에서 제임스 딘을 연기한 데인 드한, 젊은 시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포스트 제임스 딘에 언급되곤 했습니다. <브로크백 마운틴> <다크나이트>의 히스 레저도 문득 떠오르네요. 제임스 딘의 사망을 경험한 당시 대중의 황망함과 히스 레저의 죽음을 경험한 우리의 감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죽음과 포르쉐의 저주
<자이언트>를 촬영할 당시 제임스 딘은 조지 스티븐슨 감독과 일종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카레이싱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임스 딘은 자동차를 정말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자이언트> 촬영을 마친 제임스 딘은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몰고 레이스에 참석하기 위해 정비공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국도를 달렸습니다. 그러다 교차로에서 마주오는 차에 충돌해서 사망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사고 당시 제임스 딘은 “저 차가 피해 갈 거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동승자와 상대방 포드 자동차 운전자는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다. 제임스 딘의 포르쉐 차량은 수리 후 중고차 시장에 판매됐습니다. 그런데 그 차를 몰던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계속 일어났습니다. 폐차를 결정하고 남은 부품을 사용한 차에서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폴 워커가 떠오릅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유명한 폴 워커 역시 캘리포니타 산타클라라에서 포르쉐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습니다. 2013년의 일입니다.
제임스 딘은 사후에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두번 올랐습니다. 1956년은 <에덴의 동쪽>, 1957년은 <자이언트>로 후보에 올랐습니다. 배우로서 더 많은 재능을 보이기 전, 제임스 딘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죽음 덕분에 시대의 아이콘이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살아 있었다면 아흔에 가까운 할아버지일 대배우 제임스 딘을 상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임스 딘의 영화를 다시 찾아보고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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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