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온다. 여름의 열기가 가신 자리를 선선한 바람이 슬그머니 차지한다. 낮을 밀어내며 밤이 차지한 하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생긴다. 부끄럽게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느라 그런 건지, 그 마음을 채워줄 정신적인 ‘특식’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번 주 뒹굴뒹굴VOD는 종교를 다룬 영화 다섯 편을 준비했다. 종교란 말에 거부감을 갖지 말고, 작품 그 자체로 다가갈 수 있는 호평 받은 영화들이니 관심을 가져보길 바란다. 아래 소개할 영화들은 9월 6일(금)부터 9월 13일(금) 정오까지, 네이버 시리즈에서 바로 사용 가능한 즉시 할인 쿠폰을 발급받을 수 있다.


사일런스

마틴 스콜세지 / 앤드류 가필드, 리암 니슨, 아담 드라이버 / 바로 보기

페레이라(리암 니슨) 신부가 사라졌다. 교단에서 그가 배교했다고 말한다. 그를 스승으로 모셨던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 신부와 가르페(아담 드라이버) 신부는 신실했던 페레이라의 배교를 믿지 못하고 그가 선교하러 떠난 일본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배척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 <사일런스>는 정말 신기한 영화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원작으로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했다. <좋은 친구들> 같은 범죄영화로 유명한 스콜세지지만, ‘이탈리아계’라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이다. 이미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같은 도발적인 작품도 만들었고, <사일런스>도 원작을 읽은 후 줄곧 영화화를 원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사일런스>의 배경은 가톨릭을 박해하는 일본. 척박한 17세기 일본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일품이다. 믿는 자들은 숨어야 하고,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고 싶은 자들은 밀고와 배신으로 일삼는다. 천주교를 몰아내기 위한 고문과 술책에 신부들마저 믿음이 흔들리고 만다. 이런 과정을 그리며 <사일런스>는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묻는다. 가톨릭 신자라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경험들이 연속될 것이다. 종교를 믿는 신자가 아니라 해도, 신념에 대한 이야기로 <사일런스>를 접근해보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위대한 침묵

필립 그로닝 / 바로 보기

종교마다 있는 규율이나 체제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이행할 때 종교는 체험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그 순간에 종교는 위대해진다. <위대한 침묵>이 그런 작품이다. 감독 필립 그로닝은 카르투지오 수도원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수도사들의 실제 생활과 유사하게 지내야 했다. 수도사들의 정결한 생활은 고요로 가득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필립 그로닝은 그런 생활을 촬영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도 그런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이 <위대한 침묵>에 고스란히 담겼다. 관객들은 “졸 수밖에 없는 영화”라고 평하면서도 <위대한 침묵>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그 속에 담긴 경건한 시간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마음이 복잡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평온과 고요를 안겨줄 <위대한 침묵>을 재생해보자.


길 위에서

이창재 / 바로 보기

“다른 종교들은 어떤 ‘누군가’를 믿는 것이지만 불교는 나 자신을 믿는 거잖아요.” 종교라곤 전혀 모르던 민재 행자가 불교의 수행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다.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독특한 속성을 꿰뚫고 있다. 다른 종교들이 신자들에게 규율이나 제도를 부과해 믿음을 실천하게 만든다면, 불교는 오로지 자신 안의 불성을 발견할 것을 설한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종교면서 수행자들은 모두 속세를 떠나야 하는 제도도 불교의 역설적인 핵심을 드러낸다.

<길 위에서>는 ‘비구니’라고 불리는 불교 여성 수행자들을 담는다. 이제 막 수련의 길을 선택한 민재 행자부터, 자신의 삶을 접어두고 길에 오른 상옥 스님, 어린 시절부터 버려져 자연스럽게 비구니가 된 선우 스님, 그리고 이들의 수행터인 백흥암의 영운 스님까지.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불심을 닦겠다는 마음 하나로 인연이 되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면서, 동시에 언젠가 서로를 보내줘야 하는 불교 수행자의 삶. <길 위에서>의 비구니들은 멀게만 느껴지는 종교인도 아니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며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에 수행의 길을 택했음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준다.


만신

박찬경 / 김금화,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 / 바로 보기

한반도에서 피어난 지 가장 오래된 종교, 반면 대외적으로 ‘미신’으로 취급받거나 ‘전통문화’로 인식되는 민속 신앙 무교. 영화 <만신>은 무형문화재이자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고(故) 김금화 무당의 연대기를 다큐멘터리와 재연극을 합쳐서 무속 신앙을 조명한다. 그의 일대기를 인터뷰, 내레이션 등과 함께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가 재연하는 과정은 신과 인간의 중간자로서의 무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종교를 하나의 선택으로 여기는 일반 종교인들에겐 무병을 앓다가 신내림을 받아야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무속인들의 인생은 꽤 가혹하게 느껴진다. 스스로의 육체에 신을 모시는 ‘신당’인 위대한 존재면서 동시에 결코 평범한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실감. 아마 무속인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만신>은 그런 무속인의 위태로움을 기존 영화의 문법을 파쇄한 형식으로 관객들에게 전한다. 매체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속인을 보고 단순한 사기꾼이나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한국 민속 신앙이 살아남는 과정을 <만신>으로 이해해 보길 추천한다.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라지쿠마르 히라니 / 아미르 칸, 산제이 더트, 아누쉬카 샤르마 / 바로 보기

<세 얼간이>에서 함께 한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과 아미르 칸은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에서 다시 만났다. 전작에서 인도 교육 시스템에 칼날을 들이밀었다면 이번엔 종교 제도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주인공 피케이(아미르 칸)는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인.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우주선 리모컨을 뺏기는데, 주위 사람들은 신에게 구하라, 신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피케이는 신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헤매다 자구(아누쉬카 샤르마)를 만난다.

<피케이>의 초반부는 다소 무신론적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신이 눈에 보일 리가 없으니 피케이의 눈앞에 나타날 리 없고, 자연스럽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묘사될 수밖에. 하지만 점차 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로 눈길을 돌린다. 피케이의 입을 빌려 영화는 말한다.“우리를 만든 신과 우리가 만든 신 중 무엇을 믿을 것이냐”. 무언가 믿는다는 행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본질을 꿰뚫어보라는 통렬한 충고. 무엇보다 종교에 대해 논하면서 이렇게 즐겁고 유쾌하며 흥겹게 만들 수 있는 건 인도영화만의 힘인 것 같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