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내요, 미스터 리>

차승원의 코미디가 돌아왔다. 그가 출연한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가 추석 관객을 만났다. 과거 차승원은 충무로를 대표한다고 해도 될 코미디 배우였다. 단순히 대표한다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코미디의 왕’이었다. 잘 생긴 패션모델 출신 코미디 배우라니. 멜로 드라마의 ‘실장님’ 같은 느낌인데 말이다. 지금 돌아보면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정말 그때는 그랬다. 국내 코미디영화 섭외 1순위 시절의 차승원을 돌아보자.

조폭 같은 선생님, 잘생긴 코미디언

<신라의 달밤>

차승원이 코미디영화에 자주 출연하게 된 건 순전히 <신라의 달밤> 때문이다. <주유소 습격사건>을 만든 김상진 감독은 <신라의 달밤>에서 이성재, 김혜수와 함께 차승원을 기용했다. 차승원은 ‘조폭급선생’이라는 설정의 최기동을 연기했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영화계는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았다. <조폭 마누라> 시리즈부터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등이 모두 2001년에 개봉한 조폭 소재의 코미디영화다. <신라의 달밤>도 이 대열에 합류했고 차승원은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영화주간지 ‘씨네21’은 “ 차승원이 연기하는 기동은 그가 지금까지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 중 최고로 꼽힐 만하다”고 썼다. 또 “폭력적인 담임선생님을 우습게 보던 학생들은 그가 10년 전 전설의 패싸움에서 앞장섰던 선배라는 사실에 감격한다. 차승원을 보는 관객의 시선도 이런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신라의 달밤>을 통해 관객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코미디 배우 차승원을 발견했다.

‘코미디 왕’의 집권기

<광복절 특사>

<라이터를 켜라>

<선생 김봉두>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차승원이 출연한 영화들을 나열해 보자. 2002년에는 설경구와 함께 출연한 김상진 감독의 <광복절 특사>, 김승우와 함께 출연한 장항준 감독 연출 데뷔작 <라이터를 켜라> 등이 개봉했다. 2003년에 개봉한 장규성 감독의 <선생 김봉두>에선 조그만 변화가 생겼다. 차승원이 이른바 ‘원톱’ 주연으로 출연한 것이다. 이후 2004년에 개봉한 <귀신이 산다>에서도 차승원은 혼자서 관객을 쉴 새 없이 웃겼다. 이 시기 차승원이 출연한 코미디 영화는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단순히 흥행만으로 그를 코미디의 왕이라 칭하는 건 무리가 있다. <선생 김봉두>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2003년 <선생 김봉두>로 ‘씨네21’과 만나 차승원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고 싶다.

인터뷰 도중, 잠시의 침묵을 이용해 차승원이 던진 질문은 두 가지였다. “보기에 많이 다르던가요?” “어때요, 보기에 편하시던가요?” 그러니까, 그가 <선생 김봉두>의 개봉을 앞두고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얼마나 달라보일까와 얼마나 편해 보일까이다.

-씨네21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생 김봉두>은 그 전 영화와는 다르다. 이때부터 파트너 없이 혼자 등장했다. 시골 학교에 부임한 뒤 심심한 나머지 혼자 화투를 치는 유명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차승원은 혼자서도 관객을 웃길 수 있는 재주가 뛰어났다. 게다가 이 영화에는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차승원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이 있다. 당시 충무로 영향력 1위였던 영화사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감독이다. 위에 소개한 영화는 모두 시네마서비스에서 배급한 영화들이다. 차승원의 코미디 전성기는 강우석과 함께 했다고 봐도 좋겠다.

<귀신이 산다>

왕좌에서 내려와 배우로

<혈의 누>

차승원의 코미디 배우 전성기는 2004년까지였다. 2005년부터 그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와 <혈의 누>에 출연했는데 특히 미스터리 사극 <혈의 누>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차승원의 수염이, 조선의 관복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당시 관객들은 잘 몰랐다. 수년간 큰 키의 잘생긴 얼굴로 까불거리고 울상을 짓는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만 봤기 때문이다. 의문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으로 등장한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 최연기 검사 역을 맡은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는 차승원에게 진짜 배우의 길을 열어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그는 아마도 의도적으로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을 듯하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가 개봉하기까지 그가 출연한 코미디 영화는 2007년 유해진과 함께 한 <이장과 군수>가 유일하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긴 5년여의 시간 동안 한국 코미디영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차승원은 분명 영화사에 기록될 하나의 챕터일 것이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