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재현의 딜레마
지난 글에 인용한 오카 마리의 문장으로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사건’의 폭력을 현재형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이유로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말을 지닐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기억 서사』, 김병구 옮김, 소명출판, 2004
“말을 지닐 수 없다”고 했으니 이 문장을 (상식적인 세계의 질서와 언어를 초과하는) ‘사건의 재현 불가능성’에 대한 언급으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영화 <김군>에 등장하는 여러 인터뷰이들이 공히 보여주었던 행간의 침묵, 일그러지는 표정, 말을 대신한 한숨, 기억의 손실이나 왜곡 같은 것이 그 징후들이다(나는 특별히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해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늙어버린 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다). 극한적으로 폭력적인 사건은 사실상 정확한 증언을 불가능하게 한다.
아도르노의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쓴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은 바로 그와 같은 질문과 마주한 예술의 곤경을 표현한다. ‘사건’은 세 가지 이유에서 예술적 재현이 불가능해 보인다. 첫째, 증언의 자격에 가장 부합하는 이들이 이미 죽은 자들이라는 점(무젤만들은 끝내 말할 수 없었고, 김 군도 아마 죽었으리라), 둘째,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또한 (죄의식에 의해, 기억의 이차 가공에 의해, 세월에 의해) 부분적으로 상실되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라는 점, 셋째, ‘사건’의 특성 자체가 미학적 가공과 양립하기 힘들다는 점(세월호 참사 직후 소설과 시의 자리를 수기와 르포와 선언과 포스트잇 글쓰기가 대신 메웠다는 점은 따라서 이해가 간다)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각의 주장대로 사건의 사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그 사건을 ‘재현 불가능성’의 자리에 두고, 범접할 수 없는 절대성의 아우라로 장벽을 쳐두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러나 오카 마리는 앞서의 저 문장 바로 뒤에 곧 이어서 이렇게 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아니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사건’은 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건’의 기억을 타자와 공유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사건’의 기억은 타자에 의해서 말하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말할 수 없는 그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이다.”(『기억 서사』, p.148)
유사하게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의 저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그는 영화 <사울의 아들>에 대한 가장 정교한 비평 『어둠에서 벗어나기』(이나라 옮김, 만일, 2016)의 저자이기도 하다)도 이런 말로 책을 시작한다.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상상해야 한다. 우리는 1944년 여름의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이 무엇이었는지 상상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구실로 내세우지 말자. 모든 방법을 통해서도―사실이 그러하니까― 그것을 상상하는 것을 우리는 할 수 없다고, 우리는 그것을 끝까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보호하지 말자.”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 오윤성 옮김, 레베카, 2017, p.13
아마도 어떤 사건을 ‘재현 불가능성’의 영역에 두는 것은 그 사건의 말할 수 없음, 숭고함을 지키는 방식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 사건을 재현하려 하지 않는 것은 그 사건을 절대화함으로써 오히려 우리 자신의 죄의식에서 도피하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떤 방식의 재현이 가능할까? 재현의 영역 너머에 있는 사건의 숭고함과 절대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현전화하는 일, 이것은 참 오래된 미학적 딜레마다.
재현되면서 재현되지 않는, 혹은 재현되지 않음으로써 재현되는
(주관적으로 말해) 아우슈비츠와 관련된 최악의 영화적 재현은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와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였을 것이다. 전자는 아우슈비츠를 스펙터클로 만들어버렸고(참혹함에 치를 떨 때조차 우리는 그 참혹함을 상품으로 소비하곤 한다), 후자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일을 코미디(제아무리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포장되었다 할지라도)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아우슈비츠에 대한 근래 ‘최선의’ 영화적 재현, 바로 <사울의 아들>이 있다.
‘온전한’이나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최선의’ 재현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단 ‘사건’의 재현이 (완고한 리얼리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경우에도 총체적이거나 완벽할 수는 없고(사건은 항상 총체화를 초과한다), 최선을 다해 신중하거나 윤리적일 수만 있기 때문이다. <사울의 아들>은 우리가 아는 한 아우슈비츠를 최대한 신중하게, 그리고 충분한 윤리적 고려 속에서 재현한 작품이다.
관객들도 이미 보아서 알고 있을 법한 영화적 장치들 몇…… 롱테이크, 핸드 헬드, ‘1.33:1’의 화면 비율, 그리고 후경의 아웃 포커스. (직접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는 단지 85개의 쇼트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거의 모든 장면을 핸드 헬드로 촬영하면서 카메라가 가급적 사울의 동선과시선 인근을 벗어나거나 놓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트는 길어지고, 대신 학살의 참혹함을 ‘전체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하이앵글 익스트림롱숏을 자주 사용했던 스필버그 식의 오만함이 사라진다(소설에서도 대체로 전지적 작가 시점은 사건에 대해 오만해진다).
관객들은 죽은 아들을 매장하기 위해 랍비를 찾아 미친 사람처럼 오락가락하는 사울의 눈과 귀를 통해서만 수용소를 보고 듣게 된다. 얼핏얼핏 무더기 진 시신들이 보이고 참혹한 학살 장면도 보이고 비명과 고함과 총소리가 감각을 혼란하게 만들지만, 그것들은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린(어떤 측면에서 그는 광인 같다) 존더코만도 일원의 좁혀진 시야(아웃 포커스)를 매개로 해서만 그렇다. 그렇다고 그 참상의 강도가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스펙터클이 사라지자 되레 수용소의 참혹함은 그 정도를 더한다. 극단의 공포 앞에서, (경험적으로 알듯이) 우리는 쉰들러처럼 ‘조망’하지 못하고, 사울처럼 ‘공황’에 빠지지 않던가.
이 공황 상태를 포착하기에 적합한 화면은 물론 좁아야 한다. 감독은 그래서 (인물이 어딘가 답답한 곳에 포획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가 분명한) ‘1.33:1’의 프레임을 택한다. 사울은 대체로 좁은 화면 속에 갇힌 채 클로즈업으로 카메라에 포착되고, 그의 후경이나 배경은 아웃 포커스 처리된다. 따라서 그가 주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태로 아들의 장례를 치러줄 랍비를 찾아 허겁지겁 돌아다니는 것만큼이나 혼란스럽게, 관객들은 사태의 진상을 볼 수 있(없)을 뿐이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다.
그런 식으로 이 영화에서 수용소는 재현되면서 동시에 재현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옳겠다. 재현 불가능한 것이 재현 불가능한 상태로 재현된다. 오카 마리가 사건의 재현 불가능성을 두고 제안했던 바, ‘사건의 재현 불가능성 자체의 재현’이 이렇게 이루어진다. 오카 마리는 말한다. “말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건’의 말할 수 없음 자체를 증언하는 것이 되어야만 하지 않을까”(『기억 서사』). <사울의 아들>이라는 영화 한 편으로 아우슈비츠를 ‘완전히’ 재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재현할 수 없음을 영화적으로 재현한 예외적 사례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미 죽은, 나를 묻으러
소설로 치자면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해야 할까?(최근 작가 김숨이 발표한 위안부 피해자 증언 소설들로 미루어볼 때 이 시점이 증언의 기록에는 가장 적합해 보인다) 라즐로 네메스 감독이 얼마나 신중하게 아우슈비츠의 윤리적 재현에 대해 고민했는지는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의문이 몇 남는다. 첫번째 의문, 도대체 사울은 왜 그토록 아들의 매장에 집착했을까? 두번째 의문, 그가 아들이라고 말하는 그 죽은 소년은 정말 그의 아들인가? 세번째 의문, 사울은 어떤 계기로 갑작스레 윤리적 주체로 회심하게 되었는가?
죽은 소년의 시신을 숙소로 들여온 사울이 밥을 먹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다른 동료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간 한 여자에 대해 음담을 나눈다. “몸매도 죽여주는데 눈빛이 더 끝내줘. 얼마나 예쁜지 작업 걸 뻔했잖아.” 그러자 옆의 동료에게 사울이 말한다. “저런 말이 하고 싶을까?” 그런데 동료(봉기의 주동자인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의 이어지는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너도 예전엔 그랬었어.” 사울은 물론 부인한다. “기억 안 나요.” 그러나 그 표정의 단호함이 역설적으로 그의 부인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저 대사들을 통해 우리는 사울이 소년의 죽음을 목격한 후, 이전의 자신(가스실에 들어가게 될 여성을 두고 서슴없이 음담을 나누기도 했던)과 결별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소년은 두 번 죽는다, 가스실에서 한 번, 부활한 후 의사의 손에 의해 두 번…… 소년의 부활과 죽음의 목격이 사울에게는 이른바 ‘회심’의 순간이자, (성경 속 가장 윤리적인 주체였던) 바울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가 (이미 죽어버린 ‘토막’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죽음을 그때 처음 목격했고, 그것이 회심의 이유 중 하나였으리란 추측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는 내내 이미 죽은 후의 시체들만 처리해왔으니까.
그렇다면 동료들이 답답하다는 듯 그에게 상기시켜주곤 했던 말, “너에겐 아들이 없어”의 참의미도 서서히 드러난다. 실제로 그에겐 아들이 없었으리라. 다만 소년의 죽음을 목도한 후, 그가 ‘처리한’ 모든 죽음에 애도를 표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리라. 그런데 애도는 항상 적절한 장례를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프리아모스에 의한 헥토르의 장례, 안티고네에 의한 오빠의 장례). 그리고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르자면 적절한 장례란 죽은 당일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랍비의 주도로 치르되, 화장하지 않은 채로 시신을 매장해야만 완료된다. 부활한 소년의 (재)죽음을 지켜보면서, 사울은 바로 그 적절한 애도를 수행하기로 작정한 바울이 되었다.
물론 그 애도는 단지 한 소년의 죽음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으리라. 왜냐하면 사울은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동료 : (사울이 데려온 가짜 랍비를 조롱하며) 진짜 랍비라면 벌써 기도 끝났겠다.
동료 : 너희들 때문에 우린 다 죽었어.
사울 : 우린 예전에 죽었어. 내 아들을 묻어줘야 해요.
“우린 예전에 죽었어”란 말 속에 사울의 미치광이 같은 저 모든 행위의 이유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고작 몇 개월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물론 그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참하게 학살당한 동족의 시신들을 수거하고 태우고 빻고 뿌리게 된 순간 우리도 이미 죽었다는 자의식, 이런 삶은 죽음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수치심, 그것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한 시신의 애도에 집착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그가 소년의 시신을 묻으려던 장소가 바로 존더코만도들이 증거가 될 만한 문서를 묻어둔 장소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로 인해 많은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발견하게 될 것은 문서들만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서 죽음이, 반드시 애도되어야 할 죽음이 함께 발견되어야 한다. 영화 말미 애도에 실패한 채 오두막에서 죽음을 맞기 직전, 그의 웃음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줄곧 어깨에 둘러메고 다녔던 것은 아마도 바로 자기 자신의 주검이었으리라.
저자 | 김형중
1968년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문학동네신인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평론집 《켄타우로스의 비평》 《변장한 유토피아》 《단 한 권의 책》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후르비네크의 혀》 등과 에세이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가 있으며, 소천비평문학상(2008), 팔봉비평문학상(2017)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